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 19. Day 8. 누더기가 된 인생에 은혜를 담으시는 하나님 (창 49:5-7)
강사 : 김관성 목사
현) 행신침례교회 담임목사
[본질이 이긴다] 저자
침례신학대학 졸업(M.Div)
나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행신침례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그에 비추어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오늘 성경 본문에 대하여
오늘 성경 본문은 야곱이 죽기 전에 자기 자식들에게 유언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대개 유언은 자녀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저주를 퍼붓고 있다. 이 본문의 내용은 시므온과 레위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라고 볼 수 있데,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라고 규정지으시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저주의 내용은 '흩어지고, 나누어지고, 쪼개지리라'는 것이다.
이 저주는 시므온 지파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데, 민수기 1:23을 보면 시므온 지파는 59,300명이었는데, 민수기 26:14의 인구센서스에서는 22,200명으로 크게 줄어들고, 심지어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시므온 지파는 자기 땅을 확보하지 못하여 결국은 유다 지파에 흡수되어 버렸다.
반면에, 레위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동일한 저주도 받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복도 함께 받게 된다. (신명기 10:8 그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 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 ) 레위지파는 12지파 중에서 제사장 지파로 임명된다. 벌과 저주가 하나님의 은혜의 복에게 삼킨 바 되어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은혜의 주인공'으로 변했다.
이 레위지파 이야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예수 믿는 신자의 영광은 일반적인 세상의 관점에서의 영광과는 다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인생길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걸어간다면 비록 내 삶이 초라하고 비천해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신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수긍일 갈 수도 있으나 마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성경 본문의 관점으로 내 인생의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홍수와 요강
나도 48세인데 오늘 이 자리에는 나보다도 훨씬 연장자인 분들이 많이 오신 것 같다. 이분들도 지금까지 인생의 굽이굽이를 살아오시면서 많은 고생을 하며 험한 삶을 사셨을 텐데, 그 고단한 삶을 견뎌온 분들께 그 삶에 대한 존경과 예를 드린다. 그런데 내 삶도 보통 사람에 비해 훨씬 더 험난한 것이었다.
나는 결혼해서야 비로소 방 두 칸짜리 집에 처음 살아봤다. 결혼 전에는 단칸방에 살면서도 이사는 30여 회를 해야 했는데, 이는 술과 노름으로 삶을 허비한 우리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어머니가 새벽 시장에 나가서 가정 경제를 이끌어 가셨다. 저녁이 되어도 우리 집에는 술과 노름을 즐기는 아저씨들로 가득해서 담배 냄새가 언제나 자욱했기에 어머니와 나는 단칸방에서 그나마 담배연기가 덜 심한 책상 밑에 머리를 두고 서로 안고 자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때로는 자고 있는 우리를 깨워서 욕을 하고 어머니를 구타하고 심지어 숟가락과 포크를 사용해서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해서 어머니는 머리에 피를 흘리곤 했다. 내가 성장해서 힘이 조금 생겼을 때 아버지를 완력으로 주저앉힌 적이 있는데, 얼마 후에 아버지가 밖에서 칼을 갈아서 죽이겠다며 방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놀라서 추운 겨울에 팬티 바람에 밖으로 도망갔으나 갈 곳이 없어 교회당으로 피하기도 했다.
나는 막내였지만 성장하여 결혼한 누나들도 내 피난처가 되지는 못했다. 누나들도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고 아버지가 누나들을 식모로 보내고 미리 급여를 당겨 받았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어린 나이에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눈물 속에서 살아야 했다. 남의 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며 엄마 얼굴이 겹치면 엄마를 부르며 울던 날들에 대한 상처가 깊었다. 형님(소년 김무성)은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했는데 온몸에 문신과 흉터가 있는 조직 폭력배가 되었다.
