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18. Day19.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사야 61:1~3) 헬렌 김 선교사
헬렌 김 선교사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파송, DFI(Development for Freedom International)선교단체장 및 아이티 선교사
전) United Nation(UN) 아이티 평화유지부서 소속 여성정책담당관
-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부 및 석사 졸업
Email : dfihaiti@gmail.com
Tel +509-4788-0721
Facebook : DFI NEWS
Website : www.developmentforfreedom.com
김혜련 (헬렌) 선교사이다. 나는 모태신앙도 아니고 신앙의 연조도 깊지 않은데 오늘 이렇게 서게 되어 하나님께 참 감사하다.
원래는 아이티에서의 사역 내용을 주로 나누려 했었는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 바꾸겠다. 아니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 주로 얘기를 하겠다.
하지만 간단하게 사역내용을 먼저 나눈다.
2010년도의 아이티 대지진으로 인해 30만명이 죽어서, 제대로 장례도 지내지 못하고 그냥 교외에 파묻기도 한 비극의 땅에서 일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40명의 아이들을 위한 기숙학교(아가페 기숙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아이들은 가난과 폭력, 마약 및 동성간의 성폭력 속에서 비참하게 자라왔다. 그러나 탈렌트 김원희 집사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연예인들이 함께 사역을 해주고, 또 세브란스 병원과 삼성서울 병원 등 서울의 대형 병원 두 곳에서 도움도 주셔서 아이티 어린이들의 심장병 수술을 무료로 해주는 등, 여러 사역을 해나가고 있다.
이제 간증을 시작한다.
여러분은 모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는가? 구원의 감격이 있는가? 성경의 말씀을 믿고 선포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가? (아멘! 아멘!)
그러한 구원을 나도 받았는데, 그것은 아이티에서부터였다.
2010년 5월, 대지진 이후 UN의 구호활동 전문가로서 아이티에 도착했을 때는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 때까지는 예수님을 진실로 믿지 못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국인 선교사(이동렬 목사 등)들을 우연히 만나 그 분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멋진 삶이라고 생각했다. UN파견 직원으로서 1년 동안 아이티에서 일을 하고 뉴욕의 UN본부로 옮기게 되었는데 (가장 어렵다는 3년 계약조건이었음), 한인연합교회 목사님이 세례 받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나는 본디 모태신앙으로 카톨릭을 믿었으나 결국은 카톨릭을 떠나 살았고 또 종교적으로는 다원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세례 받기 싫다고 했다. 그런데 친했던 선교사님이 '불교는 결국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밖에 못하는데, 기독교는 예수님을 주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해서, 궁금한 마음에 세례를 받게 되었다. (아마도 그 때 성령 세례도 함께 받은 것 같다.) 뉴욕으로 와서 UN직원으로 즐겁게 살고 있었는데, 마음에서 이상한 변화가 점점 일어나더니 기쁨이 점점 넘치게 되어 어느새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더 좋은 일이 있었는데, 내가 '죄라는 새장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을 주님이 보여 주셨다.
카톨릭 경험에서 예수도 알고 또 내가 죄인인 줄은 알고 있었으나 죄에서 어떻게 벗어나는 지는 카톨릭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카톨릭에서 가르쳐준 고해성사와 묵주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아들 셋에 외동딸로 태어났는데,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겪었던 어머님은 딸을 원하지 않으셨다. 반면에 정치가가 꿈이었던 우리 아버지는 내 사주를 봤더니 장차 정치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시며 내가 정치가가 되기를 원하고 온갖 사랑을 쏟았다. 어머니는 아들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나로 인해 소홀해질까봐 내게는 '넌 안돼~'라는 말을 계속 하셨다. 그럴수록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또 유지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고 이대 정외과를 마치고 젊은 나이에 여러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여러 활동을 하며 여러 성취를 이루었으나, '사랑 받기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일 중독자'가 되었다. (이대 정외과, 이대, 경희대 정치학석사 출신으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사무총장에서 출발하여 김대중 대통령 영부인 이휘호여사 경제자문,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 자문위원 등 한국 정치와 경제 일선에서 굵직한 여성파워를 과시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런 자기 비하가 내 사생활에도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배우자 상대들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고 결국은 옳지 못한 선택을 통해 결혼을 했지만 이혼을 하고, 내가 낳은 두 아이에 대한 양육권까지도 잃게 되었다. 그 죄의 무게가 내게는 너무 컸다. 나는 그러한 커다란 두려움에 갇혀 살았다.
