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18. Day18. 하나님은 선하시 분 (예레미야 33:3) 구경선 작가
구경선 작가
현) 카카오톡 이모티콘 작가
현) 토끼 캐릭더 일러스트 작가
- <그래도 괜찮은 하루>, <엄마, 오늘도 사랑해> 저자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인삿말]
안녕하세요. 구작가라는 이름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구경선입니다.
50분 안에 하나님을 이야기 하자니 너무 짧아요. 하나님이 제 삶에 많은 걸 함께 하셨으니까요.
어떻게 이야기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려워요.
저는 사실 모범적인 크리스찬이 아니고, 지금까지 초등학생 신앙으로 있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이제 겨우 중학생 신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런 제 삶에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 보여드리고 싶어 용기를 내어 나왔습니다.
[베니를 만나다]
나는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에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7살에야 비로소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많은 편견이 있다. 그로 인해 초등학교도 어렵게 다녔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으며 어렵사리 들어갔던 원했던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자퇴해야 했다.
그 후 나는 게임에 빠졌고 대입 검정고시도 5번 만에 겨우 합격을 했다. 그러나 대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들을 수 없는 내가 할수 있는 것을 찾다가 동화작가가 되기로 했다.
학원에 등록하여 내가 그리기 좋아하는 삐딱한 그림들을 그리다가 캐릭터를 그리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캐릭터를 찾다가 동물백과 사전을 보았는데, 그 중 하얗고 토실토실한 토끼가 예쁘기도 했고 토끼가 동물 중에 청력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라는 설명도 좋아서 나는 처음으로 '베니'라는 토끼 캐릭터를 만들었다.
[하나님을 만나다]
그러나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서 학원도 한 달 만에 그만 두었다.
교회도 친구 따라 가봤지만 역시 적응이 되지 않아 1년에 2번 정도만 겨우 갔다.
어느 날, 초등학교때부터 친한 친구였고 오랫동안 지내면서도 아무 강요도 한 적이 없던 친구가, 교회 수련회에 가자고 권했는데 싫다는 내 대답에 애원까지 했다.
도저히 안 들어 줄 수가 없어서 그 친구를 따라서 교회 수련회에 갔는데 처음에는 모든 것이 너무 어색했다. 특히, 사람들이 기도를 아주 오랫동안 하는 동안에 나는 가만히 있다보니 너무 뻘쭘해서 나도 눈을 감고 멍하게 있었다.
눈을 감으니 속상한 일들이 많이 생각났다. 학교에서도 쫓겨났고 겨우 취직했던 회사에서도 바로 쫓겨났고. 여러 속상한 일들이 생각나서 생전 처음으로 울면서 기도를 했더니 거짓말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그렇게 25살에 하나님을 만났다.
직장이 없으니 십일조를 할 수 없어서 속상했다. 용돈 5만원 중에서 5천원을 십일조로 드리는 것은 부담이 커서, 교회 주보에 그림을 그리는 봉사를 통해 십일조를 대신하였다.
[구작가 블로그에서 시작해서 싸이월드 대박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다]
그러다가 캄보디아 선교를 가게 되었는데, 캄보디아에서 한 아이가 아이를 업고 가는 것을 보고, 독일로 유학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유학을 통해 그림으로써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유학을 가기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다.
어느날 심심해서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작가가 아니었지만 장차 작가가 될꺼라고 생각으로, 모든 마음을 담아내서 '구작가'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 블로그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친해졌는데, 특히 싸이월드 스킨작가였 한 분을 만났다. 싸이월드 스킨작가란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를 통해서 스킨 작가는 어떻게 일하는 지, 얼마나 버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월급은 80~100만원 정도 된다고 들었다. 독일 유학 비용 월 100만원을 충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게시판과 글을 통해 일을 하는 것이어서 청각에 어려움이 있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9개월동안 계속 탈락되어도 굴하지 않고 1주일에 하나씩 게시판에 그림을 그려 올렸다. 어느날에는 꿈을 꿨는데 엄청나게 큰 손이 '때가 됐다'라고 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으로 나도 마침내 싸이월드 작가가 되었다. 첫 달에 월 2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고,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십일조 2만원을 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내 월급은 기대했던 100만원이 아니라 겨우 20만원 또는 많아야 30만원에 불과했다. 그렇게 지내다가는 독일 유학도 먼 얘기가 되겠다는 생각에 낙심되어, 아무렇게나 캐릭터 그림을 그리고 제목도 '다 귀찮아' 라고 써서 올렸는데, 그 그림이 완전 대박이 났다. 3년 동안 독일 유학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이 되었고 또한 캄보디아, 몽골 등의 선교를 다녔다. 그런데, 선교를 다니던 중에 독일 유학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독일 유학 후에 자기만의 세계가 강한 화가보다, 단순하지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수용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졌다.