열악한 가정 형편 때문에 모두 다 망가진 우리 형제자매 2남 3녀 중에 그래도 막내인 내가 가장 똑똑했지만, 나도 공부보다는 도둑질의 길로 빠져들어 갔다. 초콜릿 300개를 훔치다가 잡혀서 훈방 조치되었는데, 보호자로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은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도 아니었고 글을 쓸 줄 모르는 어머니도 아니었고 결국은 조직폭력배인 형님이었다. 본인은 폭력배이면서도 동생은 자기처럼 사는 것이 싫었던 형님은 나를 데리고 동네 우물가로 가서 추운 날씨였지만 나를 발가 벗기고 몸에 물을 뿌린 후에 세 시간 동안이나 전깃줄로 때렸는데, 그 무서운 상황 끝에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형님이 내게 '이제부터 교회를 가라!'라고 했다. 그리고 형님이 헌금도 챙겨주겠다고 해서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형님이 무서워서.
동네에는 장로교회와 침례교회가 있었는데 어디든 교회를 가야 했기에 손바닥에 뱉은 침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두 교회 중에서 장로교회가 아닌 '울산 침례교회(1949년 울산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침례교회)'로 가게 되었다. 나는 항상 옷에는 담배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고 말 표현은 거칠었기에 교회에서도 묘한 배척을 받기도 했지만 형이 두려워 꾸준히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어느 날, '예수를 진실하게 믿으면 한 사람뿐 아니라 한 가정 전체를 바꾸신다'는 목사님 설교를 들었다. 그 말씀이 열악한 가정형편으로 힘들어하던 내게는 절실하게 다가와서, '나와 가정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바꾸시는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보자'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여러 해 동안 어쩌면 담임목사님보다도 더 뜨겁게 열심을 다해 신앙생활을 했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신학교에 가라고 강력하게 추천해 주었고 나는 시험을 봐서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우리 집안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너무 낙심이 되어 목사님께 질문을 했는데 목사님의 답변은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열심을 다해 신학교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했다.
그렇게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이제는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교회를 개척하려면 후원이 있어야 했는데 나는 아무 돈도 없어서 겨우 겨우 마음 맞는 전도사님 몇 분과 작은 학원을 개조해서 초라하게 개척을 시작했다. 그러나, 개척한 지 5년이 지나도 아무런 부흥이 없어서 나는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그래서 엎드려 기도했다. '저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언제 한 번이라도 도움을 주신 적이 있습니까? 한 번만 내 손을 잡아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은 내가 개척했던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비록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의 작은 교회였지만 다른 곳에서 목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택도 있다는 것도 개척했던 교회를 떠난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사택은 지하에 있어서 장마철만 되면 홍수처럼 물에 잠기게 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밤새도록 물을 퍼내고 겨우 아침이 되면 지하 사택은 온통 곰팡이가 피어나서 아이들은 늘 폐렴을 달고 살았다. 내 삶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견딜 수 없었다.
또, 지하 사택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사택 밖으로 나가서 모퉁이를 돌아 교회 밖에 있는 공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남자나 어른은 그래도 감내할 수 있었지만, 추운 겨울밤에 용변을 보러 공중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것은 어린 딸아이에게는 엄청난 심적 부담이 생기는 상황이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바로 집에 '요강'을 두고 그것이 차면 공중화장실로 가져가 비우는 것이었다. 방에서 쓰레기통을 하나 찾아내 요강으로 삼고 "No 똥, Only 오줌!!"을 규칙으로 했지만, 요강을 비울 때마다 손에 소변은 흘러내렸고 아들이 돕다가 계단에서 엎질러 오물을 뒤집어쓰게 되는 경우도 잦았다.
이러한 가난하고 열악한 삶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삶이 힘드니 내가 목회자였지만 부끄럽게도 하나님의 존재조차 희미하게 느껴졌다.
"이번 주에는 손님들 많이 왔나?" "니는 목사 스타일이 아니다. 노가다 스타일이다." 목회를 그만두고 생활인이 되라는 어머니의 눈물 섞인 호소로 인해 나는 마침내 목회를 내려놓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평범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습니다"라는 원망 속에, 고향으로 내려가면 목회는커녕 나 자신이 교회를 다닐지 어떻게 될지도 모를 정도로 믿음의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다.
