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떠올리며
어머니께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신 후, 전주에 사는 큰누나는 매일같이 익산의 아버지 댁에 들려 아버지를 돌봐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집에 홀로 계시며 무척 외로우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회사 일에 치여 아버지께 자주 연락드리지도, 충분히 찾아뵙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버지를 더 보살펴드리지 못한 것이 깊은 후회로 남습니다.
특히 그해 말, 회사에서의 제 역할이 해임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은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아버지 곁에 더 머물렀을 텐데... 이런 후회가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듭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쩌면 혼자 어둡게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대하는 것이 저에게도 부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고독을 함께 나누는 일이, 제 삶의 무게 속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에야 알게 됩니다.
부모님의 외로움과 고독을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었다는 것을.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효(孝)란 게 별것 아닙니다
욕작가서설고신(欲作家書說苦辛), 공교수살백두친(恐敎愁殺白頭親)
음산적설심천장(陰山積雪深千丈), 각보금동난사춘(却報今冬暖似春)
‘집으로 보내는 편지에 고된 마음을 담으려다, 흰머리의 부모님께서 근심하실까 두려워
그늘진 산에 눈이 천 길이나 쌓였지만, 올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고 적었네.’
이안눌의 시 기가서(寄家書)의 한 구절입니다.
효(孝)라 하면 으레 거창한 것을 떠올립니다.
부모님께 외출할 때는 가는 곳을 알려드리고, 돌아오면 얼굴을 뵙는 것,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고 잠자리를 챙기는 것, 심지어 옛사람들은 부모의 건강을 염려해 배설물의 맛을 보며 상태를 살피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부모님이 굶지 않도록 자신의 살을 베어 드리거나, 극단적인 경우 어린 자식을 희생해 봉양했던 이야기도 전해지지요.
이런 모습들은 ‘하늘이 내린 효자(孝子)’라 불리기도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진정한 효도이고, 어디에서부터는 오히려 불효가 되는지, 생각할수록 고민이 깊어집니다.
낯선 땅에서 오랜 시간 떨어져 살다 보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괴로움을 모두 털어놓는 대신,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 염려되어 이렇게 씁니다.
‘그늘진 산에 눈이 깊게 쌓였지만, 이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고 참 살기 좋습니다.’
소박하고 하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작은 안부가 부모님께는 무엇보다 큰 기쁨이 됩니다.
효란 게 별것 아닙니다.
거창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게 가장 쉬운 일부터 하나씩 실천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효심입니다.
오늘부터 작은 것 하나라도 찾아 실천해 보세요.
그 마음이 부모님께 따뜻한 봄날이 될 것입니다.
'About me > 나와 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 요양병원 가시던 날의 아버지 (0) | 2024.12.07 |
---|---|
익산 장로 합창단 단체 사진 속의 아버지 (0) | 2022.10.31 |
초기의 '십자가 군병들아' @ 익장합 관악 앙상블 (0) | 2022.10.28 |
십자가 군병들아 @익장합 관악 앙상블 (0) | 2022.10.28 |
복 있는 사람은 @익산장로합창단 (0) | 2022.10.28 |
아버지가 남기신 쪽지 (0) | 2022.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