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하나님을 더 잘 알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찬양이 필요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더욱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기도처럼 찬양합시다.
🌿 1️⃣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모든 것을 가지셨으며, 스스로 존재하시는(자존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이 '필요해서' 그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약 우리의 찬양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아야 하신다면, 그분은 이미 완전한 신(神)이 아닐 것입니다.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사도행전 17:25)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가 찬양하기를 원하실까요? 그 이유는 찬양이 하나님을 위한 것(God-centered)인 동시에, 우리를 위한 것(Us-centered)이기 때문입니다.
'필요'가 아닌 '가치'에 대한 반응
찬양은 하나님의 '필요(Need)'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그분의 '가치(Worth)'에 대한 합당한 반응입니다.
찬양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그림이나 장엄한 일몰을 볼 때 "정말 아름답다!"라고 감탄하는 것은, 그 그림이나 일몰이 우리의 감탄을 '필요로' 해서가 아닙니다. 그 대상이 이미 그 감탄을 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하심, 거룩하심, 사랑, 창조의 위대하심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위대하게 만들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미 위대하심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찬양은 관계의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필요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사랑의 관계를 확인하고 더 깊게 만드는 표현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의 언어입니다.
💡 2️⃣ 그러나 우리는 “찬양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사실, 찬양을 통해 더 큰 유익과 변화를 얻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시각'을 교정합니다. 우리는 삶의 문제, 고난, 결핍에 시선을 고정하기 쉽습니다. (마치 어두운 터널 안에 갇힌 것처럼요.) 그러나 우리가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시선은 문제에서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로 옮겨집니다. 찬양은 우리의 초점을 재조정하는(re-focusing) 가장 강력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목적'을 완성합니다. C.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을 찬양할 때, 그 찬양은 즐거움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 즐거움을 완성시킨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그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가장 큰 기쁨과 만족을 경험하게 됩니다. 거울이 무언가를 비출 때 가장 '거울다운'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가장 '인간다운' 것입니다.
찬양은 '감사'를 심화시킵니다. 어제 나눈 "기적이 먼저가 아니라 감사가 먼저"라는 맥락과 같습니다. 찬양은 감사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아직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할 때(예: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 위에 서게 되며, 이는 감사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고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이 커지고 문제는 작아집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받기 위해” 인간을 만든 게 아니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찬양은 그 사랑의 교제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通路(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신다.” (시편 22:3) 찬양할 때 우리는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찬양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찬양을 원하시는 이유는, 그 행위를 통해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깨닫고, 우리가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며,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 창조의 목적인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 통로입니다.
왜 콰이어(성가대) 찬양이 필요한가?
1. 콰이어는 예배의 '대변자'입니다.
회중 찬양이 모든 성도의 고백이라면, 콰이어의 찬양은 회중을 대신한 고백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노래하는 그룹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의 한 ‘입술’로 서 있는 것입니다.
역대상 25:6-7 “이들은 다 아비 밑에서 여호와의 전에서 노래하며 수금을 타며 비파와 제금을 잡아 직무를 수행하였으니...”
즉, 콰이어는 ‘노래하는 제사장’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광의 통로로 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2. 콰이어의 찬양은 회중의 신앙을 세웁니다.
성가대의 찬양은 단지 듣기 좋은 공연이 아니라, 말씀을 노래로 선포하는 설교입니다.
음악으로 복음을 전할 때, 말보다 더 깊이 사람의 마음에 닿습니다.
성가대의 찬양은 듣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은혜의 도구가 됩니다.
3. 콰이어는 하나 됨(연합)의 모범입니다.
성가대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소리, 하나의 메시지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인 연합과 조화를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예배적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혼자 찬양보다, 함께 드리는 찬양 속에 더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콰이어의 하모니는 성도의 연합, 사랑, 섬김의 영성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찬양 인도자가 ‘예배의 길을 여는 사람’이라면, 콰이어는 그 길을 함께 밝히는 빛입니다.
성가대가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찬양은 회중이 마음을 열고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돕습니다.
그들의 찬양은 단지 노래가 아니라, 예배로의 초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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