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眼目)의 두 가지 의미: 지혜와 탐심
우리의 오감은 크게 외부의 자극을 저절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영역과, 의도를 가지고 정보를 인지하려는 능동적인 영역으로 나뉩니다.
청각 역시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과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것이 다르듯이, 특히 시각은 눈에 보이는 것과 의도를 갖고 보려고 하는 것 사이에 초점의 차이가 발생하며 시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보는 행위'의 깊이와 질에 따라 우리는 안목(眼目)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사용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주변의 사람들을 묘사할 때 '안목이 좋다', '안목이 높다'는 긍정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는데, 반대로 성경은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연결하며 안목을 부정적으로 경계합니다.
결국 안목은 무엇을 향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1. 긍정적 안목 (지혜)
긍정적인 의미의 안목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사물의 상황과 본질, 숨겨진 의미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입니다.
이는 특히 '하나님께로 향하여'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를 아는 지혜이며, 고난의 과정을 통해 얻는 성숙한 분별력입니다.
2. 부정적 안목 (탐심)
반면에 부정적인 의미의 안목은 눈앞에 보이는 겉모습에만 치중하여 자기의 자랑과 만족을 위한 탐심(貪心)입니다.
이는 '세상을 향하여'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하는가'를 놓치고 눈에 보이는 욕망에 매달리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오늘 하루 나의 눈은 대부분 어디를 향했을까요?
스마트폰 화면에 비친 타인의 화려한 일상, SNS에 올라온 성공 스토리, 광고 속 탐나는 제품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번 무언가를 '봅니다'. 하지만 정작 그 많은 시선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질문하면, 선뜻 답하기 어렵습니다.
어머니께서 누군가를 '안목이 높다'고 칭찬하실 때, 그것은 단순히 좋은 물건을 고르는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됨됨이를 보는 눈,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는 눈,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이웃의 필요를 먼저 헤아리는 눈을 가진 이들을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그 안목은 세월과 경험, 교육과 훈련, 그리고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을 통해 다듬어진 영혼의 깊이였습니다.
두 눈, 두 길
성경에 나오는 '안목의 정욕'은 단순한 시각적 욕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이는 것'에 사로잡혀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는 영적인 맹목을 의미합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도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기 좋았던 그 열매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매일 이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눈앞의 이익과 편리함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 보이지 않지만 더 큰 가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SNS의 '좋아요' 숫자에 마음을 빼앗길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관계의 깊이를 추구할 것인가. 브랜드와 소유로 나를 증명하려 할 것인가, 아니면 내면의 성장과 선한 영향력을 쌓아갈 것인가.
다시 배우는 '보는 법'
진정한 안목은 하루아침에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때로 실패와 후회를 통해, 때로 상실과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겉으로 화려해 보였던 것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경험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분별하는 눈을 갖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는 것'일지 모릅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와 이미지 속에서,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의 눈을 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진심을 보고, 일상 속 작은 축복을 발견하며,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분별하는 눈 말입니다.
내 눈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지금 내 눈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그것은 나와 우리를 더 풍성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는가? 아니면 끊임없는 비교와 불만족 속에 가두고 있는가?
우리 모두에게는 두 가지 안목이 공존합니다. 지혜로운 안목과 탐심의 안목. 그리고 매 순간 우리는 선택합니다.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인지, 무엇을 향해 시선을 고정할 것인지를.
부디 오늘, 우리의 눈이 진정 가치 있는 것들을 향하기를 소망합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 너머의 본질을, 겉모습 뒤에 숨은 진심을,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볼 수 있는 그런 안목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눈을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무엇을 볼 것인가'를 다시 선택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작은 선택의 축적이, 결국 우리의 인생을 빚어갈 것입니다.
진정한 안목은 눈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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