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 성공회 가톨릭 실천 신학자의 시각
이파리가 없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오늘 제목의 책의 저자인 '케네스 리치'는 영국의 성공회 사제이고, 신학자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사회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성공회 자체가 약간 전체 기독교 스펙트럼을 압축해 놓은 교파 같은 느낌이 있어서, 굉장히 넓은 품을 가진 교회입니다. 이른바 자유주의, 복음주의, 가톨릭을 성공회 안에 흐름으로 녹아져 있어서, 성공회 가톨릭, 성공회 복음주의, 성공회 자유주의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흔히 고교회, 저교회, 광교회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보통 성공회 가톨릭을 대표로 하는 사람은 로한 윌리엄스이고, 성공회 복음주의하면 톰 라이트, 존 스토트, 성공회 자유주의하면 존 바톤, 키스 월드, 마커스 보그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성공회 복음주의자들이 주로 소개되었는데, 요즘 한국에서는 성공회 자유주의와 성공회 가톨릭이 점점 더 많이 소개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그런 성공회 가톨릭을 대표하는 로한 윌리엄스는 굉장히 대표적인 영성가이자 신학자라고 할 수 있고, 예전에 이런 성공회 가톨릭을 주도했던 운동이 옥스퍼드 운동입니다. 존 헤이 뉴먼을 중심으로 전개된 전래 성공회 내의 옥스퍼드 운동은 근대화와 계몽주의에 비판적으로 대응하며 그리스도교회의 참된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초대 교회의 전례와 신학을 되살리려는 노력으로, '소책자 운동'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습니다. 존 헤이 뉴먼과 그의 동료들은 많은 소책자들을 편찬했으며, 이를 통해 그들의 신학적 메시지를 널리 전파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로알 리스를 중심으로 한 성공회 가톨릭 신학자들은 '주빌리 그룹'을 결성하여 다양한 소책자들을 발간했습니다. 이들은 옥스퍼드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전래 가톨릭 성공회의 정통성에 뿌리를 두면서도, 초기 교회의 교부들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현대 사회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신학적 운동을 전개하며, 전통과 현대성을 아우르는 신학적 방향성을 추구했습니다.
케네스 리치는 로알 리스와 비슷하지만, 더 선구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케네스 리치는 대부분의 인생을 마약 중독자들을 치유하고 재활시키는데 평생을 투신했습니다. 그래서 사회 운동가로서의 면모도 강했고, 평생 동안 사회에 철저하게 몸을 바쳐서 버림받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사람입니다. 알레스타 맥킨타이어 같은 경우에는 케네스 리치를 영성과 사회적 실천에 결합한 그리스도교 영성가이자, 그리스도교 영성을 한 단계 진보시킨 사상가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도 선포와 섬김의 밀접한 연결, 사회적 행동의 강조 등이 챕터로 들어가 있을 정도로 영성과 실천을 강조하는 분이라는 것이 책 내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영미권에서 95년도에 처음 나왔는데, 케네스 리치가 2015년에 돌아가신 이후에도 지금까지도 거의 30년 가까이 사순절 스테디셀러로 잘 나가고 있는 책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성금요일 설교, 고난주간 설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듣는다 하면, 보통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 (십자가 죽음의 속죄 효과는 어려우니까 설명 안 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리해서 하셨으므로 우리의 죄는 사라졌고 자유로워졌으니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착하게 잘 살아야 된다는 정도의 메시지가 중심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또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가 얼마나 역설적이고 부조리하고 모순 덩어리고 끔찍한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십자가의 역설'—즉, 하나님이라는 분이 세상의 추문 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뒤 부활하셨다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신비—를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기독교 영성의 역사는 이 난해한 역설을 이해하고 삶에 통합하기 위해 고투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네스 리치는 이 복잡한 신학적 질문들을 보다 평이한 언어로 풀어내어, 십자가를 묵상할 때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또한 이 신비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 탐구합니다. 결국, 이 책은 십자가의 부조리와 역설성,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구원의 신비를 신학적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실존적 고민과 신앙적 묵상으로 끌어내려 독자들이 삶의 자리에서 깊이 사유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책의 1장은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이라"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며, 십자가의 본질적인 부조리함과 역설성을 강하게 부각합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다”—를 토대로, 케네스 리치는 십자가가 가진 충격적인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히 신학적 설명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신비이며, 인간의 지성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강력한 역설입니다.
