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3일 주일예배 설교
국어 맞춤법 이야기로 먼저 시작합니다 ^^ '삼으라' vs. '삼아라'
일상적인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명령의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라면 어미 '-아라'를 써서 '삼아라'처럼 쓰는 것이 바릅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아니한 청자나 독자에게 책 따위의 매체를 통하여 명령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라면 어미 '-으라'를 써서 '삼으라'처럼 쓸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오늘 설교 제목은 '삼으라'를 맞게 사용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Key Points
- 실패는 낭비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의 실패 후, 하나님께로 돌아가 예배를 회복하며 믿음을 더욱 굳세게 했습니다.
- 롯은 세상의 평안과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며 소돔 근처로 갔고, 그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실패 후라도 하나님의 길을 따르고 믿음으로 새로운 길을 선택하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3:1-13을 기반으로 실패를 낭비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는 방법에 대해,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특히, 실패 후의 선택이 어떻게 우리의 영적 성장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지 분석합니다.
배경: 아브라함과 롯의 실패와 분리
창세기 13:1-13은 아브라함(당시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이 이집트에서 돌아와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집트에서의 실패는 아브라함이 스스로를 있을 수도 있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내인 사래를 여동생으로 소개하며 거짓말을 한 사건으로, 이는 그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가족 관계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후 아브라함은 1)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무너졌고 2) (사람과의)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사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었지요. 위기가 우리 믿음의 분량(量)을 보여줍니다.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이 실패 후, 하나님의 개입으로 오히려 그들은 부요해졌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목자들 사이에 목초지 땅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고, 롯은 요단 강 계곡의 비옥한 땅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소돔 근처로, 나중에 악으로 알려지고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지역이었습니다.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삼는 아브라함의 변화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의 실패 후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바로잡음:
아브라함은 성경 본문에 "올라가다"라고 표현되었듯이, 이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벧엘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연어의 귀소 여행에 비유할 수 있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우리가 매일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길로 돌아가야 함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에서 비록 쓰러져도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지만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사라집니다. 그 즐거움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고난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되돌리기 위해 풍랑을 일으키셨고, 아브라함을 회복시키기 위해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예배의 회복:
아브라함은 벧엘, 즉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 이전에 세웠던 제단 앞에서 그는 마침내 다시 '하나님!'을 부르며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이는 이집트에서의 웅장한 피라미드와 바로의 권위 앞에서 너무 초라해 보였기에 쌓지 못했던 여호와를 향한 제단, 그리고 아마도 그로 인해 잃었던 예배의 열망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며, 그의 기도가 뻥 뚫리고 첫사랑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예배가 첫사랑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롯의 다른 선택과 다른 결과
반면, 롯은 같은 실패를 애굽에서 경험했지만, 이제는 부요함이라는 새로운 시험에 직면했습니다. 가난이란 어려움이 지나가자 부요함이란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부요함은 기근보다 더 큰 위험이었습니다.
역경은 때로 사람을 곤경에 몰아넣는다 하지만 역경을 견디는 자가 백 명이라면 번영을 견딘 자는 한 명에 불과하다
- 토마스 칼라일 -
게다가 부끄럽게 얻은 재물은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애굽에서 바로를 통해 그들은 재산을 늘렸지만 그다지 떳떳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3:5-6에 따르면, 그들의 재산이 너무 많아져 가나안의 땅이 그들을 감당하지 못했고,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간의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에 대해 자신의 재산권을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서로 양보만 있었으나 재산의 규모가 커지자 자기 재산에 대한 주장이 생긴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마치 아들과 같던 롯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떠나지 못한 유일한 혈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헤어질 결심
위기 때 침묵은 금이 아닙니다. 서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제발(na, 바라건대, 청컨대, 제발)”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서로의 관계를 우선하며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했지만, 롯은 아브라함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재산에 대한 이해의 계산적으로 요단 강 계곡을 선택했습니다 (창 13:10-11). 그의 선택 기준은 이집트와 비슷한 비옥함이었으며, 이는 소돔 근처로 이어졌습니다. 창세기 13:13은 소돔 사람들이 매우 악했다고 기록하며, 이는 롯의 선택이 영적으로 위험한 길임을 암시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이 너무 싫었으나, 롯은 애굽이 너무 좋았던 것입니다. 재산을 얻게 된 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해석’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영적 이질감으로 너무 힘들었고 벧엘의 제단이 너무 그리웠으나, 롯은 애굽에서 영적 동질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인생의 사건 속에서 당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세요.
실패 후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는 실패 후의 선택이 우리의 성장과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실패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며, 그의 선택은 하나님의 약속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반면, 롯은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며, 이는 그의 영적 삶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실패를 낭비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기 위해, 우리의 해석과 선택이 중요함을 가르칩니다.