[시련 속에서 '내가 되고 싶은 나'가 탄생하다]
개인정보 누출로 싸이월드가 망해서 내 월급은 3천원으로 급락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모든 연락도 다 끊어졌다. 벗어나보려고 모든 재산을 털어서 아프리카로 선교 여행을 다녀왔지만 현실은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점점 우울해져갔다. 나는 이제 필요가 없어진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베트남으로 선교를 다녀왔지만 여전히 마음은 피폐해진 채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오랜 만에 교회를 갔는데, 듣지 못하는 나를 위해 설교 말씀을 적어주는 친구가 맨 앞에 앉기 때문에, 나도 마음은 싫었지만 별 수 없이 앞자리에 앉았다. 그날따라 찬양이 너무 하기 싫어서 그냥 앉아 버렸더니 앞줄 사람들에 가려서 찬양 가사는 안보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어떤 찬양인지는 몰랐지만, 찬양 부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나만 불행한 것 같아서 슬퍼져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 하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께 '찬양이 너무 어려워요. 못하겠어요'라고 말씀드리자 마음이 따뜻해지면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다~ 안다.'
그러면서 한 장면이 펼쳐지는데, 예수님이 오신다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에 모두 예수님을 보러 우루루 몰려가는데 오직 한 사람만은 앉은뱅이여서 예수님께 달려 갈 수 없어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착하신 예수님이 다른 사람을 헤치고 나오셔서 가장 먼저 그 앉은뱅이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시는데 그 앉은뱅이가 바로 나였다. 그 때 내 가슴이 뜨궈워지고 눈물이 나오며 단단해졌던 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회복이 되었다. 남들이 하는대로 하니까 힘들었던 것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니 내가 초라해보이고 자존감이 낮아져서 사는 재미가 없어지고 힘들어진 것이었다. 의사/판사/사업가 등이 되고 싶다는 사람은 많지만, 나는 청소부가 되고 싶다는 사람은 못봤다. 그런데 청소부도 매우 필요하고 귀한 직업이다.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남들과 똑같이 살 필요가 없다고,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계획을 하나님은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후에 <내가 되고 싶은 나>라는 미술선교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선교 여행을 다녔다.
[어셔 증후군, 청각 뿐만 아니라 시각도 어려워지다]
필리핀 선교 준비 중에 친구가 병원에 가보기를 권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헸는데,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 결과를 받았다. 이 병은 시야가 좁아지면서 마침내는 실명하게 되는 것이며 그 치료방법은 아직 없다고 했다. 듣지 못하는 중에 방황하며 힘든 삶을 살다가 겨우 평안해졌는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또 주시는 것인지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내 안에 분노가 가득했다. 그것은 바로 필리핀 선교 출발 이틀 전이었다. 필리핀 선교 여행을 가지 말까 주저도 했으나 그냥 갔다. 빈민, 장애, 피난민 아이들을 만났지만 내 안이 건조해서 그런지 그 아이들을 바라보아도 아무 생각 없었다. 그러다가 한 아이를 만났는데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길래 아무렇게나 사진작가 그림을 그려줬는데 그 아이가 그 그림을 너무 소중하게 간직하는 모습을 보고 내 안의 분노가 모두 녹아내렸다. 가난과 장애의 상처로 인해 너무나도 쉽게 포기해버리는 그 아이들에게 부족한 내가 그림만 그려줘도 희망이 생긴다는 말씀을 사모님께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작가로서 지내는 것은 많이 힘들었지만 희망을 나눈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생겼다. 내 시력에는 문제가 없다. 단지 '시야'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8.8cm 정도로 시야가 좁아져 있는데, 이 병은 조금씩 점점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8센티 시야에서 5센티로 팍 좁아지고 그 다음에는 2센티로 좁아지는데, 이는 거의 실명인 상태이다. 또한 시야 8센티가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생활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이다. 5센티부터는 반찬도 찾을 수 없고 그림도 그릴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시련... 그러나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다]
기도 제목을 하나하나 적었다.
<내가 되고 싶은 나> 라는 프로그램으로 30개국을 다니고, 또 그 경험과 내용을 책으로 남기고 싶었다. 또한 내가 만든 토키 캐릭터 '베니'를 100년 넘게 사랑받는 캐릭터로 남기고 싶다고도 기도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사람마다 다 다르게 진행된다고 한다. 지금 상태로 70대까지 오래오래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즉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당장 내일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지만, 또 줄기세포를 이식 받으면 귀도 눈도 다 돌아온다고 해서 그 1%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다. 희망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되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려 한다. (
억지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넘어지고 싶으면 넘어질 예정이다. 바로 일어나기도 하겠고 오래 그냥 넘어져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게 바로 사는 것은 아니다.
