2021년 설 연휴가 지나고 어머니를 전주 한마음요양병원으로 모실 때, 아버지께서 좀 매정하신 편이었다고 큰누나에게 전해 들었지만, 제가 아들이어서 그런지 저는 아버지의 그 마음과 매정해 보였을 태도가 너무 이해되었던 것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어쩔 줄 모르는 그 당황스러운 경험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로 달래셨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형님을 통해 받은 아버지의 유고 끝부분에는 그날의 아버지 마음이 생생하게 적혀 있습니다. 현대어로 바꾼 내용과 아버지 글 원본을 나눕니다.
아내를 요양병원에 보내며
심비목석기무감(心非木石豈無感),
탄성척촉불감언(呑聲躑躅不敢言)
마음이 돌이나 나무가 아닌 이상, 어찌 감정이 없으랴.
그러나 눈물 삼키고 망설이며 차마 말하지 못하네.
포조(鮑照)의 시 한 구절이 지금 내 마음을 대변합니다.
수전증과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결국 요양병원으로 보냈습니다.
한때 숨이 붙어 있는 한 내가 직접 돌보겠다고 다짐했던 약속을 결국 어기고 말았습니다. 그 약속은 마치 낡아 빠진 신발처럼 무참히 벗어 던져졌습니다.
보내기 전날 새벽,
아내 곁에 조용히 누워 잠든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아 봤지만, 어떤 반응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내 뒤를 따라온 건 힘없는 목소리의 한 마디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한 마디가 나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리고 그날, 딸 부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는 아내에게 겨우 건넨 말은
“잘 치료받고 나아서 돌아오세요.”
짧은 인사 한 마디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 없이 담담히 떠나는 아내의 뒷모습.
그 모습은 내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마음이 돌이나 나무가 아닌 이상, 어찌 고통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끝내 흐르는 눈물을 삼키고, 망설이며 차마 "사랑합니다"라는 말조차 하지 못한 제가 스스로 참 미웠습니다.
이제는 아내의 빈자리가 더 선명히 느껴지는 집에서,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했던 순간이 더욱 가슴을 무겁게 합니다.
그후 아버지는 추석 명절이 지난 후에 종합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전주 효사랑가족요양병원으로 퇴원하신 후에, 12월 5일 저녁에 어머니보다 먼저 주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아직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아버지의 글 원본:
아내를 요양병원(療養病院)에 보내면서
심비목석기무감(心非木石豈無感)
탄성척촉불감언(呑聲躑躅不敢言)
마음이 목석(木石)이 아닌 바에야 어찌 느낌이 없으랴만,
소리를 삼키고 머뭇거리며 감(敢)히 말하지 못하네.
포조(鮑照)의 시(詩) 한 구절(句節)입니다.
수전증(手顫症)에 치매(癡呆)를 앓는 사랑하는 아내. 내가 호흡(呼吸)이 있는 한(限), 아내를 요양시설(療養施設)로 보내지 않고 내가 스스로 돕겠다는 약속(約束)을 폐리(弊履)처럼 저버리고, 요양병원(療養病院)에 보냈습니다.
떠나기 전(前) 새벽에 잠자는 아내의 곁에 끼어들어 살포시 끌어안았지만 반응(反應)이 없던 아내.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 꼭뒤에 속삭이듯 ‘고맙습니다.’ 힘없는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네던 아내.
딸 부처(夫妻)의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서는 아내에게 ‘잘 가서 치료(治療)받고 잘 나아서 돌아와요.’ 한 마디 던졌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담담(淡淡)히 떠나가던 아내의 뒷모습.
내 마음이 목석(木石)이 아닌 바에야 어찌 느낌이 없으랴만, 흐르는 눈물을 삼키고 머뭇거리며 감(敢)히 ‘사랑한다.’ 는 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나 자신(自身)이 심(甚)히 야속(野俗)하고 또 밉습니다.
(*꼭뒤 : 뒤통수의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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