무엇을 보느냐 보다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롯은 ‘동쪽으로’ 옮겨 갑니다. (창 13:11)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제단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현대적 적용: 실패를 성장으로 바꾸는 방법
기독교적 관점에서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바꾸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인생의 방향을 조절해야 합니다.
인생은 방향이 중요합니다. 작은 방향 차이가 갈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멀어지게 됩니다. 포병이 360'도'가 아니라 6400 'mil'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방향에서 훨씬 정밀성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롯을 쫓아내야 합니다.
롯은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역시 롯과 같은 판단을 했을 것이니까요. 우리 안에도 롯과 같은 기질이 있습니다. 우리 안의 욕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복으로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세상을 향한 열망, 갈망, 욕심을 주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땅을 바라봐야 합니다.
항목 | 아브라함 | 롯 |
실패 후의 행동 | 벧엘로 돌아가 예배 회복 | 부요함 추구, 소돔 근처 선택 |
선택 기준 |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 | 물질적 이익과 비옥함 |
결과 | 하나님의 복과 약속 재확인 | 소돔의 악과 가족 갈등 |
영적 성장 | 첫사랑 회복, 믿음 강화 | 영적 위험, 물질적 초점 |
그 밖의 이야기와 결론
실패 축하 파티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에서는,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큰 성공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실패가 실력이 되고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우리의 선택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창세기 13:7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들의 다툼을 지켜봤다고 하며, 이는 우리의 믿음이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결론
창세기 13:1-13은 실패를 낭비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아브라함은 실패 후 하나님께로 돌아가 예배를 회복하며 믿음을 강화했고, 이는 그의 복을 보장했습니다. 반면, 롯은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며 잘못된 길로 갔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실패를 통해 배우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며, 믿음으로 선택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실패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더 깊은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실패 축하 파티 (권은혜 작)
아이들에게 ‘실패를 많이 해야 성공해.‘라는 실패=성공의 공식의 메시지 보다, ‘실패는 두려운 게 아니야.“ 라는 마음으로 단단함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겪게 될 크고 작은 실패에도 자신을 지켜내며 일어나는 힘도 성공이라고 알게 해주는 것도 가치 있다. 그리고 끝끝내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일어나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상처받은 마음을 도닥여주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성공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부모만큼은 아이들에게 꼭 해줬으면 하는 말이다.
소중한 우리 아이가 인생에서 겪게 될 실패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단단한 힘을 길러주는 동화책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큰 성공을 이룬다. 그 실패가 실력이 되도록 하여 성장한다면!

https://youtu.be/eb42F1T_UlQ?si=oZ-eko6w2YFTLX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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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맞춤법 이야기로 먼저 시작합니다 ^^ '삼으라' vs. '삼아라'
일상적인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명령의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라면 어미 '-아라'를 써서 '삼아라'처럼 쓰는 것이 바릅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아니한 청자나 독자에게 책 따위의 매체를 통하여 명령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라면 어미 '-으라'를 써서 '삼으라'처럼 쓸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오늘 설교 제목은 '삼으라'를 맞게 사용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Key Points
- 실패는 낭비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의 실패 후, 하나님께로 돌아가 예배를 회복하며 믿음을 더욱 굳세게 했습니다.
- 롯은 세상의 평안과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며 소돔 근처로 갔고, 그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실패 후라도 하나님의 길을 따르고 믿음으로 새로운 길을 선택하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3:1-13을 기반으로 실패를 낭비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는 방법에 대해,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특히, 실패 후의 선택이 어떻게 우리의 영적 성장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지 분석합니다.
배경: 아브라함과 롯의 실패와 분리
창세기 13:1-13은 아브라함(당시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이 이집트에서 돌아와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집트에서의 실패는 아브라함이 스스로를 있을 수도 있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내인 사래를 여동생으로 소개하며 거짓말을 한 사건으로, 이는 그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가족 관계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후 아브라함은 1)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무너졌고 2) (사람과의)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사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었지요. 위기가 우리 믿음의 분량(量)을 보여줍니다.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이 실패 후, 하나님의 개입으로 오히려 그들은 부요해졌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목자들 사이에 목초지 땅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고, 롯은 요단 강 계곡의 비옥한 땅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소돔 근처로, 나중에 악으로 알려지고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지역이었습니다.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삼는 아브라함의 변화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의 실패 후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바로잡음:
아브라함은 성경 본문에 "올라가다"라고 표현되었듯이, 이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벧엘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연어의 귀소 여행에 비유할 수 있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우리가 매일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길로 돌아가야 함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에서 비록 쓰러져도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지만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사라집니다. 그 즐거움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고난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되돌리기 위해 풍랑을 일으키셨고, 아브라함을 회복시키기 위해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예배의 회복:
아브라함은 벧엘, 즉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 이전에 세웠던 제단 앞에서 그는 마침내 다시 '하나님!'을 부르며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이는 이집트에서의 웅장한 피라미드와 바로의 권위 앞에서 너무 초라해 보였기에 쌓지 못했던 여호와를 향한 제단, 그리고 아마도 그로 인해 잃었던 예배의 열망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며, 그의 기도가 뻥 뚫리고 첫사랑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예배가 첫사랑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롯의 다른 선택과 다른 결과
반면, 롯은 같은 실패를 애굽에서 경험했지만, 이제는 부요함이라는 새로운 시험에 직면했습니다. 가난이란 어려움이 지나가자 부요함이란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부요함은 기근보다 더 큰 위험이었습니다.
