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과 발락 이야기
발람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웃긴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발람 (Balaam, 히브리어 בִּלְעָם)은 메소포타미아 북쪽의 브돌(Bethor) 또는 유프라테스 인근 출신의 주술사이자 예언자 (영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로, ‘축복하면 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 자’로 알려짐)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발람과 관련된 내용은 민수기 22~24장, 신명기 23장, 여호수아 13장, 베드로후서 2장, 유다서, 요한계시록 2장 등에 있습니다.
시기적 배경
민수기 내용은 시기적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을 향하던 광야 40년의 마지막 무렵'입니다.
무려 40년입니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이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사실 이 여정은 이론상으로는 두 주, 길어도 한 달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단기간에 끝날 여정을 무려 40년으로 연장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되어가는 과정에 있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말다툼과 반항, 탐욕에 익숙해져 있었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경외하고 예배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노예로 살던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는 시간과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이는 모세에게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는 분노하기도 했고, 지쳐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에는 외부의 원수들까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죠.
그래도 그들은 서서히 꾸준히 나아갔고, 이제 목적지에 거의 도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의 감동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히브리인들은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의 세력을 이기며 지나갔습니다. 그들의 강한 행운과 전쟁의 승리는, 그들의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발락의 제안과 발람의 반응
모압 왕 발락은 이 히브리인들이 자기 땅을 지나가며 승승장구하는 소식을 듣고 당황했습니다. 군사력으로는 이길 수 없음을 직감한 그는 영적인 방법에 의지하기로 합니다. 기도와 제사, 그리고 주술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주술에 능한 사람을 찾기 위해 동쪽 유프라테스 강까지 뻗어 있는, 마술과 주술로 유명한 땅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름난 인물 ‘발람’을 발견했습니다.
발락은 사람들을 보내어 발람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백성이 이 지역을 휩쓸고 있습니다. 당신의 명성이 자자하니, 그들을 저주해 주세요. 당신이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즉답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겠다고 합니다.
"오늘 밤 이곳에 머무르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내일 아침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발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던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마법, 주술, 주문에 능한 자였으며, 영적인 존재에 익숙하긴 했지만 하나님은 그와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은 발람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저주하지 마라. 그들은 복을 받은 백성이다."
발람은 이 메시지를 듣고, 발락의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돌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제가 함께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나귀와 하나님의 천사
하지만 발락은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하며 다시 사람들을 보냅니다. 이번에도 발람은 겉으로는 돈에 관심 없는 척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발람은 결국 나귀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그때 '주의 천사'가 칼을 들고 그 길을 막아섭니다. 나귀는 천사를 보고 도랑으로 뛰어들었고, 발람은 화가 나서 나귀를 때립니다.
다음에 포도밭을 지나는 좁은 길에서 또다시 천사를 본 나귀는 울타리로 몸을 돌려 발람의 발을 다치게 합니다. 이번에도 발람은 나귀를 때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좁은 길에서 나귀는 아예 멈춰 서 버립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귀가 말을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 얼마나 충실히 일했습니까? 왜 나를 때리십니까?"
발람은 나귀가 말하는 것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내 손에 칼이 있었다면 널 죽였을 것이다!"라고 응수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발람의 눈을 열어 천사를 보게 하십니다.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발람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가 저주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축복이었습니다. 이를 본 발락은 다른 산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축복의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세 번째로 모세가 고별설교를 한 비스가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장차 오실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까지 하게 됩니다.
"나는 그를 보지만 지금은 아니며, 나는 그를 바라보지만 가까이 있지 않도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리라." – 민수기 24장 17절
발람은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랐지만, 결국 모압 여인들을 이스라엘에 들여보내 유혹하게 하고, 우상 숭배와 음행을 조장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발람의 꾀’로 신약 성경에서 거듭 언급되었고, 결국에는 여호수아 13:22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발람 이야기의 교훈
이야기는 우습고 드라마틱하며 생동감 넘칩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이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며 사랑했을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권에서 발람의 이야기가 다시 언급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발람은 말은 바르게 했으나 행동은 바르지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욕심과 야망, 이기적인 이익만을 좇은 인물이었으며, 요한계시록에서도 경고의 대상으로 언급됩니다.
우리는 발람을 찾기 위해 유프라테스까지 갈 필요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말만 번지르르한 ‘영 전문가들, 은사자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축복하고, 기뻐하며, 유쾌한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복음은 슬픔과 회개의 시간을 포함하지만, 결코 우울한 체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깊은 기쁨과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축복이다
발람은 저주하는 일이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아름답고 시적인 축복을 전하셨습니다. 이에 발락은 격분했지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요 발락, 무엇을 기대했나? 하나님의 일은 축복하는 것이니 당연하지 않습니까?"
'Jesus Christ >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려워 말라. 하나님은 내 방패요 큰 상급이시니 (1) | 2025.05.10 |
---|---|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는 시대, 성서는 현실에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바울의 '아디아포라' 개념을 중심으로 한 신약성서적 접근 (3) | 2025.05.05 |
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보다 큽니다 (2) | 2025.05.04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3) | 2025.05.03 |
무한 신뢰의 힘 (0) | 2025.05.03 |
자녀를 위한 40일 작정 기도 - 극동 방송 (3) | 2025.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