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9 주일설교
💡(창 13:14~18)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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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장 14-18절은 아브람과 롯이 가축이 많아지면서 헤어지게 되고, 롯은 소돔 근처의 비옥한 땅을 선택하고 아브람은 가나안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네가 보는 이 온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리라.” 내가 네 자손을 땅의 티끌 같이 많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일어나서 그 땅을 두루 다니며 그 광활함을 보라 내가 이 땅을 네게 주었노라.” 아브람은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근처 헤브론으로 가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도입질문 : 이별의 서운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그러한 감정을 해결했습니까?
- 근래에 저는 여러 이별의 서운함, 상실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12월에는 아버님의 유골을 봉안하였습니다.
- 사경을 헤매시는 어머니를 두고 여러 복잡한 마음입니다.
- 결혼시켜 분가한 아들에 대한 마음도 여러 갈레입니다. 진정한 독립을 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 임원 재직했던 그룹과의 이별도 쉽지 않았습니다.
Introduction
조망권은 공간과 관련이 깊고, 공간은 수직 공간과 수평 공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을 얼마나 넓게 보느냐에 대한 수평적 조망권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수직적 조망권이 틔여서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13:14-18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보라"고 하신 말씀으로부터 오늘 설교말씀을 살펴보겠다.
아브라함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1]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첫 번째로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을 때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부터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애굽에서 나오자마자 벧엘로 달려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불렀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셨다.
그런데 아들과도 같았던 롯과의 헤어짐으로 큰 상실감을 겪고 있었기에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은 것이다.
- 창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3가지를 떠나야 했으나 마지막까지 ‘친척’ 롯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롯을 떠나보내자 비로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 “떠나보내야, 우리가 성장하는 만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 자녀가 없던 아브라함에게 롯은 깊은 애착의 대상이었고, 자기 인생의 보호장치와도 같은 유일한 혈육이었다.
- 그러나 그를 떠나보내자, 내려놓자, 기다리던 하나님의 음성이 함께 하셔서 다시금 살아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 하나님의 음성이 없으면 우리는 텅 빈 인생을 살게 된다. 떠나보낼 때 하나님의 음성으로 충만해진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인생이 다시 피어나게 된다. 내어놓으면 채워지게 된다
[2]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둘째,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것을 볼 때 God’s Perspective
- 창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 ‘눈을 들어’ = 아브라함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개를 떨구고 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게 하신 것을 보는 것이다.
- “눈을 들어”
- 창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급 땅과 같았더라
- 롯은 눈을 들어 욕심의 눈으로 자기가 보고 싶은 소알까지의 요단 땅을 바라보았다.
- 창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급 땅과 같았더라
- ‘들라’ = ‘Na, 나’
- “제발” 단순한 명령을 넘어선다. 성경에 단 4회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성경에서 4회 사용된 단어다.(?)
- 간청과 권고를 나타내는 ‘불변사’. 제발, 바라건대, 청컨대, 원컨대, I pray, 자, 이제 now
- 즉, 하나님의 특별한 요청이었다.
- 구양성경에서 405회 나온다.
- 시 118:25 ‘호쉬아 나’ 오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O Lord save us.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시 시 118:26도 인용함
- 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 마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 그 단계를 넘어가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기 원하시는 것을 주목하라.
- 롯이 바라본 땅은 한 평도 자기 땅이 되지 않았으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라본 곳은 지금도 이스라엘 땅이 되었다.
- 아무것도 없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실상’이었다.
- 신앙은 action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한 reaction이다.
- 신앙은 내가 먼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나 뜻에 응답하는 자세라는 의미입니다.
- 즉, 내 뜻과 계획을 따르는 삶(action) 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따라 응답하는 삶(reaction) 이 진정한 신앙임을 나타냅니다.
- 수동적 대응을 능동적으로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하나님 말씀에 반응(reaction)하는 것은 원래 수동적(passive) 일 수 있지만, 그것을 소극적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마음으로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단순히 기다리고 있기만 하는 자세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응답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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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보는 전망은 우리 주변에서 보는 것보다 더 풍부하고 아름답다”는 믿음에 초점을 맞춘 주석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특징
[3]
첫째, 지금, 이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문제를 겪으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지지만, 우리가 서 있는 그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롯처럼 자기 욕심 대로 그 땅을 떠나면 안 된다.
- 창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 “너 있는 곳에서”
- 복의 시작은 내가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 “너 있는 곳에서”
- 창 13:17하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I am giving it to you. 내가 그것을 네게 지금 주고 있다.
현실을 피하지 말고 부정하지 말고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관점을 구하라.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실 것이다.
[4]
둘째, 영원한 복입니다.
- 창 13: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 영원히 이르리라
- 이 땅에서의 복은 유통기한이 있으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영원하다. 그 복을 받아야 이 땅에서의 복에 속아 넘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이 영원한지 아니한지’를 기준으로 선택하라.
“한 번뿐인 인생은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주만을 위한 일이 영원하리라.”
[5]
셋째, 셀 수 없을 만큼 풍성한 복입니다.
- 창 13: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 롯의 이동으로 인해 생기는 먼지, 티끌을 바라보게 하시며 (시청각 교육) 그렇게 많은 후손을 약속하신다.
- 창 13: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밟는 땅을 네게 주리라는 약속이다.
- 20년 전 결혼 준비과정에서 신혼집을 알아볼 때 미아리, 쌍문동 근처에서 살만한 집을 찾지 못하다가 월계동에서 집을 찾았다. 약속의 땅과 같은 그 허름한 집을 친구와 함께 도배하고 칠했다. 두 달 정도 공을 들인 그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6]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어디로 이동합니까?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
축복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의 반응
- 창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남동쪽으로 30km 떨어진 고지로 옮긴다. 헤브론 = 교제의 자리(연합, 동맹). 마므레 = 활기차다, 강하다, 열렬하다.(마므레라고 불리는 아모리 사람의 개인 소유지)
-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한 땅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헤브론으로 옮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영적 고도가 높아진 것이다. 사방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영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 아브라함은 더 이상 소유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일체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이 되었다. (빌 4:12~13)
- 빌 4:12~13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애굽에서 실패했던 아브라함이 점점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 이후 아브라함은 헤브론에서 여생을 보낸다. 훗날 도피성 중의 한 곳이었으며, 다윗의 첫 수도가 될 땅이었다.
- 우리는 롯의 결말을 알면서도 왜 굳이 롯의 길을 따라가겠는가? 아브라함의 행로를 따라가자.
마무리 : 적용 기도
“오늘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삶의 깊은 상실과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 음성을 따라 믿음의 눈을 들었습니다. 때론 우리도 삶의 무게에 눌려 고개를 떨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우리를 부르시며, 눈을 들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복과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가 붙들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롯'을 떠나보내게 하시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충만케 하소서.
삶의 무게와 근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우리에게 말씀하신 주님, 이제는 눈을 들어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욕심과 생각이 아니라, 주님이 보여주시는 영원한 약속과 복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허락하옵소서.
우리가 처한 지금 이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될 줄 믿습니다. 세상의 것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의 동행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인생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원한 복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주님이 보게 하시는 것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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