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특히 근래에는 AI(인공지능)를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는 것을 넘어, 기독교인은 창조, 타락, 구원 등 기독교적 세계관의 틀 안에서 이를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창조의 관점: '하나님의 형상'과 '하위 창조자'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먼저 AI를 바라봅니다.
-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 성경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창세기 1:26-27). 여기에는 영혼, 자유의지, 도덕성,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포함됩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지능을 가져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AI는 영혼이 없는 피조물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 하위 창조자 (Sub-creator): 인간을 '하위 창조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듯, 인간이 도구와 기술(AI 포함)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창의성을 발휘하는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의 일부로 볼 수 있습니다. 즉, AI 개발 자체는 죄가 아니라 인간 지성의 발현일 수 있습니다.
2. 타락의 관점: 기술의 오남용과 죄성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이 만든 피조물(문화와 기술)에도 죄의 영향력이 미칩니다.
- 확장된 죄성: AI는 가치중립적인 도구처럼 보이지만, 이를 프로그래밍하고 데이터를 주입하는 인간의 편향(Bias)과 죄성이 반영될 수 있습니다. 혐오 표현을 배우는 AI, 불공정한 알고리즘 등은 인간 내면의 죄악이 기술을 통해 증폭된 사례입니다.
- 우상화의 위험: 기술 만능주의(Technism)는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에게 구원을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하나님 대신 기술을 우상으로 삼는 현대판 바벨탑이 될 수 있습니다.
3. 윤리적 관점: 이웃 사랑과 청지기 정신
기독교 윤리의 핵심인 '이웃 사랑'을 AI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대해야 합니다.
- 약자를 위한 기술: AI가 질병을 진단하고, 언어 장벽을 허물며, 위험한 노동을 대체하는 데 쓰인다면 이는 이웃 사랑의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 인간 존엄성 훼손 경계: 반면,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 생계가 위협받는 이웃, 딥페이크(Deepfake)로 인한 인격 살인, 과도한 감시 사회 등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결과입니다.
기독교인은 AI가 '효율성'만을 위해 인간을 도구화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4. 종말론적 관점: 두려움 vs 소망
AI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공상과학적 두려움(특이점 등)에 대해 기독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 주권 신앙: 기독교인은 역사의 주관자가 AI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설 수 없으며, 인간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비판: 일부에서는 AI와 결합하여 영생을 얻으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을 꿈꾸지만, 기독교는 육체의 부활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소망합니다. 기술을 통한 구원은 허상이며, 진정한 회복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다는 믿음을 견지해야 합니다.
요약: "지혜로운 청지기"
결론적으로 기독교인은 AI를 두려워하거나 맹신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잘 다스려야 할 도구(피조물)로 봅니다.
우리는 AI가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사용되도록, 윤리적 감수성을 가진 '지혜로운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기술신학(Theology of Technology)
대개 기독교인이 "이 기술을 어떻게 선교에 쓸까?"(도구적 관점)를 고민하지만 "이 기술이 우리를 어떤 존재로 바꾸고 있는가?"(형성적 관점)라는 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도 생각해야 합니다.
1. 자크 엘륄: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율적 시스템'이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우상은 '기술(Technique)' 그 자체라고 경고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 효율성이라는 새로운 신: 현대 기술이 '절대적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절대적 가치라면, 기술 사회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선(善)이 되고, 비효율은 악(惡)이 됩니다.
- 자율성: 때로는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증식합니다.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 기독교적 비판: 성경은 '효율'보다 '거룩', '사랑', '희생' 같은 (때로는 비효율적인) 가치를 중시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할 수 있다(Can)"는 이유만으로 기술을 받아들이지 말고, "해야 하는가(Should)?"를 묻는 저항적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2. 닐 포스트먼: "우리는 무엇을 내어주고 있는가?"
기술이 문화와 종교를 집어삼키는 현상을 조심해야 합니다.
- 파우스트의 거래: 포스트먼은 모든 기술적 변화는 '거래(Trade-off)'라고 말합니다. AI는 우리에게 엄청난 정보 처리 능력을 주는 대신, 깊이 있는 사고력과 영적 직관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 도구에서 테크노폴리로: 과거에는 도구가 문화를 위해 존재했지만(도구 사용 시대), 이제는 문화가 기술에 종속되는 시대(테크노폴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의 권위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권위를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 기독교적 비판: 우리가 "자신을 즐겁게 하다가 죽어가는(Amusing Ourselves to Death)" 상태를 경계해야 합습니다. 화려한 미디어와 기술에 취해 십자가의 고난이나 진리의 엄중함을 잊게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마샬 맥루한: "미디어는 메시지다"
-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AI 챗봇을 통해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그 '매체(AI)'의 특성(즉각성, 편의성, 파편화)이 '메시지(복음)'를 변질시킬 수 있습니다.
- 신체와 영혼의 변화: 기술은 인간 신체의 확장인 동시에 절단입니다. 자동차가 다리의 기능을 확장했지만 걷는 능력을 퇴화시켰듯, AI는 뇌를 확장하지만 '묵상하는 능력'을 퇴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4. 종합: 그래서 기독교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들의 비평을 종합하면, 기독교인의 자세는 '기술 혐오(Luddite)'가 아니라 '기술의 탈신비화(Demystification)'여야 합니다.
- 우상 타파: AI가 전지전능한 해결사라는 환상을 깨고, 그것이 오류가 있는 인간이 만든 피조물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 안식일의 실천: 일주일에 하루라도 디지털 기기와 AI 접속을 끊음으로써, "나는 기계의 부속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임"을 선포하는 거룩한 저항이 필요합니다.
- 질문하는 신앙: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이것이 나의 영혼과 공동체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앗아 가는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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