현대 기독교가 종종 십자가의 메시지를 지나치게 부드럽고 매끄럽게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케네스 리치는 그러한 단순화를 경계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복음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면서, 십자가의 불편함과 부조리를 희석시킵니다. 그 결과, 십자가가 가진 깊이 있는 신비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본질적인 역설성이 사라지고 맙니다.
케네스 리치는 이 책을 통해 십자가를 "깔끔한 이론"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를 거부합니다. 오히려 그는 십자가가 우리 삶에 불편함과 도전을 던지는 상징임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어두움과 부조리를 직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 명령은, 결코 가볍거나 쉬운 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십자가를 덜 무겁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편안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은, 고통과 희생이라는 그 본질적 의미를 희석시킵니다.
또한, 케네스 리치는 십자가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각자의 삶에 깊이 결부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히 대리 속죄의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어두움과 죄성까지도 직면하게 합니다. 십자가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우리 안의 숨겨진 약함과 추함을 마주하게 되며, 동시에 그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껴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진실은 편안함을 주기보다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때론 당혹스럽게 합니다. 십자가의 본질은 경외심과 두려움을 동반하며, 그 깊이를 이해할수록 더욱 큰 책임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단순히 “감사함으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벼운 메시지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어두움과 마주하며, 그곳에서 부활의 빛을 발견해야 한다는 점을 케네스 리치는 강조합니다.
결국, 이 책은 십자가를 단순화하거나 납득 가능한 논리로만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입니다. 케네스 리치는 십자가의 본래적 의미—역설, 부조리, 그리고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신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이 얇지만 깊은 책에 담아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십자가에 내재된 불편함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깊은 신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초대받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를 줄이려는 유혹을 거부하고, 그 안에 담긴 역설을 직면하는 것, 이것이 케네스 리치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진정한 메시지입니다.
케네스 리치는 이 책에서 십자가를 단순히 이해하거나 해명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십자가가 선포의 대상이며, 무엇보다 참여해야 하는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십자가는 지성으로 완벽히 설명되거나 납득될 수 있는 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종종 십자가를 단순히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선언으로 축소시키고, 그 의미를 논리적으로 포장하려 합니다. 그러나 케네스 리치는 바로 이러한 접근을 비판합니다.
그는 우리가 십자가를 외부적인 사건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나는 구원받았다. 감사합니다!"라는 단순화된 논리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단순히 감사의 대상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곧 제자들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며, 그 길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케네스 리치는 십자가를 참여적 사건으로 봅니다. 단순히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 예수님께서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통, 부조리,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종종 "가볍게" 만들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감당하셨으니, 우리는 더 이상 고통이나 희생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신앙을 통해 더 나은 삶, 더 큰 복을 누리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하지만 케네스 리치는 그런 사고방식을 비판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본질적으로 불편하고 고된 길이며, 때로는 우리가 피하고 싶은 길입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어두움과 결부되어 있고,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자아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직면하게 합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가장 깊은 어둠과 죄성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 속에서조차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십자가를 해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십자가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불편함을 제거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신비와 깊이를 놓치게 됩니다. 케네스 리치는 십자가를 “인간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라고 표현하며, 그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 십자가는 단순히 설명하거나 이해할 대상이 아니다.
- 십자가는 선포의 사건이며, 참여의 부름이다.
- 십자가는 인간의 어둠을 직시하게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 신앙은 십자가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여정이다.
- 우리는 종종 십자가를 ‘가볍게’ 만들려는 유혹에 빠지지만, 케네스 리치는 그 유혹을 경계한다.
케네스 리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십자가를 단순히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십자가를 지고 따를 준비가 되었는가?”
이 물음은 단순히 신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실존적인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십자가의 신비를 온전히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 신비 속에 참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케네스 리치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십자가의 두 가지 측면 - 정치성과 어둠의 역설
케네스 리치가 이 책에서 독자들이 가장 당황스러워하는 두 가지 주제를 언급하는데, 첫째는 십자가와 정치적 측면, 둘째는 십자가의 어둠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두 가지는 기존에 익숙한 기독교 해석과는 다른 깊은 문제의식을 던지기에 독자들에게 충격과 당혹감을 안겨줍니다.
