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님의 강연내용을 정리하다
한류가 세계인의 관심을 끌면서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가사가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우리말로 된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습니다. 지금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우리 한글이지만 이 눈부신 성취 뒤에는 참으로 길고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1부: 위대한 탄생, 그리고 450년의 침묵
이야기는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그 위대한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이렇게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문자가 탄생하고도 무려 450년 동안 제대로 쓰이지 못했습니다. 당시 지배층이었던 사대부들은 한문을 지식과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고, 한글을 '언문'이라 부르며 천시했습니다. 모든 공문서와 학문은 한문으로만 기록되었죠.
물론 예외는 있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 같은 분은 제주도 유배 시절 부인과 며느리에게 다정한 한글 편지를 60여 통이나 남기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드문 경우였고, 연암 박지원이나 다산 정약용 같은 위대한 학자들조차 한글로 된 저작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 글은 그렇게 오랫동안 어둡고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2부: 한글의 부활, 기적 같은 순간들
이 기나긴 침묵을 깬 것은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고종 황제께서 "모든 공문서는 국문(한글)을 기본으로 하라"는 칙령을 내리셨습니다. 드디어 한글이 나라의 공식 문자로 인정받는 첫걸음을 뗀 것입니다.

그리고 곧이어 우리 역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문이 등장합니다. 바로 '독립신문'입니다. 주시경 선생과 같은 선각자들이 주축이 된 독립신문은 아주 혁명적인 시도를 합니다. 바로 '띄어쓰기'의 도입입니다. 당시 우리 독립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띄어쓰기를 하면 훨씬 읽기 편할 것"이라고 제안했고, 주시경 선생이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띄어쓰기가 없는 중국어나 일본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띄어쓰기 하나가 한글의 가독성을 폭발적으로 높이며 우리말의 발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곁길로 잠시 빠지겠습니다.
제 지금 사무실은 배재정동빌딩에 있습니다. 그 앞에는 아펜젤러 기념공원이 있는데 사무실과 공원 사이에 작은 비석이 있습니다. '독립신문사가 있던 곳'이라는 표지입니다.
주시경 선생도 배재학당이 낳은 인재입니다.
저는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우리말 겨루기'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우리말 달인이 되기 위한 최고 난도의 장애는 '띄어쓰기'입니다. 띄어쓰기가 한글의 가독성을 높였으나, 한글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는 아이러니를 매주 체감하게 됩니다.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고,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 작전을 펼칩니다. 하지만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관련자들을 모두 투옥하고, 어렵게 모은 사전 원고를 압수해 버립니다.
그렇게 사라진 줄 알았던 원고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서울역의 한 창고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됩니다. 먼지 쌓인 2만 6천여 장의 원고 뭉치. 이것이 바로 1947년에 간행된 『조선말 큰 사전』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선조들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3부: 문학의 품에서 피어난 우리말의 아름다움
이렇게 되찾은 우리글은 위대한 문인들의 손에서 비로소 다듬어지고 세련되며, 눈부신 예술로 피어납니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무정』은 당시 신문 연재소설로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우리말이 대중과 소통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비록 식민지 현실을 외면했다는 한계는 있었지만요. 그 한계를 넘어선 것이 바로 염상섭의 『만세전』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일본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며 겪는 현실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문학 속에서 식민지 백성의 아픔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1920~30년대, 우리 시문학은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김소월은 우리 민요의 가락 위에 민족의 서러운 정서를 절절하게 담아냈고, 만해 한용운은 '님'을 향한 끝없는 기다림을 통해 빼앗긴 조국을 노래했습니다.
여기에 정지용 시인이 등장하며 우리 시는 모더니즘의 세련미를 입게 됩니다. 일찍 떠나보낸 자식을 그리며 쓴 시 「유리창」을 한번 보시죠.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이 얼마나 투명하고 아름다운 슬픔입니까. 이런 시어들이 우리의 감성과 언어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백석과 이용악이라는 두 거대한 산맥을 갖게 됩니다.
백석이 고향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 보였다면, 이용악은 분단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저미는 언어로 토해냈습니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이 시를 읽으면, 차가운 북녘 땅을 향한 시인의 애끓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4부: 시대를 담아낸 목소리, 오늘에 이르기까지
해방 이후, 우리 문학은 시대의 아픔과 함께 호흡하며 더욱 깊고 넓어졌습니다. 신동엽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라고 외치며 불의에 저항했고, 김수영 시인은 "풀이 눕는다"며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했습니다.
70년대, 신경림의 「농무」는 가난한 농민들의 삶의 애환을, 김지하의 「황토」는 민주화를 향한 타는 목마름을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노동자의 목소리를, 그들의 치열한 삶을 문학 속에서 생생하게 만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우리말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선각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위대한 문인들의 영혼이 담겨 빚어낸 소중한 유산입니다.
'훈민정음'에서 시작하여 온갖 역사의 풍파를 견디고, 마침내 'K-컬처'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오늘 우리가 쓰는 말과 글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야말로, 이 위대한 역사를 지켜나가는 우리의 자부심이자 책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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