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광교에 사는 교우님 댁에서 구역 가족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열한 분 정도가 참석해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은혜를 나눈, 작지 않은 모임이었습니다. 구역 가족 중에 올해 80세가 되신 어느 교우님이 찬송가를 부르기로 하셨습니다. 그 교우님은 찬송가 549장을 찾으며, 자신이 평생토록 그 찬송가를 즐겨 부르는 까닭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수도 서울이 사흘 만에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6월 27일 밤, 서울이 북한군에 함락된 바로 그날 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가족들을 불러모으고 가족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선창으로 온 가족이 함께 부른 찬송이, 오늘날 찬송가 549장(옛 찬송가 149장)인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였습니다.
서울이 북한군에 함락된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버지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이후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밤에 잠을 자다가, 집에 떨어진 포탄으로 운명하셨습니다. 그 현장에서 아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38세였고, 그 교우님은 겨우 12세의 어린아이였습니다. 그 교우님은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며 잠시 말을 멈추고 울먹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교우님이 찬송가 549장 1절을 부르셨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그 교우님은 80년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때로 자신의 삶이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려 할 때도 있었지만,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를 부르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주님께로 돌아설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는 그런 아버지의 아들인 것이 감사하고, 또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0세의 아들이 38세의 청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 젊은 아버지가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더 귀한 예수 그리스도께 매여 사는 ‘밧줄’을 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힘은, 소망하는 사람을 소망의 대상에게 매어 두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해서는 안 될 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결국 패가망신하기 마련입니다.
코끝에서 호흡이 멎는 순간, 고작 한 줌 흙으로 사라져버릴 우리의 소망이 유한한 이 세상의 것일 수는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 삶의 목적이자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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