그런데 '거짓의 아비'의 속임수를 떠나 (요한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처럼 그 죄라는 새장을 벗어나 자유케 되는 모습을 주님이 보여 주신 것이다.
어느 날은, 캐나다 퀘벡에 잠깐 다녀오는 길에 미국 국경에서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계속 입국이 거절되었고, 다른 통로로 들어가려 했으나 앞서 설정된 red flag로 인해 불법 이민 혐의로 체포되어 지문을 찍고 추방되는 일을 겪었다. 미국 변호사를 샀지만 오히려 그 변호사의 이야기는 내 인생이 다 끝났다는 것이었다. 연락을 받은 UN의 노력도 미국 행정부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퀘벡애서 어느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말씀과 함께 목사님께서 '순전한 순종'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을 주시는 것이었다. 그 때 잊고 살았던 '아이티에서 사역을 하라'던 예언기도가 생각났다. 억지로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영원히 퀘벡에 머무르게 될 것 같아서 순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미국 이민국의 실수였다고 해서 뉴욕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나, 나는 서원한대로 예수가 부르신다며 유엔에 사표를 내고 아이티로 갔다.
사표 소식을 들은 UN의 사람들은 퀘벡에서의 21일 동안에 무슨 일이 생겼나보다고 수군댔다. 아이티에서의 선교사들도 별로 반기지 않고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6개월 전에 세례 받은 사람이 하나님이 부르셨다며 유엔을 사직하고 왔으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때부터 일하기 시작하셨다. 아무도 내게 할 일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냥 나 혼자 일을 시작했다. 미국으로 돌아가 DFI(Development for Freedom International)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Cindy라는 미국인 친구의 초청으로 교회에 갔는데 그날의 설교 말씀은 바로 사도행전 3장,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이야기였다. 금과은은 내게 없지만.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는 그날 그 말씀에 완전히 무너져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다. 내가 아이티를 위해 추진하던 것은 다름아닌 '금과 은'을 주려던 것이었음을 깨닫고, DFI의 목적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아 금과 은이 아니라 바로 '복음'을 주는 것으로 DFI의 목적을 바꿨다.
그리고 바로 사재를 털어 아이티로 가서 사역을 시작했는데, 사역을 위한 아무 준비도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매일 새벽마다 울며 기도했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사다리'를 보여주셨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니, 너는 다만 예배하라, 예배하라!' 그래서 다음 날부터 자원봉사단을 모으고 북을 치며 다녀서 사람들을 모아 '예배'사역을 시작했다. 지금도 예배는 아이티에서의 내 중요 사역 내용이 되었다.
그 때 나와 예배 자리에 모인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굶주린 채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 내가 먹던 숟가락을 놓고 바로 기도했다. 그리고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이야기처럼, 모아 놓았던 돈을 다 쓰고 겨우 300~400달러만 남아 있을 때였는데, "내일부터 모든 사람을 먹이기 시작할테니 주님이 채워주시라"고 기도하고 그 다음날 쌀을 사와서 아이들을 먹였다. 그리고 그 후 7년 동안 한번도 내가 쌀을 사본 적이 없다. 하나님이 다 공급하셨다.
또 아이티에는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심장 사역을 하자는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한국의 연예인들과 공동 사역을 해서 60여명의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내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역 아이템도 주셨고 그 방법도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나는 파송교회도 없었고, 특정 후원도 없이 사역을 하고 있지만 확신을 주는 여러 성경 말씀을 의지하여 성경을 믿고 선포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역을 해나가고 있다.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마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또한 최근에 발견한 것은, '너희가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내려오시겠다, 함께 하시겠다' 하는 것이다. 아! 주님의 임재가 이 모든 기적을 일으켰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러하니 여러분의 직장에서의 예배, 가정에서의 예배, 또 섬기는 교회에서의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꼭 기억하기 바란다.
이제부터는 내가 망가지는 이야기이다.
