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등학교 때 정말 열심히 교회를 다녔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는데, 그때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싶었습니다. 그 시절에 저에게 변화가 다가왔는데, 저는 성경을 읽을 때 다음의 세 가지만 명심하면 우리 생각이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고, 성경을 읽으면서 온갖 궁리를 다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읽는 데 있어서 최고의 태도라고 여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글이다
첫 번째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글이다”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하는 기본 전제이지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려 할 때 당연히 필요한 것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기 전에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넓고 바른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사람의 글입니다. 성경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마지막 구절에서 저자는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다 적자면 세상의 모든 종이로도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저자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골라 적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이 분명히 놀라운 것임에도, 저자는 취사선택을 했습니다. 마태·마가·누가복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 이야기를 썼지요. 이것을 보며 “성경은 사람의 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글”이라는 것이 서로 모순처럼 보일 수 있는데, 예수님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하게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사람이십니다. 교회는 2천 년 동안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을 고백해 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도 완벽하게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완벽하게 사람의 글인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성경을 읽기 전 기도하는 태도와 동시에, 성경이 사람을 통해 쓰였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이 사람의 글이므로, 저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썼는지 살펴봐야 한다.
두 번째는 “성경이 사람의 글인 만큼, 저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썼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누가복음 1장 1절부터 4절은 신·구약 통틀어 매우 특별한 본문인데, 성경의 저자가 자기가 무슨 생각으로 글을 쓰는지 직접 서문 형식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누가복음 저자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붓을 든 사람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이란 곧 예수님 사건을 가리키며, 이미 그 사건을 적은 기록들이 여러 개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저자는 아마도 그 기록들을 전부 모아서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신약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는 마가복음인데, 누가복음 저자는 분명히 마가복음도 책상 위에 놓고 읽었겠지요.
그런데 누가복음 저자는 자신도 예수님 이야기를 적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왜냐하면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그의 믿음을 좀 더 확실하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새로 온 분이 믿음 안에서 자라도록 돕는 마음 같은 것이지요. 그러면 마가복음 하나를 주면 되지 않았느냐 싶지만, 누가복음 저자가 생각하기에는 기존의 자료들로 충분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직접 쓰기로 결심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펴보았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누가가 예수님 사건에 관한 모든 자료를 모으고, 직접 목격자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꼼꼼히 조사했다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기도만으로는 부족하고, “자세히 미루어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냥 막연히 “하나님이 알아서 깨닫게 해 주시겠지”라고 하지 말고, 머리를 써서 열심히 궁리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누가복음 저자는 “차례대로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나 어린 시절을 다루는 방식이 각각 다른데, 누가복음에는 마구간 장면도 나오고, 예수님 탄생 이전 사가랴와 엘리사벳 이야기도 나옵니다. 누가복음 저자는 “이렇게 순서대로 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쓴 글을 데오빌로가 받았을 것입니다. 내용이 훌륭하니 데오빌로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보여 줬겠지요. 사람들이 그 글을 서로 베껴 가면서 읽고 또 읽고 하는 동안, 그 글이 가진 놀라운 힘을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이것은 그냥 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고백이 신앙공동체 안에서 나오게 되었고, 결국 누가복음은 신앙공동체가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하는 권위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누가복음 저자 자신은 처음부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것이다”라고 금태를 두르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저 “데오빌로를 돕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근원부터 자세히 살피고, 써야 할 내용과 빼야 할 내용을 고민하여 글을 썼을 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글이 여러 사람들의 믿음을 세우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또 누가복음 저자는 자신이 쓰는 글의 장르를 일종의 ‘내력’(내러티브)이라고 밝혔습니다. 어떤 책은 자문(잠언), 또 어떤 책은 전도서와 같은 격언 형식을 취하고, 또 다른 책은 서신서, 혹은 예언서 등 다양한 장르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그 글이 어떤 장르인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시(詩)를 소설 읽듯이 읽으면 곤란하고, 소설을 법전 읽듯이 읽어도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성경이 사람의 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저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무슨 장르와 방식을 택했는지를 살피는 일로 이어집니다.
성경의 1차 독자는 2천~3천 년 전의 고대인들이었다
세 번째는 “성경의 1차 독자는 지금의 우리가 아니라, 2천~3천 년 전의 고대인들이었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신약성경은 2천 년 전, 구약성경은 2,500~3천 년 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문화, 역사, 사고방식은 지금과 엄청난 간격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오면, “이것은 우리와 시대적 간격이 크기 때문이구나”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현대의 우리를 직접 대상으로 쓰인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 “성경을 어떻게 다 읽겠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이 점들이 성경을 더 풍성하게 읽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는 속도를 조금 늦추고, 차근차근 궁리하면서, ‘자세히 미루어 살피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이렇게 머리를 쓰고 잔머리를 굴린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힘이지, 우리의 열심이나 지식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글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저자들이 어떤 과정과 장르를 통해 기록했는지 고려하며, 성경의 1차 독자가 우리와 전혀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성경을 천천히, 꼼꼼히 읽게 되며, 그 과정에서 성경이 가진 힘이 결국 우리를 붙들고 변화시키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런 태도로 성경을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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