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한 걸음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그분을 먼 제삼자적 존재가 아닌, 친밀한 2인칭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을 부를 때, 우리는 몇 인칭으로 진짜 느끼며 부르고 있나요?
한밤중,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이런 질문이 마음 깊숙이 스며듭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내 앞에 계셔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 ‘아버지’로 느끼고 생각하며 부르고 있는가, 아니면 멀찍이 ‘그분’이라 여기고 그저 마음을 쏟아내고 있는가?"
70, 80년대 한국 교회에서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가리켜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던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당신’이라니, 버릇없고 무례하다”라며 만류하는 손길도 적지 않았습니다.
사실 ‘당신’이라는 말은 묘한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 일상에서 2인칭으로 쓰면 투박하거나 거칠게 들려 싸우자는 이야기로 취급되기도 하고,
* 부부 사이에서는 '여보, 당신'의 다정한 2인칭 애칭이 되며,
* 문어체에서는 “당신이 항상 기억해야 할 세 가지”처럼 관대하게 2인칭으로도 허용됩니다.
그리고 3인칭으로 쓰일 때, ‘당신’은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가리키는 존칭이 됩니다.
우리에게 오늘 하나님은 몇 인칭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3인칭 ‘그분’입니까?
아니면 눈앞에서 숨결처럼 가까이 계셔서 우리와 눈을 마주하시는 2인칭 ‘내 아버지 하나님’이십니까?
내 배우자와 자녀는 3인칭 ‘그들’입니까, 아니면 사랑의 온기가 흐르는 ‘당신’과 내 사랑의 대상인 '내 자녀' 2인칭입니까?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고객은 ‘그분들’이라는 멀찍한 군중입니까?
아니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2인칭입니까?
관계없는 3인칭이 아닌, 살아 있는 2인칭으로
하나님이, 내 가족이, 그리고 우리가 서로가
관계없는 3인칭 ‘그분’과 ‘그들’로 머무르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과 언어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고 곁의 이웃을
살아 있는 2인칭으로 초청합시다.
그 순간, 모든 거리는 사라지고 "동행"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걸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르고 계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Others > 생각의 흐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J. C. 라일(J. C. Ryle)의 『부모의 의무』 (1) | 2025.05.05 |
---|---|
환갑을 앞두고 (0) | 2025.05.05 |
나는 이 길을 한 번만 ... (0) | 2025.04.25 |
구정물과 마중물 (1) | 2025.04.22 |
세월이 가면 (1) | 2025.04.19 |
짧은 생각들 (0) | 2025.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