파송 어디에서 했어? 신학 공부는 했어? 넌 안 돼! ..사탄은 이러한 이야기를 내 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포기할 때까지 사탄은 그러한 부정적인 일들을 우리 귀에 속삭이는데, 아무런 영적 원리를 몰랐었기에 나는 그것들을 다 받아들였고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또한 재정 훈련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기 직전까지 주리게 하시고 하시지 않는가? 재정으로 고통을 받으며, 나는 기쁨을 잃기 시작했고,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기 시작했다. 기도하지 않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그 때는 미처 몰랐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둔감해져서 죄가 들어오게 된다.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그래도 주님은 우리를 이해하실 것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요나의 경우,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려 했을 때 오히려 배편이 잘 연결이 되자 아마도 그것을 좋은 징조로 여겨 주님이 용서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요나는 마음 편하게 배 안에서 쿨쿨 잤을 것이다. 기도하지 않았더니 기쁨이 점점 내게서 사라져갔다. 그랬더니 살은 찌고 온갖 풍토병과 여러 가지 심한 병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이티 사람들이 싫어지고 아이티를 떠나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낳은 친 아이들 (아들과 딸)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큰 아이인 딸로부터 자기에게는 다른 가족이 없고 오직 남매만이 가족이라며, 자기가 극빈자 소녀가장으로 자랐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가난한 선교사여서 아이들의 방을 얻어 줄 돈도 없었다. 나는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요르단 유엔 기구에 응시를 했고 그 일이 잘 진행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몸이 더 안 좋아져서 병원을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화를 내셔서 이유를 들었더니 내가 실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녹내장으로 시신경 90%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다른 병원에 갔더니 내 시신경이 썩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하다고 했다. 나는 끝없는 심연으로 빠져들어갔다. 아이들도 걱정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그렇게 영향을 받았듯이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으려면 열심을 다해야 하는 줄 알았기에 열심히 사역을 했고, 하나님께 할 만큼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러시는 거냐고.... 그 이유를 정말 정말 알고 싶었다.
우리 삶 속에서는 이해 못할 일이 참 많이 일어난다. '난 할만큼 했는데 왜 이러세요?' 이럴 때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을 더 붙들어야 한다. 차라리 하나님께 화를 내더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야곱처럼 하나님과 씨름을 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할 괴로움 속에 있을 때 그냥 그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라. 그 때 나도 하나님과 씨름을 했다. 그 때 주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기쁨을 잃었쟎니? 마르다가 아니라 마리아가 되어라. 일을 하지 말고 나와 깊은 관계를 가져 보자.' 그 뒤로 내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깊은 은혜와 감동을 누리게 되었다.
축복은 고통으로 변장하고 다가온다. 그 때부터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내게 붙여주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게서 쓴뿌리를 하나씩 제거하시기 시작했다.
여호수아 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겨우 요단강을 건넜는데 중요한 여리고성 싸움을 앞두고 할례를 하라고 하신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는데, (수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말씀처럼 애굽의 수치, 즉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애굽 생활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였지만 애굽에서의 노예 근성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았기에, 애굽의 수치 그 쓴뿌리를 뽑아야 하셨기에,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하신 것이었다. 나도 그 쓴 뿌리를 빼고 나니 은혜가 넘쳤다. 겔 36장과 같은 회복이 내게 일어났다. 나는 본디 북한의 지하교회나 중국의 신앙 핍박 등의 소식을 들어도 그다지 감동이 없었는데 그 때부터 눈물이 많아졌다.
나는 이른바 '돌탕(돌아온 탕자)'이다. 그런데 그 때 40명의 우리 아이티 아이들을 바라보니, 그 동안 내가 똑똑하게 사역을 한다고 만들었던 규율들이 그냥 '사역자'에 불과했음을, 그저 '힘써 일하는 자'였음을 알게 해주었다. 영혼의 긍휼함을 받은 후에 다시 보니, 그 동안 나는 사역자였을 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는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이티를 떠나고 싶었다. 이제는 조심스럽게 내가 유엔으로 가도 될 지 묻는 기도를 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은 내게 우상이 있다고 하셨다. 바로 나, 내 계획, 내 자신이 내 우상이라고 하셨다. 기도하면서도 언제나 내 얘기만 할 뿐 하나님 얘기는 듣지 않았음을 알려 주셨다. 내가 나를 우상시했던 것을 참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순간, 유엔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내가 있는 그 곳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아이티에 남아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 내 아이들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남아 있었다. 아무리 울며 기도를 해도 아이들은 아무 변화가 없고 심지어 큰 딸은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제가 순교하겠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겠습니다'라며 '한나의 기도'를 했다. '하나님 나를 받으시고 우리 아이들을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하다가 깨달았다. '아! 나를 받으시려고 우리 아이들을 그대로 잡고 계셨구나... '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아름답게 우리 아이들을 살려 주실 것을 믿는다. 그러면서 기쁨이 넘치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분이시다. '너는 할 수 없어. 너는 안 돼'라는 죄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하시는 분이다. 재대신 화관을 우리에게 씌워주셨다.