📌 1. 십자가와 정치성: 단순한 개인 신앙을 넘어
케네스 리치는 십자가가 결코 정치적 맥락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지지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십자가 자체가 인간 사회의 구조적 악과 맞서 싸우는 깊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단순히 종교적 사건이 아닌, 로마 제국의 정치적 처형 방식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십자가는 이미 정치적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케네스 리치는 두 극단을 모두 경계합니다:
1. 신앙을 개인화·내면화하는 경향 — 십자가를 단순히 개인 구원의 상징으로 축소하여, 사회적 책임이나 현실 정치와 분리시키는 태도.
2. 기독교를 특정 정치 이념에 결합시키는 경향 — 기독교의 메시지를 특정 이념이나 당파의 도구로 사용하는 태도. 이는 보수든 진보든 동일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양극단을 모두 비판합니다. 케네스 리치에 따르면, 십자가의 정치성은 권력 쟁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리를 내려놓고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비폭력적이며, 세상의 논리에 맞서는 깊은 저항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시 유대 사회 내 여러 정치 세력—바리새파, 사두개파, 열심당—어느 쪽에도 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오히려 이 모든 구도를 넘어선 새로운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종종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예수님의 메시지를 끼워 맞추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는 일입니다.
기독교적 정치는 무엇인가?
- 단순히 특정 정치 세력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다.
- 세상의 약자,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들과 연대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 궁극적으로 권력의 정상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삶이다.
케네스 리치는 십자가의 이 정치성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는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 성매매 여성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과 연대했고, 이는 단순한 자선 활동을 넘어선, 십자가 신학을 삶으로 실천한 사례입니다.
📌 2. 십자가의 어둠: 빛이 아닌 어둠 속의 하나님
두 번째로 독자들이 당황스러워하는 부분은 케네스 리치가 십자가를 단순히 "빛"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는 십자가가 가장 깊은 어둠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 실존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 내려오셨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신앙의 여정을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과정으로 설명하지만, 케네스 리치는 십자가가 곧 어둠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신 순간, 그분은 신과의 단절이라는 가장 극한의 어둠을 경험하셨습니다.
이러한 어둠은 단순한 절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실존의 밑바닥까지 내려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신비입니다. 케네스 리치는 이 어둠을 통해 우리가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빛 속에서보다 어둠 속에서 더 진실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둠을 두려워합니다.
- 어둠 속에 숨은 자신의 약함과 부끄러움을 보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케네스 리치는 이 어둠을 직시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십자가는 해명의 대상이 아니라 선포의 대상이며,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참여해야 할 대상이다.”
십자가의 어둠에 참여한다는 것은, 인간의 약함과 실패, 부조리와 마주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신학적 개념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깊은 차원을 건드리는 메시지입니다.
케네스 리치는 이 두 가지—정치성과 어둠—를 통해 현대 기독교가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미화한 십자가의 본질을 되찾으려 합니다.
- 십자가의 정치성 → 단순한 개인 구원에서 벗어나, 사회적·구조적 악과 맞서 싸우는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
- 십자가의 어둠 →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 없는 신비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줌.
케네스 리치는 오늘날 복음이 지나치게 개인화되고 내면화되면서, 십자가의 급진성과 역설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합니다. 그 결과, 십자가는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고, 단순히 위로와 축복만을 주는 상징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십자가는 안락한 위로가 아니라, 인간 실존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다.”
케네스 리치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 당신은 십자가를 단순히 구원의 상징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 십자가의 어둠과 부조리, 그리고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사랑을 직면할 용기가 있는가?
- 십자가가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독자들에게 십자가를 단순히 "감사"나 "위로"의 상징으로만 소비하지 말고, 그 어둠과 정치적 급진성까지도 끌어안으라고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어둠과 부조리마저 하나님이 끌어안으신 사건이며, 그 어둠 한가운데서만 우리는 진정한 빛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절망을 끌어안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동시에 세상의 불의와 맞서는 깊은 저항의 상징이다.”
복음의 희석화를 극복하려면?
오늘날의 기독교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복음의 희석화를 지적합니다. 현대 기독교가 개인화와 내면화에 치중하면서, 십자가의 급진성과 사회적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것입니다. 케네스 리치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두 가지 논점을 강조합니다: 십자가의 정치성과 십자가의 어둠입니다.