교회에 사표를 제출하기 직전이었는데, 폐교를 앞두고 한 학년에 한 반 정도밖에 없는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고양시 글짓기 대회에서 1등 했고 경기도 대회에 고양시를 대표해서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들이 나중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아들에게 "나는 안 된다!"는 절대비관정신을 가르쳐줬다. 그런데 글짓기 대회에 참석했다가 오후 늦게 귀가한 아들이 '대상 먹었다'는 것이었다.
"홍수와 요강'이 아들의 글 제목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비만 오면 홍수가 나는 지하 사택, 화장실이 없어서 요강을 두고 살며 오물을 묻히던 우리 집의 슬픈 이야기를 가지고 아들은 글을 써서 '대상(大賞)을 받은 것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몸부림치며 살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아도 아무것도 안 되는 내 인생이 '홍수와 요강'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초라한 내 삶도, 그것이 하나님 손에 올려지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재료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땀 흘리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물과 한숨으로 자기 인생을 통과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무척 힘들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개척교회의 작은 목사인 나는, 연예인들이 연말 시상식 자리에서 큰 상을 받게 되면 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면서 얘기하는 '이 상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라는 고백을 들을 때마다 '내 인생은 무엇인가'하는 자격지심에 시달려야 했다. 내게는 일평생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초라한, 가장 막막한 인생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재료가 될 수 있다. '홍수와 요강'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낸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재료가 된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새로운 이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십자가 뒤에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알기에 십자가가 소망이 되기도 하지만, 처음 십자가를 겪었던 그때의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이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버린' 칠흑 같은 어둠의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절망적인 죽음을 가지고 사흘 만에 영광의 부활로 예수님을 살려내신 것이었다.
(교회와 성도가 세상적인 것으로 자랑거리를 삼으면, 세상은 교회가 자랑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가지고 교회를 조롱하며 자랑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세상 것으로도 절대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이 흉내 낼 수 없고 소유하지 못한 것으로 자랑거리를 삼아야 한다. 바로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 예수님이다.. 그것으로 충분해야 한다.)
잘 나가는 큰 교회 목사가 아닌 그냥 그저 그런 작은 개척 교회의 목사여도, 나의 삶이 초라하고 비참할지라도, 내가 구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그 삶을 만족해할 때 하나님은 이미 내게서 큰 영광을 받으셨다
40 중반을 넘어선 나이,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내 모습... 선교지에 나가지도 못했고... 나로 인해 주님을 알게 된 사람이 몇 명인가 계수할 때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의 성적표... 그래도 하나님은 괜찮다고 하십니다. 빈수레여도, 아무것도 보여드릴 게 없어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유일한 회중으로 삼고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과 만족을 얻으면,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나님, 내 인생에는 역전은 없습니까? 반전은 없습니까? 우리는 울부짖지만, 우리 인생에 '반전은 없다!' 그냥 초라하게 살자. 그래도 그 인생을 통해 하나님은 가장 큰 영광을 받을 것이다.
대단한 성취나 성공이 아니라, 눈물과 고난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내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왜일까?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존 파이퍼 목사님의 얘기다. ' 하나님을 기뻐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만족해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김관성 목사의 책 220페이지에서 발췌한 내용을 공유함. "조금만 더 나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며 살겠다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의 일’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루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최소한의 배경이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그분을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대단한 업적과 성취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
내 삶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칭송하는 것만이 하나님께 영광되는 것이 아니다. 눈물과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도...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는 그 삶을 신실하게 가꾸어 가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막막하고 답답한 길이 주어지더라도 그 현장에 몸을 던지고 나면 해야 할 일과 사역이 보인다. 내 야망과 꿈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을 것 같이 초라해 보이는 현장에 우리 인생을 던질 때,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하늘의 평강과 은혜가 비로소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잠시 살다가 갈 인생길.... 우리 자신의 꿈과 비전, 그 따위 것은 과감하게 무시해 버리자.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용기 있게 걸어가야 할 '자기 부인의 길'이 아니겠는가?)