(사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처럼 '너는 의의 나무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자라'.... 하나님은 룻과 같은 떠돌이 구걸 여성을 다윗의 조상으로 삼으셨고, 고아 에스겔을 왕비 삼으셨으며, 평범한 시골 처녀를 메시아의 어머니로 삼으셨다. 하물며 '너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말씀처럼 예수 믿고 구원 받는다는 것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죄를 짓지 않는 의, 그리고 사망의 길에서도 누리게 되는 평강, 또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는 천국 등이 내게 임하는 것이 바로 구원 아닌가?
오늘 우리는 '나는 구원받았다'고 모두 고백했다.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를 머리에 쓴 채 울고 있는가? 그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부활 후 첫마디는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였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가 선교사다. 가는 선교사 뿐만 아니라 보내는 선교사가 될 수도 있다. 선교는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가 항상 해야 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고 싶다.
만약에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아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말씀처럼 "내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까?
"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하고 답하지 않겠는가?
모두 이렇게 외치며 통성으로 기도하자. " 주님 구원받은 기쁨을 땅끝까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보다 준비 안 된 사람이 또 있을까요? 하물며 여러분은 모두가 쓰임 받을 수 있다. 오늘 결단하자.
[기도 인도 by 김은호 목사님]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신 '부르심'을 받았다.
(찬양)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 내 모든 정성 주만 위해 바칩니다.
주님 나의 기도 들으사 영원토록 주님만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주님 나를 사랑했으니, 이 몸 바쳐서 주만 따라 가렵니다.
주님 나의 기도 들으사 언제까지 주님만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주님 나를 구원했으니, 소리 높여서 주만 찬양 하렵니다.
주님 나의 기도 들으사 할렐루야 주님만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세상 가운데서 부르셨으니,
이제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기 원하신다.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흘려보내며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 줄 것인가?
우리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원하신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 자신을 우상으로 삼고 있는가?
주님 나를 받으옵소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시온의 대로가 열리는 밤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우상인 우리 자신을 오늘 십자가에 못박자.
나를 통해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복음을 받고 살아나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귀한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명을 얼마나 자주 잊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 소명을, 사명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먼저 내 우상이 십자가에 못박히게 도와 주소서.
내 생각의 우상, 경험의 우상, 지식의 우상들이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소서.
나는 죽고 주님이 사시는 변화를 주소서.
우리의 완악한 마음이 녹아지고 강퍅한 마음이 깨어져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찬양)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고 주님 가신 길을 따르고 있더라도
우리 가운데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서 분노가 생길 때가 있다.
내가 이 좁은 길을 걸어가는데도 왜 나와 내 자녀와 가정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망과 분노가 생길 때가 있다. 우리 삶에도 그런 원망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뒷편에서 주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주님은 정말 우리 가운데 깊이 일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 안에 쓴뿌리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았던 쓴뿌리가 있다. '넌 안 돼~. 너는 사랑받을 수 없어.'
부모,선생님,자녀로부터 받았던 말들 중에 비수처럼 내게 꽂혀 있는 말들이 쓴뿌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밤에 주님의 손에 그 쓴뿌리를 올려드리자. 하나님이 그 쓴뿌리가 무엇인지 생각나게 하실 때마다 하나님께 올려 드리자.
하나님이 돌멩이를 하나씩 치워주실 것이며 우리 마음이 부드럽게 변화할 것이다.
https://youtu.be/LOkMx_3b9VQ
https://youtu.be/SugJ43H8f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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