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 어머니와 고모의 손을 잡고 이리 삼남극장인지 시공관인지 모를 어느 극장에 갔습니다.
주변이 온통 캄캄한 것이 무섭기도 했지만 대형 화면과 큰 오디오 음향에 어린아이는 평생 잊지 못할 위압감을 느꼈습니다.
그 영화는 '두 아들'이었습니다. 네 명의 딸이 있기는 했지만 '두 아들'을 둔 어머니였기에 눈물 속에서 깊은 공감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훗날 기록을 보면 1971년 초의 겨울이었을 것 같습니다.
신성일, 윤정희 등을 보며 '아! 저런 분들이 영화배우구나...'라며 참 잘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어린 제 마음에 깊이 남은 이는 '꽃피는 팔도강산'에서 보던 황정순 님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운명의 아이러니
가슴 아픈 선택
남편을 잃은 여인 박씨(황정순)의 삶은 그날부터 멈춰버렸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가혹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요. 두 아들, 큰아들 민규(최무룡)와 둘째 철호(신성일)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사랑과 절망이 동시에 어려 있었습니다.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두 아들을 모두 키울 수 없을 만큼 경제적 여건이 어려웠던 박 씨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큰아들 민규를 양자로 보내는 것.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지만, 그것이 아이를 살리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박씨는 갖은 고생을 감내하며 둘째 아들 철호만을 홀로 키워냈습니다. 매일 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멀리 보낸 큰아들을 그리워했을 그녀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운명의 잔인한 장난
세월이 흘러 민규는 검사가 되었습니다. 법의 이름으로 정의를 수호하는 당당한 법조인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운명은 참으로 잔인했습니다. 박 씨는 자신이 낳은 아들인 줄도 모른 채, 민규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게 됩니다.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 상황입니까. 자신이 품에서 놓아준 아들 바로 곁에서, 그러나 그저 남의 집 식모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머니. 민규의 아내(윤정희)는 박 씨가 시어머니인 줄도 모르고 쌀쌀맞게 대합니다. 부잣집 딸로 자란 그녀에게 박 씨는 그저 고용된 사람일 뿐이었으니까요.
박 씨는 아들의 얼굴을 매일 보면서도, 아들이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저 묵묵히 일하며,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았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 저린 모성애입니까.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대면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들 철호가 사고를 칩니다. 그리고 두 형제는 인생에서 가장 극적이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검사와 범죄자로. 쫓는 자와 쫓기는 자로.
한 어머니의 품에서 태어난 두 아들이, 한 명은 법을 지키는 자로, 다른 한 명은 법을 어긴 자로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운명의 아이러니입니까.
형은 동생을 체포해야 하는 의무를 져야 했고, 동생은 형에게 쫓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평생 두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어머니 박씨가 있습니다.
형인 오검사는 철호를 검거하기 위해 어머니를 자기집 식모로 두고 철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립니다. 어머니의 자수 권유를 뿌리치고 민규가 오검사의 집을 터는 날 형제는 숙명적인 대결을 하고, 철호는 결국 체포되지만 두사람이 형제란 사실을 알게되어 감격의 재회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어린 제 마음에도 들었던 생각들입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운명이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
가난 때문에 자식을 포기해야 했던 어머니의 고통,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성장한 아들의 공허함, 그리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런 이야기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아직도 한국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영화의 이야기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수많은 어머니들이 겪었을 아픔이고, 가난과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진실된 고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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