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명사가 공허한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경험이 되려면 생생한 이미지와의 결합이 필요합니다.
용서容恕의 경우, 절절매는 잘못한 사람의 사과를 받아주는 관대한 모습을 생각할 수도 있고, 판사가 죄인을 풀어주는 모습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빚을 면제받은 빚진 자의 모습도 매우 전형적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자녀를 돌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참된 '용서'를 배웁니다.
우리는 감옥에서 풀려나 사회로 돌아온 죄수가 아니라, 껴안아주시며 환영받고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 아들과 딸이 되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를 걱정하시며 노심초사하시던 아버지의 눈에서 흐르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흐르는 포옹의 시간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체취를 다시 느끼며 고향에, 아버지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하는 그 시간입니다.
아버지의 자녀를 향한 용서는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품어주고 회복시키는 은혜입니다.
이미 3년 전에 소천하셨고, 기증한 시신도 그 역할을 마치고 화장되어 유골함에 넣어 봉안하였지만, 아직 빈집으로 그대로 두고 있는 고향집에 가면 아버지의 체취가 다시 느끼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서울로 유학을 떠나온 후 방학이 되어 고향에 가면 안아주시던 아버지의 품에서는 언제나 향수 냄새가 섞인 아버지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혼한 이후에도 아론의 축복 기도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는 아버지께 안겨서 아버지의 체취를 맡았습니다. 오늘은 '용서'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실감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추운 날씨 탓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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