적용기도 (김은호 목사 인도)
신앙생활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값싼 복음에 속으면 안 된다.
우리 삶이 이해되지 않고 눈물로 점철되고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더라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십자가를 붙들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간다면, 그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부귀와 영광을 누리면서도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니다.
내 목회에 열매가 없어서 포기하고 싶은 목회자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비교하지 말자. 갈렙은 여호수아와 비교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사는 사람은 내 인생과 다른 사람의 삶을 비교하지 않는다. 우리는 야망을 따라 살지 않고 비전을 따라 산다.
나는 일어서리라.
잘잘법에서... 하나님을 믿어도 여전히 힘들고 삶이 안 풀릴 때... 김관영
제 삶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가정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는 반전 같은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소위 말하는 기도의 응답도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더 잘 이루어지는 듯합니다.
저희 지하 사택에는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집에 요강을 두고 가족이 그곳에서 볼일을 본 뒤, 새벽기도를 마치면 매일 계단을 올라가 공용 화장실에 그것을 버리며 살았습니다. 장마가 지면 1층 창문으로 물이 흘러넘쳐 지하 사택이 침수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목회를 경험하며 제 삶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주변 동료 목사님들은 이럴수록 더 기도해야 한다고, 당위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라고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밤을 새워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매달린 날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죽지 못해 살면서 어느 정도 연기도 하며 버텼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삶이라는 것이 참 묘하더군요.
어린 시절 경험한 학대, 그리고 지금의 가난으로 여전히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요. 왜 기독교 신앙이 제게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가요?
울산 '낮은 담 교회' 김관성 목사 답변입니다.
김 목사는 당시 14명의 성도로 교회를 개척해 400명 이상으로 성장했던 행신침례교회를 두고 울산으로 개척을 떠나게 된 이유에 대해 “교회에 방향대로 (원래는) 부교역자 분리 개척을 계획을 했다. 그런데 그때 코로나 시기가 찾아왔다. 분리 개척에 목회의 경험이 부족한 부교역자를 보낸다는 것은 사지로 몰아넣는 느낌이었다”며 “분리 개척을 연기하고 기도했다. 교회는 교회를 낳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기도하는 와중에 ‘한 번이라도 개척을 해 본 사람이 잘 하지 않겠는가’하는 깨달음이 왔다”고 했다.
이어 “헨리 나우웬은 ‘욕망은 상향성의 삶을 추구하고 소명은 하향성의 삶을 추구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붙잡고 제가 개척을 나가기로 결심했다”며 “의논을 하면 개척을 나가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예배의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개척을 나가겠다고 공표하고, 교회 개척을 추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떠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성도님들이 뜻을 존중하여 담임목사가 개척을 나가는 것이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해 주셨다”며 “이후 행신침례교회에 대한 걱정은 걱정일 뿐 현재 담임을 맡고 계신 목사님이 제가 있을 때 보다 더 많이 교회를 성장시키고 든든히 세워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척 당시 가족들의 반응에 대해 그는 “아내는 저를 묵묵히 따라와 주었고, 저희 딸은 멋진 결정이라며 저를 응원해 주었고, 아들 또한 목사다운 삶을 응원해 주었다”며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이어 “담임목사직을 내려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행신침례교회가 가족 공동체를 추구하는 교회이다 보니 정을 떼고 그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며 지금도 정을 끊는다는 것이 아프지만 견뎌내는 중임을 말했다.
김 목사는 “외부에서 설교 초청이 많은 편이다. 가난하게 살다가 수입이 많아지니까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며 “그래서 아내와 대화를 해서 필요 없는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독이 될 수 있기에 나누어 주기로 결정했고, 이후 외부 초청 사례비를 부목사님과 나누게 되었다”고 했다.
