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어' 외로운 것이 아니라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외로운 것이다.
It's not being alone that makes you lonely, it's being surrounded by the wrong people.
외로움(loneliness)은 물리적 고립보다 정서적 단절이나 소외에서 비롯됩니다.
일상의 삶이 아니라, 임종을 앞둔 시점이라면 더 심각할 것입니다.
I used to think the worst thing in life was to end up alone. It's not.
The worst thing in life is to end up with people that make you feel alone.
예전에는 인생에서 가장 나쁜 것이 혼자서 인생을 마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아요.
인생에서 가장 나쁜 것은 당신을 혼자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생을 마치는 거예요.
나를 고독하게 하는 것은 고립이 아니라 부재(不在)이다
가장 외로웠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의외로 그때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도심의 번화한 카페, 텅 빈 좌석은 하나도 없었고, 사람들의 웃음과 음악이 뒤섞여 있었지만 제 마음에는 얼음 같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말은 오가고 잔은 비워졌지만, 아무도 제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외로움은 사람의 수에서 오지 않고, ‘나와 맞지 않는 공기’ 속에서 온다는 사실을.
1. 관계의 밀도가 만들어 내는 온도차
우리는 흔히 외로움을 양적인 결핍으로 여깁니다. ‘주말에 같이 밥 먹을 친구가 몇 명인지’, ‘메신저 알림이 얼마나 자주 울리는지’ 같은 지표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숫자가 늘어나면 빈자리가 채워질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내면을 따뜻하게 덥히는 것은 관계의 밀도이지, 숫자의 두께가 아닙니다.
나와 맞지 않는 대화는 촘촘해 보이지만 실은 구멍이 숭숭 뚫린 거름망과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말을 쏟아도 마음의 알갱이는 빠져나가고, 남는 것은 피곤뿐입니다. 반대로 서로의 언어가 맞닿는 순간, 한 문장만으로도 심장이 끓습니다. 그 한 사람이 가진 온기가 열 사람의 빈말보다 뜨겁습니다.
2. 맞지 않는 옷을 껴입을수록, 몸은 더 시리다
어린 시절 저는 눈치를 보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다수에 섞이기’는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맞지 않는 옷을 껴입고 있으면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결국 피부를 파고드는 추위를 피할 수 없습니다. 겉보기에 화려한 옷이어도 제 몸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찬바람이 스며듭니다.
낯선 모임에서 웃음 타이밍을 맞추느라 애쓰던 어느 밤, 저는 집으로 돌아와 두꺼운 외투를 벗어던지고서야 따뜻해졌습니다. 관계도 옷처럼, 헐겁거나 지나치게 조이면 체온을 빼앗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 진심을 찾아야 합니다.
3. 고독 속에서 비로소 들리는 내 목소리, 주님 음성
혼자 있는 시간은 때로 서글픕니다. 하지만 정적에 귀 기울이면, 처음엔 낯설었던 자신의 목소리가 서서히 또렷해집니다. 나를 가장 깊이 이해할 사람은 결국 저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를 이해하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분을 만날 때가 필요합니다.
장작불은 한꺼번에 붙지 않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뜨겁게 타올라야 굵은 장작도 불길을 얻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 주님과의 대화가 그 불씨입니다.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나는 무엇에 울고 무엇에 웃는 사람인가’를 알아갈 때, 비로소 세상과도 온전하게 연결될 준비가 됩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하늘과 사람과 연결될 준비가 됩니다.
4. 진정한 만남은 ‘서로의 방’을 방문하는 일
대학교 1학년과 4학년 때 기숙사에서 살았습니다. 저녁이 되어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4층 건물 기숙사의 각 방들에 불이 들어온 모습을 보면 때로는 따뜻했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반기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는 쓸쓸함에 눈가가 젖어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앞방 친구와 인사를 하고, 옆방 친구와 가족처럼 지내게 되면 기숙사도 가정 같은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특히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려면, 우선 자기 방을 단정히 정리해야 합니다. 내 방이 어떤 색과 향으로 채워져 있는지 모른다면, 누구를 초대해야 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제 방을 알고 나면, 상대의 방을 방문할 때도 조심스럽습니다. 문지방을 넘어설 때, 발소리를 낮추고 물건 하나에도 눈길을 주게 됩니다. 진정한 만남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달라’고 조용히 청하는 의식입니다. 서로의 방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서 공명할 지점을 찾는 과정입니다.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얕은 동행 대신, 드물지만 깊은 동행이 마음을 덥힙니다.
5. 외로움은 방향을 알려 주는 나침반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쓸쓸함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맞지 않는 곳, 맞지 않는 관계에서 “이곳은 네가 머무를 자리가 아니다”라고 몸과 마음이 동시에 울리는 경고음입니다.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저를 향해 방향을 돌립니다.
외로움 덕분에 저는 저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저를 사랑한 만큼 다른 이도 깊이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외로움은 떠나야 할 곳과 머물러야 할 곳을 구분해 주는 은밀한 나침반이었습니다.
맺음말: ‘함께’보다 ‘같이’의 가치
‘많이’와 ‘깊이’는 결코 같은 단어가 아닙니다. 사람들 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는 저에게,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더 외롭다”는 깨달음은 새로운 출발점이 됩니다.
혼자 걷는 밤길이 두렵다면, 어쩌면 아직 제 마음에 맞는 발걸음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수많은 길모퉁이에서, 같은 속도로, 같은 리듬으로 걸을 누군가는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람이 저를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먼저 저 자신과 맞닿는 법을 연습합니다.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위한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혼자이면서도 외롭지 않은, 어쩌면 둘이면서도 더욱 충만한 길 위에 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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