역경은 때로 사람을 곤경에 몰아넣는다 하지만 역경을 견디는 자가 백 명이라면 번영을 견딘 자는 한 명에 불과하다
- 토마스 칼라일 -
게다가 부끄럽게 얻은 재물은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애굽에서 바로를 통해 그들은 재산을 늘렸지만 그다지 떳떳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3:5-6에 따르면, 그들의 재산이 너무 많아져 가나안의 땅이 그들을 감당하지 못했고,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간의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에 대해 자신의 재산권을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서로 양보만 있었으나 재산의 규모가 커지자 자기 재산에 대한 주장이 생긴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마치 아들과 같던 롯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떠나지 못한 유일한 혈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헤어질 결심
위기 때 침묵은 금이 아닙니다. 서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제발(na, 바라건대, 청컨대, 제발)”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서로의 관계를 우선하며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했지만, 롯은 아브라함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재산에 대한 이해의 계산적으로 요단 강 계곡을 선택했습니다 (창 13:10-11). 그의 선택 기준은 이집트와 비슷한 비옥함이었으며, 이는 소돔 근처로 이어졌습니다. 창세기 13:13은 소돔 사람들이 매우 악했다고 기록하며, 이는 롯의 선택이 영적으로 위험한 길임을 암시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이 너무 싫었으나, 롯은 애굽이 너무 좋았던 것입니다. 재산을 얻게 된 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해석’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영적 이질감으로 너무 힘들었고 벧엘의 제단이 너무 그리웠으나, 롯은 애굽에서 영적 동질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인생의 사건 속에서 당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세요.
실패 후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는 실패 후의 선택이 우리의 성장과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실패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며, 그의 선택은 하나님의 약속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반면, 롯은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며, 이는 그의 영적 삶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실패를 낭비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기 위해, 우리의 해석과 선택이 중요함을 가르칩니다.
무엇을 보느냐 보다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롯은 ‘동쪽으로’ 옮겨 갑니다. (창 13:11)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제단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현대적 적용: 실패를 성장으로 바꾸는 방법
기독교적 관점에서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바꾸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인생의 방향을 조절해야 합니다.
인생은 방향이 중요합니다. 작은 방향 차이가 갈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멀어지게 됩니다. 포병이 360'도'가 아니라 6400 'mil'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방향에서 훨씬 정밀성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롯을 쫓아내야 합니다.
롯은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역시 롯과 같은 판단을 했을 것이니까요. 우리 안에도 롯과 같은 기질이 있습니다. 우리 안의 욕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복으로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세상을 향한 열망, 갈망, 욕심을 주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땅을 바라봐야 합니다.
항목 | 아브라함 | 롯 |
실패 후의 행동 | 벧엘로 돌아가 예배 회복 | 부요함 추구, 소돔 근처 선택 |
선택 기준 | 하나님의 약속과 믿음 | 물질적 이익과 비옥함 |
결과 | 하나님의 복과 약속 재확인 | 소돔의 악과 가족 갈등 |
영적 성장 | 첫사랑 회복, 믿음 강화 | 영적 위험, 물질적 초점 |
그 밖의 이야기와 결론
실패 축하 파티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에서는,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큰 성공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실패가 실력이 되고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우리의 선택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창세기 13:7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들의 다툼을 지켜봤다고 하며, 이는 우리의 믿음이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결론
창세기 13:1-13은 실패를 낭비가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아브라함은 실패 후 하나님께로 돌아가 예배를 회복하며 믿음을 강화했고, 이는 그의 복을 보장했습니다. 반면, 롯은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며 잘못된 길로 갔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실패를 통해 배우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며, 믿음으로 선택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실패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더 깊은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실패 축하 파티 (권은혜 작)
아이들에게 ‘실패를 많이 해야 성공해.‘라는 실패=성공의 공식의 메시지 보다, ‘실패는 두려운 게 아니야.“ 라는 마음으로 단단함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겪게 될 크고 작은 실패에도 자신을 지켜내며 일어나는 힘도 성공이라고 알게 해주는 것도 가치 있다. 그리고 끝끝내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일어나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상처받은 마음을 도닥여주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성공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부모만큼은 아이들에게 꼭 해줬으면 하는 말이다.
소중한 우리 아이가 인생에서 겪게 될 실패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단단한 힘을 길러주는 동화책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큰 성공을 이룬다. 그 실패가 실력이 되도록 하여 성장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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