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인간을 부르시는 완전하신 하나님
본문: 창세기 11장 27절~32절 (개역개정)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요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할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더니
32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오늘 말씀은 “데라의 족보”라고 불리는 창세기 11장 27절에서 32절까지의 본문입니다.
성경은 종종 족보(‘톨레도트’תּוֹלְדֹת/toledot, “역사, 세대의 기록”)를 통해 앞선 이야기를 매듭짓고 새로운 세대를 여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처럼,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 족보가 가진 의미를 살펴볼 때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더욱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족보(族譜)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역사
창세기는 크게 1장부터 11장까지의 ‘창조-타락-홍수-바벨탑’ 사건을 다루는 전반부와, 12장부터 50장까지의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의 이야기를 다루는 후반부로 구분됩니다. 이 둘을 연결하는 중심에 바로 “데라의 족보”가 있습니다.
- 창세기 안에는 모두 11개의 족보(톨레도트)가 나오는데, 그중 “데라의 족보”는 정중앙에 위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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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성경 원문에서 “족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들돗(תּוֹלְדֹת)이라는 낱말이 등장하는 절을 기준으로 보면, 창세기에는 아래와 같이 총 11번 나타납니다.
창 2:4 - 하늘과 땅의 토들돗(‘하늘과 땅’의 역사 혹은 기원 서술)
창 5:1 - 아담의 족보
창 6:9 - 노아의 족보
창 10:1 - 노아의 세 아들(셈·함·야벳)의 족보
창 11:10 - 셈의 족보
창 11:27 - 데라(아브라함의 아버지)의 족보
창 25:12 - 이스마엘의 족보
창 25:19 - 이삭의 족보
창 36:1 - 에서의 족보 (에돔 족속)
창 36:9 - 에서의 족보 (에돔 족속) – 36:1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 반복 기술
창 37:2 - 야곱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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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나오는 “아담의 족보, 가인의 족보, 노아와 그의 아들들의 족보, 셈의 족보”에서 각각 10명 혹은 70명의 ‘완전수’가 기록되었지만, “데라의 족보”에는 고작 8명만 등장하고 3대에 불과합니다.
- 그리고 여인들이 언급되고, 직계가 아닌 롯도 포함됩니다. 완전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지만, 놀랍게도 바로 이 족보가 창세기를 앞부분과 뒷부분을 잇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 역시 완전하지 않습니다. 혹은 우리의 가정이 연약하고, 미래가 불투명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불완전해 보이는 족보”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완전한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지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의 메시지를 나누기 원합니다.
2. 데라 가문의 불안
1) 영적인 불안
데라는 아담의 19대 손이자 노아의 9대 손이었습니다. 신앙을 자손에게 전수해야 할 큰 책임이 있었지만, 성경은 여호수아 24장 2절에서 “데라가 강 저쪽에서 거주하며 다른 신들을 섬겼다”라고 밝힙니다. 그는 단순히 우상을 숭배한 것이 아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였고, 유대 전승(미드라쉬 등)에 의하면 바벨탑을 주도한 ‘니므롯’의 신하로서 그를 섬겼다고 전해집니다.
- 그 손자 롯(‘롯’לוֹט/lot, “숨겨진 자, 애매한 자”) 역시 데라의 영적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할아버지가 의지하던 대상을 의지하고, 세상적인 선택을 하고야 맙니다.
- 우리도 마찬가지로,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만일 가정이 영적으로 흔들린다면, 우리의 자녀도 방황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2) 죽음에 대한 불안
창세기 11장 28절을 보면, 데라의 아내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 하란도 먼저 죽었습니다.
- '먼저' (“알페네” 즉, “면전에서”)라는 말처럼, 성경 처음으로 부모가 자녀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 아벨이 살인당한 경우(아담이 그 살해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님)를 제외하면,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은 첫 번째 성경의 사례가 됩니다.
이처럼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 누구나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경험,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 무너지는 경험은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인간적 연약함입니다.
3) 미래에 대한 불안
데라 이전의 세대는 대부분 서른 살 이전에 자녀를 낳았지만, 데라는 무려 70세가 되어서야 아브람을 낳습니다.
- 그래서 “아브람”이라는 이름은 “아브(아버지) + 람(존귀함)” 즉, ‘존귀한 아버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 아브람의 아내 “사래”도 ‘존귀한 여인’이라는 뜻이지만, 그 부부는 첫 합방 이후 “임신하지 못하므로”라 성경 기록처럼 사래가 불임임을 알게 됩니다. (히브리어로 “아카르”עָקָר/aqar,“뿌리를뽑다,제거하다”라는 단어를 사용) 곧 사래는 뿌리째 끊어진, 불임의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데라 자신도 아내가 없고, 아들 아브람 역시 불임 아내를 둔 상황은 미래를 암울하게 했습니다. 30살 이전에 아이를 낳아오던 전통이 끊기고, 가족의 후손이 어떻게 이어질지 막막한 상황. 이것이 데라 가문의 현실이었고,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신앙이 흔들리고, 가정적·육체적 어려움이 있고,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사람이 끝이라고 보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데라 가문의 불완전함’ 속에서 새로운 축복의 길을 열어 가십니다. 왜일까요?
- 우리의 결핍은 오히려 하나님께 매달리는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 우리 스스로가 약함을 깨닫고, 한계를 인정할 때 그제야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잡게 됩니다.
1)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향해
창세기 11장 31절을 보면, 데라와 아브람, 롯, 사래 이렇게 4명이 갈대아 우르를 떠납니다.
- 나홀 등 다른 가족들은 굳이 떠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삶이 어느 정도 안정돼 있었을 테니 “불완전함”을 크게 못 느낀 것입니다.
- 그러나 믿음의 선조가 된 이들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했고, 진정한 복을 찾기 위해 낯선 길로 나아갔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결핍이야말로,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 저는 무능합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 고백이야말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2) 하란에서 멈추는 데라, 가나안으로 끝까지 가는 아브라함
성경은 데라가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데라는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 데라라는 이름은 “Terach 테라흐,“멈추다,지연되다”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는 믿음으로 발걸음을 떼었지만, 끝까지 이어 가지 못하고 하란에 멈추어 버렸습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하란을 지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그의 여정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끝까지 순종했을 때, 복의 근원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열렸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롯입니다. 같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그 땅에서 살지 않고 동쪽으로 ‘소돔’까지 가 버려,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출발보다 끝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고, 멈추라고 하시면 멈추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데라의 족보는 8명이라는 불완전한 수를 지녔지만, 오히려 창세기의 정중앙에 위치함으로써 하나님의 커다란 구속 계획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또 미래의 불안감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복의 통로’로 세워 가시길 원하십니다.
“사람이 끝이라고 보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의 부족함이 오히려 하나님을 발견하게 만드는 자리가 된다면, 그 연약함이 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데라의 가문처럼, 본인은 불안하고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힐 때 복의 근원이 됩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열방이 복을 받았듯이, 오늘 우리도 그 하나님을 붙잡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하시고 또 그 복을 많은 이들에게 흘려보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희의 모든 부족함과 연약함을 주님께 내려놓습니다. 우리 가정의 어려움, 개인의 실패와 불안까지도 주님께서 붙드시고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끝까지 순종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나누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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