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pport: 라떼(나 때) 군대 이야기 - 한국군과 미 8군
높고 가파른 절벽에서 밧줄 하나에 의지해 하강하는 ‘레펠(Rappel)’ 훈련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저는 1988년 초반에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하였습니다.
전통적인 레펠 방식은 하늘을 보며 내려가는 후면 레펠을 수행하는데 하네스 매듭법 중 하나인 '스위스 시트(Swiss Seat)'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 군에서는 관용적으로 스위스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방식으로 논산 훈련소 전후반 교육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미 8군에 배속된 후 청계산 절벽에서 새롭게 익혀야 했던 아주 대담한 방식이 있습니다. 온몸을 뒤집어 자신이 내려갈 낭떠러지 아래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며 거침없이 뛰어내리는 ‘호주식 레펠(Australian Rappel)’입니다. 발아래 펼쳐진 아찔한 허공과 거친 암벽을 눈에 똑바로 담아야 하기에,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를 극한으로 자극하는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미군이나 전 세계 특수부대원들이 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눈을 가리고 숨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느 안전한 지형에 발을 디뎌야 하는지, 내가 전진해야 할 사명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눈으로 명확히 확인하며 내려가기 위함입니다. 그들에게 하강은 어쩔 수 없는 조심스러운 관문이 아니라, 임무를 완수할 대지에 정확히 서기 위한 담대한 과정입니다.
이 전술적 시선은 우리의 삶과 신앙에 묵직한 통찰을 줍니다. 많은 이들이 믿음을 '현실의 거친 문제는 모른 척 덮어두고, 눈을 감은 채 하늘만 바라보는 회피'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정신 승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기에, 그분이 나를 보내신 두려운 현실(지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내가 디뎌야 할 발걸음을 신중하고 담대하게 내딛는 것입니다.

거인 앞에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은 다윗
구약 성경의 이스라엘 군사들은 거인 골리앗이 두려워 진영 뒤에 숨어 눈을 가리기 급급했습니다. 현실을 회피할수록 마음속 두려움의 크기만 키울 뿐이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현실을 못 본 척하지 않았습니다. 적의 위용과 거리, 지형을 명확히 눈에 담았습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힘으로 그 현실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며 하나님께 모든 주권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이 전장의 주권자이심을 완전히 신뢰했기에, 다윗은 모든 군사가 두려워 떨던 그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면서도 오히려 적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아래를 직시하며 담대히 발을 내딛는 호주식 레펠의 시선처럼, 현실을 눈에 담고도 주님을 힘입어 당당히 뚫고 나아가는 신앙이었습니다.
💡 일상에서 '믿음의 착지'를 실천하는 3단계
우리는 날마다 삶이라는 아찔한 절벽 끝에 섭니다. 직장 내 갈등이라는 벼랑, 재정적인 위기라는 절벽, 불투명한 미래라는 낭떠러지는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눈을 감고 회피하는 신앙은 우리를 한 발짝도 전진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이제는 영적인 시선을 전환하여 삶의 절벽 아래를 향해 믿음의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1단계: [현실 직시] 문제 상황을 명확히 인정하기
내가 처한 상황과 마주한 문제를 모른 척 덮어두지 마십시오.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의 지형을 바라보는 것이 시작입니다.
2단계: [권한 위임] 하나님의 주권 신뢰하기
내 힘으로 상황을 다 통제하고 풀 수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기도로 주권을 넘겨드려야 합니다.
3단계: [믿음의 착지] 주권 위임이 주는 평안을 바탕으로, 오늘 디딜 '한 걸음'에 집중하기
기도로 주권을 넘겼다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영적 확신을 붙잡으십시오. 그 평안이 마음에 잔존하는 모든 염려를 잠재울 때 비로소 행동할 용기가 생깁니다. 거대한 절벽 전체의 높이에 압도당해 멈춰 서지 말고, 오늘 하루 내가 믿음으로 지켜내야 할 말 한마디, 행동 하나라는 작은 사명의 발판을 확인하며 한 걸음씩 단단히 디뎌 나가는 것입니다.
두려운 현실을 눈에 담고도 주님의 손을 잡았기에 담대히 삶의 자리로 뛰어내리는 사람.
그 믿음의 착지가 시작될 때, 우리는 비로소 절망의 절벽을 승리의 현장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앞의 레펠과 다윗 이야기를 달리 생각하면, '무엇을 바라보느냐'를 중요한 포인트로 우리 믿음의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40일 동안 거인 골리앗의 거대한 체구와 무기라는 '열악한 환경'만 분석하고 계산했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니 두려움에 매몰되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자신의 나약한 처지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두려움을 압도하는 용기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의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거센 풍랑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만 듣고 주님만 바라보았을 때는 파도를 딛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시선이 흔들려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는 순간, 두려움이 그를 집어삼켜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높이뛰기의 역사를 바꾼 딕 포스베리도 이 시선의 혁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모두가 바(Bar)와 땅을 보며 엎드려 넘을 때, 시선을 하늘로 향한 채 등 뒤로 넘는 ‘배면 뛰기’를 선보였습니다. 장애물이 아닌 하늘을 본 그의 시선은 세상의 조롱을 이겨내고 오늘날의 글로벌 표준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환경이 변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시선이 변할 때 시작됩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 지으신 하나님에게서로다" 찬양 가사처럼,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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