첫번째 책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출간한 후에는 공황장애가 왔다. 배우자 기도 시작한 후에는 3년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나는 삶에 너무 지쳐서 방콕으로 도망을 쳤다. 방콕에 갔지만 그 곳에서도 끔찍한 악몽도 꾸고 낮이나 밤이나 계속 울음이 나왔다. 쇼핑도 마구 해댔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고 계속 공허했다. 전도사님께 상담을 햇더니 (요 5:1~9) 말씀을 전도사님이 추천해 주셨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병자 얘기였다. 그러면서 전도사님은 내게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는 지 물어보실 때 무엇을 구할 지 대답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방콕에서 짜뚜짝 시장에 갔다가 어떤 여자아이를 하나 봤는데, 그 아이는 빈 깡통을 놓고 처음보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아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서는 정말 지친 모습이 느껴졌다. 나는 마음이 움직여 차비를 제외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그 아이 깡통에 넣어 주고 숙소에 돌아왔는데도 그 아이가 계속 생각났다. 아마도 이유는 그 아이와 내가 결코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데도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켰던 그 아이... 나도 내 자리를 지킨다면...38년된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처럼 그 자리를 지킨다면 예수님의 응답이 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간이었고, 얼마 안 가서 또 우울해졌다. 결국 여행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해서도 기도도 나오지 않고 있어서 갑갑했는데 어느 교회에서 간증 부탁이 왔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갑자기 어릴 때의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미 초등학교 1학년때 키가 138센티나 되었다. 당시 엄마는 158센티의 크지 않은 키였는데.... 나는 키만 컸지 몸은 약해서 엄마가 나를 종종 업어줬다. 남들이 뭐라 했지만 엄마는 묵묵히 나를 계속 업어줬다. 그런데, 그 엄마의 모습이 점점 서서히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여태 나를 업고 가신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처럼 방콕이 나타났다. 내 모습도 보였다. 전혀 기쁘지 않은 얼굴로 슬프게 다니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런 나를 애타게 부르시는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 듣지 못하자 하나님이 속상해하시면서도, 계속 나를 부르시고 나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통해 방콕에서 나를 돌봐주었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 주셨음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까지 기다리셨다. 하나님은 큰 것을 바리지 않고, 그저 하나님을 제일 사랑한다고 말해주기를 바라신다. 베드로의 세 번 부인도 참아주신, 믿음 없는 기도도 들어주신 크신 하나님이다. 간절함이 다 다르지만, 아무도 모르는 고민...그것까지도 하나님은 다 아신다. 하나님은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한 나도 사랑하신다. 나를 사용하기도 하시니 참 크신 분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 내 작은 응답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내가 뱉은 사소한 말 한마디도 다 들어주신다. 예를 들면, 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 이미 키가 154센티로 키가 매우 컸다. 다른 반 언니들이 우리 반으로 와서 나와 키를 재곤 해서, 나는 내가 마치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 들어 울며 집에 간 적이 많았다. 어느 날은 하나님께 키가 작아지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잠들었는데 다시 일어나보니 여전히 키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키가 점점 덜 빠르게 자라다가 중학교 때 172센티에서 멈추었다. 남들은 지금의 내 키가 옷맵시를 가장 잘 받는 키라고 얘기 한다. 지금 당장 눈앞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사소한 기도까지도 들어주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또, 나는 5년전까지만 해도 강연을 할 줄은 몰랐다. 듣지 못하고 입술 모양을 보며 얘기를 하니 내 발음이 완벽하지 않아서 강연은 꿈도 못꿨다. 그런데, <내가 되고 싶은 나> 프로그램으로 베트남도 가려 하던 중에, 후원금 10만원이 모자랐는데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면 10만원의 강연료를 준다고 해서 용기를 내어 강연을 했다. 그런데 내 강연에 학생들이 너무 호응을 잘 해줘서 나는 그만 강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 날 돌아와 엄마에게 농담처럼 얘기했다. '엄마, 그림은 죽으라고 그려도 10만원인데, 강연은 30분만 해도 10만원을 주더라!' 하나님은 그렇게 내 말을 다 기억하시고 일하셨다.
하나님은 절대 '안 된다'로 응답하지 않으신다. "그래, 해줄게" 라는 응답이거나 아니면 "더 좋은 것이 있단다." 의 둘중의 하나로 답하신다. 하나님은 이쁜 짓만 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분이 아니시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고 다듬어질 부분도 많지만,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한다. 행복하세요.
[기도 인도 by 김은호 목사님]
한국의 헬렌 켈러로 불리고 있는 구경선 작가와 내년 2월14일에 결혼할 것을 약속한 남자친구를 축복하는 기도를 하자.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소망을 전해주는 새 가정이 되게 하소서.
송명희 시인이 작시한 '공평하신 하나님' 찬양을 부르자.
비교하지 말자. 비교하기 때문에 자존감이 무너지고 좌절하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대로 하나님이 나를 부름심에 합당하게 감사하며 살아가면 된다.
사탄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이 '끝이다. 네 인생은 끝이다'는 말이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 가장 즐겨 쓰시는 말은 '시작'이다. 다시 시작하겠다는 결단으로 함께 기도하자.
'가장 나 답게 살게 하소서' 내일을 향해 다시 도전하게 하소서.
(잠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찬양: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기도의 현장에서 승리하자. 우리를 도우실 분은 주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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