이 자매님께서 주신 질문들이 오히려 제 마음을 대변하는 질문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고 사는 한 사람의 신자로서 제가 평생 품었던 신앙적 고민이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적으로 빈곤한 역기능적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알코올 중독과 도박 중독에 시달리셨고 폭력 성향도 강하셨습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살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벌어오지 않으셨기에 어머니께서 가정 경제를 책임지셨습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시장에 나가 나물과 고래고기를 팔며 생계를 꾸리셨습니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하루 종일 밖에서 술을 드시고 노름을 하셨다가, 함께 술 마시고 노름하던 아저씨들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1년에 300일 이상 단칸방에서 새벽 1~2시까지 노름판이 이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언제나 술과 담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도 시장 일을 마치고 귀가하셨지만 방 안에는 밥을 먹을 공간도, 편히 누울 공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저는 부엌에서 밥을 대충 먹었습니다. 단칸방 왼쪽 구석에는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어머니는 저를 끌어안고 그 책상 밑으로 제 머리를 넣어 함께 잠을 청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방 안을 가득 메운 담배 연기로부터 제 폐를 보호하시려던 것 같습니다. 다리를 뻗을 공간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도박에서 돈을 따시면 그대로 잠드셨지만, 잃으신 날에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셨습니다. 새벽 1~2시경 아저씨들이 돌아가면, 아버지는 잠든 어머니를 깨워 살림을 잘하느니 못하느니 잔소리를 퍼붓고, 경상도 특유의 거친 욕설을 쏟아내셨습니다. 그러다 스스로 감정이 격해지면 손과 발로 어머니를 두들겨 패고, 부엌에서 숟가락이나 포크 같은 도구를 가져와 어머니의 머리를 찍어 피를 흘리게 한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성장했으니 제 영혼 속에 내재화된 상처의 깊이와 넓이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아이로 성장하기 어려웠습니다. 고통과 두려움이 너무 컸습니다. 누나들과 형과 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어머니께서는 마흔둘의 늦은 나이에 저를 낳으셨습니다. 저는 시집간 누나에게 찾아가 "아버지 밑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누나는 웃으며 "아버지가 젊었을 때 우리에게 하신 것에 비하면 너는 천국에서 살고 있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누님이 세 분 계십니다. 누님들은 제가 그들의 학력을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누님들은 모두 초등학교만 졸업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술값과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식모살이를 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일요일 밤 주인집 일을 마치고 베란다에서 고향 울산 하늘을 보며 달을 올려다보고 서럽게 울었던 기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달에 엄마 얼굴이 함께 떠오르는 것을 모르지?"라고 하시며 저를 설득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복되는 삶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기본 정서는 '불안'입니다. 어머니는 매일 저를 안고 우시며 "너만 아니면 엄마가 지금이라도 천리만리 도망가고 싶은데, 막내인 너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학교에 가면 저는 "혹시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엄마가 도망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칠판을 바라보고 있어도 온몸을 지배하는 불안과 긴장, 공포 때문에 공부에 몰두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예수님을 믿으면 감동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 길에 어떤 삶이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찾아온 감격 하나 붙잡고 "하나님, 저도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서원했습니다. 신학교에 갔지만 내내 돈이 없어 울어야 했고, 태생적으로 지녔던 환경 탓에 아픔과 고난은 면제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아내가 제게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타잔"이었습니다.
"왜 타잔이냐"고 물으니 "타잔은 무지갯빛 팬티 한 장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저에게도 아내는 자신의 인생을 맡겼습니다. 무엇을 믿고 그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한 번은 울산의 큰 슈퍼마켓에서 테니스 가방을 들고 들어가 초콜릿 수백 개를 훔치다 현행범으로 붙잡혔습니다. 경찰서에 넘겨졌지만 초범이고 나이가 어려 훈방 조치되었습니다. 형님은 거칠게 살아오신 분이었는데, 저를 동네 우물가로 데려가 옷을 모두 벗기고 물을 끼얹은 뒤 기줄을 손에 감아 몇 시간 동안 두들겨 패셨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교회에 가지 않으면 때려 죽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집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갑작스러운 말이었습니다. 형님은 가출 후 험하게 살았지만, 제가 자신처럼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훗날 알게 된 이야기로는, 형님이 동료 건달들에게 "동생이 나처럼 살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교회에 보내 보라"는 권유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님에게 또 두들겨 맞지 않으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이후 평생 주일 예배를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교회에 가니 목사님은 강단에서 "예수님을 열심히 바르게 믿으면 하나님께서 개인과 가정, 가문에 복을 주신다"고 설교하셨습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권사님과 집사님들은 연신 "아멘"을 외치셨습니다.