📌 십자가의 정치성: 길들여지지 않은 복음
케네스 리치는 십자가가 단순히 내면의 구원이나 도덕적 교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십자가는 언제나 현실의 구조적 악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이었고,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단순히 종교적 사건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정치적 처형 도구였으며, 이는 곧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는 종종 십자가의 급진성을 희석시키고, 복음을 특정 이념이나 가치에 맞춰 길들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른바 "애국주의자 예수", "민족주의자 예수", 또는 "관용의 아이콘으로서의 예수"와 같은 이미지가 그런 예입니다. 예수님을 특정 이념에 끼워 맞추고, 그분의 메시지를 단순화하거나 왜곡하는 것이죠.
케네스 리치는 이러한 경향에 강력히 저항합니다. 예수님은 관용적이고 온화한 이미지에만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분이셨으며, 당시의 종교적·사회적·정치적 질서에 대한 깊은 저항을 표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전투는 비폭력적이고 자기희생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 논리를 거부하고, 권력의 중심이 아닌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케네스 리치는 우리가 십자가의 정치성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외치는 협의의 정치를 넘어, 세상의 구조적 악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보다 근본적인 정치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 그것은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는 정치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정치입니다.
-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힘은 권력 쟁취가 아니라, 자기희생적인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정치적 상징이면서도, 기존 정치 질서와 동일시될 수 없는 초월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케네스 리치는 오늘날 기독교가 십자가를 특정 이념에 맞추려는 시도를 거부하고, 그 본질적인 급진성과 저항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십자가의 어둠: 빛으로 가는 길이 아닌, 어둠에 머무르기
케네스 리치가 독자들을 가장 당황스럽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지점은 십자가를 어둠으로 해석하는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청중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려 합니다. 그러나 케네스 리치는 오히려 십자가의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십자가의 순간을 가장 극심한 절망의 순간으로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는 완전한 어둠의 순간이었습니다. 케네스 리치는 이 어둠을 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직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어둠을 통한 자기 직면
어둠은 우리의 실존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포장하고, 연약함과 결핍을 숨기려 합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벗겨지고, 우리는 자신의 본모습과 마주해야 합니다.
- 내면의 탐욕, 교만, 두려움, 상처 등 숨기고 싶은 모습들이 드러납니다.
- 그러나 케네스 리치는 바로 이 순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어둠은 단순한 절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빛이 있습니다. “가장 부서진 곳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는 이 역설이 케네스 리치 신학의 핵심입니다.
🖤어둠 속에 머무르기
현대 기독교가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어둠 속에 머무르는 경험'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빛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십자가의 어둠을 견디지 못하고, 빠르게 부활의 기쁨으로 넘어가려는 것이죠. 그러나 케네스 리치는 설교자들이 청중을 빛으로 인도하기보다는, 어둠 속에 머물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어둠 속에서:
-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직면합니다.
-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 그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의 순간입니다.
⚔️ 3. 기독교 신앙의 급진성과 십자가의 역설
케네스 리치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신학적 이론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급진성을 되찾으려 합니다. 현대 기독교가 소비주의와 성공주의에 물든 지금, 십자가의 어둠과 정치성을 직시하라는 그의 요청은 강력한 도전입니다.
- 십자가는 길들여질 수 없는 상징입니다.
- 그것은 우리의 이념과 체계에 맞춰 재단될 수 없는 부조리와 역설을 품고 있습니다.
- 동시에, 그 부조리 속에서 가장 깊은 사랑의 진실이 드러납니다.
케네스 리치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 “당신의 신앙은 길들여졌는가?”
- “십자가의 불편함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 “십자가의 어둠 속으로 기꺼이 들어갈 용기가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십자가의 불편함과 부조리, 어둠을 직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급진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고, 우리가 숨기고 싶은 모든 것들을 드러내며, 결국에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부조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내 삶에서 외면하고 싶은 어둠은 무엇인가?
내가 마주해야 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십자가는 단순히 구원의 기호가 아니라, 부조리와 어둠, 저항과 사랑이 동시에 존재하는 역설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끌어안고도 그 안에서 빛을 발견하게 만드는 신비입니다.
“사순절은 빛으로 가는 시간이 아니라, 어둠을 직시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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