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을 통해 단순한 명령을 넘어선 그의 사랑과 은혜의 본질을 알게 됩니다.
이는 단지 물질적 번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풍성한 관계와 감사가 포함된 삶입니다. 다윗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은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합니다.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바라보며, 그분의 존재와 사랑을 기뻐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창조의 목적...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
오늘 창세기 본문(창세기 1:22)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다섯째 날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과 공중에 물고기들과 새들을 가득 채우시며 창조하시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22절에서 보듯이, 특별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창조 기사를 보면, 우리 사람들의 호기심은 “어떻게 만들었는가?”, “진화론이 맞나 창조론이 맞나?” 하는 식의 관심사에 먼저 쏠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목적과 안목, 그리고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생물들, 모든 존재는 하나님께서 복되게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인류는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원래 창조의 영광이 많이 손상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두 죄로 인하여 구원받아 하나님께로 가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모르고 죄 속에서 방황하다 멸망받느냐 하는 식의 운명이 결정되는 갈등 속에 놓여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도 죄 아래서 신음하는 형편에 있기에, 이 모습이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나 보자는 듯이 약간 냉정하게 방관하시거나 벌주시려고 흠을 찾으시는 것 같은 모양으로까지 오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대상에 대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각각의 존재가 허락받은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곧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꽃이 만발한 들판이나 가을 단풍으로 물든 산을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과 능력, 그리고 복 주심이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에 충만하도록 하나님이 복 주어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축복 - 민수기 아론의 축복
이런 가르침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강조점입니다. 우리에게 이를 가르치려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6장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에 이어) 민수기로 넘어가면, 6장 22절부터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라.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여기서 “어떻게 하면 복을 받고, 어떻게 하면 벌을 받는다” 하는 조건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 어떻게 해서든 복을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시점은, 하나님께서 큰 기적을 행하셔서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먹이시고, 반석에서 물을 주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신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도리와 제사법을 제정하십니다. 그것은 단지 최소한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복된 길과 인도를 제정하신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모와 하나님의 관계 비유 - 잔소리와 율법은 모두 사랑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워보면, 자녀들이 가장 혼동스러워하는 것은 부모가 너무 많은 제한을 한다고 느끼는 부분입니다. “일찍 일어나라, 일찍 자라, 밥은 꼭꼭 씹어 먹어라, 입 안에 밥 넣고 말하지 마라” 같은 것들을 가르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실제로 자녀의 복을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답다’는 것은 실력이나 표현, 생각, 판단, 버릇, 인격의 깊이, 다듬는 태도 등 모든 면에서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 잔소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부모가 없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일찍이 유명한 신앙 소설 『톰 소여의 모험』을 보면, 톰이 가장 부러워하는 친구가 허클베리 핀입니다. 허클베리 핀이 부러운 이유는, 부모가 없어서 “학교 가라”라고 깨우는 사람도 없고, “숙제하라”라고 시키는 이도 없으며, “목욕해라” 같은 말을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톰은 그것을 부러워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명령하시는 복된 길들을 외면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죄성 때문에, 무엇이 진정한 복인지 잘 몰라서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해서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라고 말하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필요 없어요, 안 먹어요” 하면서, 그 뒤에 숨은 진짜 의도는 “공부시키지 마세요” 같은 것이죠. 그런데 공부는 또 시켜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하는 말이 실제로 자녀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점을 우리는 ‘철이 들었다’고 표현합니다. 그 ‘철’을 들게 하려면 “해골에 못이라도 박아야 하나?”라고 농담도 하지만, 부모의 마음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니 그냥 속을 태우면서 평생 자녀를 위해 애쓰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런 표현들, 곧 우리에게 복 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 하나님께서 외면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품고 계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의 신앙 - 데살로니가전서
신약성경으로 가 보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에서 동일한 내용을 또 다른 표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을 잘못 읽으면, 우리가 스스로를 분발시키고 격려해서 기도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본문인 창세기 1장 22절에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시는 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쁨과 감사,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가장 중요한 사상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의 대상이자 신앙의 내용, 그리고 우리가 소유하고 지켜야 할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을 근거로 성립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대표적으로 표현하자면, “신앙이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믿고, 어떻게 대하느냐가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어서, 신앙의 일부 영역에만 열광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예컨대 기도, 성경 읽기, 전도, 봉사 같은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와, 그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시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취급하시는가를 토대로 생겨난 결과물이 기도와 전도, 봉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여러 표현들은 전부 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부터 흘러넘쳐 나오는 충만함의 한 표현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해 주시는 표현들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 이하를 봅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돼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이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또한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결국 모든 신앙의 요구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의 “감사하라”는 표현 역시, 본질적으로 명령이라기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기뻐하라, 감사하라” 하시는 그 하나님이 어떠하신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받아내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항복을 받아내실 수 있고,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충분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해
하나님은 두렵고 멀리 계신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친밀하며, 그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위해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창조와 구원 사역을 통해 그의 성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하나님을 계속 설명하고, 가르치고, 누리게 하려 합니다. “아닌 것을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실 때부터 우리가 범죄 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망의 길로 내던져졌어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십자가를 세워, 그의 아들을 못 박아서라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놓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신앙은 이 본질 위에서 종합되고, 어떤 생각이든 결정이든 방향이든, 심지어 명령이든 격려든 위로든 모두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찾는 일을 너무 힘겹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내 처지를 알아주지 않으시는가, 내가 원치 않는 길로 방치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통이나 불만을 호소하는 체험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이 잘못된 관점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계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잘못 찾아서 못 찾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자주 일어나는 신앙적 실패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곧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문답 형식으로 요약한 ‘소요리문답’ 1번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옛날에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면, 상대방을 보기만 해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요즘 한때 히트를 쳤던 ‘가을 연가’, ‘겨울 연가’ 같은 드라마를 보면, 어떤 사람들은 대사도 거의 없는 장면에서 서로 바라보기만 하며 끝까지 가더라도 열광합니다.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유 중 하나가 일본 남성들은 정서상 쉽게 다정하게 표현하지 못해서, 일본 여성들이 늘 다정한 위로를 갈구하다가, 한국 드라마 속 다정한 남자 주인공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저 역시 평생 동안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여기고, 꼭 필요할 때만 만날 수 있는 분으로 잘못 생각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과거에 제 아버지를 직접 뵐 수 있는 시간이 아침 식사 때뿐이어서, 30초 만에 밥을 먹고 도망가곤 했습니다. 꼭 필요할 때만 어머니를 통해 대신 말씀드리듯, 혹시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실 그 예수님 자체를 우리에게 보내신 분이 바로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 신앙이 어둡고 무섭게 느껴질 수 있으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너희가 죄악 가운데 있는데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라는 것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보지 말고 조금 더 성경적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복 주어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가 배반하여 도망쳤으나, 자식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부모처럼 우리를 붙드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가 자녀를 함부로 놓아둘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스스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건져낸 내 자녀”인 것입니다.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쉬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성경이 묘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하나님은 인간이 죄로 인해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으며, 이는 부모가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비유됩니다. 이러한 사랑은 단순히 죄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복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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