저는 신앙이 없었지만 목사님이 거짓말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긋지긋한 현실—아버지가 어머니를 두들겨 패고, 밥상은 뒤엎어지고, 가정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열악한 환경—을 바꾸기 위해 교회 역사상 가장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새벽기도를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고, 교회의 모든 예배와 프로그램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5~6년이 지나도 기독교 신앙이 우리 가정이나 제 삶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복을 받는다고 했지만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께 질문도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오는 감동은 컸습니다. 목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길이 어떤 삶인지도 모르면서도 하나님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서원했고, 신학교에 갔습니다. 신학교 생활 내내 가난과 고난이 면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아내는 저를 "타잔"이라 불렀습니다. 타잔에게는 무지갯빛 팬티 한 장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저를 아내는 무엇을 믿고 자신의 인생에 맡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성장했고, 아내 또한 신앙이 없는 집안 출신입니다. 결혼 후 잠시 영국에 가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목사로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지가 고민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가진 삶의 조건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교회를 개척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학원 교실 하나를 빌려 뒤편에 1만 5천 원짜리 십자가를 걸고 교회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기도할 때 제 마음도, 아내의 마음도 뜨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개척 교회 가운데 일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마음에 임하는 은혜의 힘을 붙잡고 우리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소망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개척 후 좋은 날이 없었습니다. 시작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5~6년이 지나자 우리는 길바닥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앉아야 할 만큼 궁핍해졌습니다.
개척 교회에서 제가 배운 것은 하나였습니다. 제 안에 자리 잡은 상처와 비뚤어진 정서가 목사라는 타이틀로 눌려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현실이 끊임없이 압박하자 제 진짜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어려운 개척교회 상황 속에서도 아내는 교회와 가정을 책임지며 견뎠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삐뚤어진 인성이 목사라는 타이틀을 뚫고 나와 아내와 아이들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가정에서는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폭언과 잘못된 행동을 쏟아냈습니다.
삶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가정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과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치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열심히 살았고, 청춘을 쏟아부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왜 내 삶에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 주시지 않는가 하는 실존적 고민이 본격적으로 찾아왔습니다. 밤새 하나님 앞에 울부짖고 금식하며 매달려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더 기도하고 인내하라고 했지만, 그런 당위적 충고는 오히려 상처가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개척 교회를 포기했습니다. 그렇다고 더 나은 목회 환경이 열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택을 제공한다는 빈민 마을로 들어가 다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지하 사택이었고, 교회 구성원은 대부분 할머니와 아줌마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 다시 시작했으나, 목회 열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하 사택에는 화장실도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요강을 사용했고, 새벽기도를 마치면 계단을 올라 공용 화장실에 비웠습니다. 장마가 오면 1층 창문으로 물이 흘러넘쳐 사택이 침수되곤 했습니다. 아침마다 사택은 곰팡이로 가득했고, 아내는 걸레 다섯 개를 빨아 곰팡이를 닦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폐렴에 시달렸습니다. 개척 시절보다 더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제 기도는 “하나님, 예수 믿고 살아서 좋은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왜 내 인생에 어떤 도움도 주시지 않습니까?”라는 탄식뿐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상담을 받아도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신앙을 내 의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신앙을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결국 죽지 못해 살면서 목회하며 연기하듯 살아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형편의 목회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목사님, 살 방법이 없습니다.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찾아오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제 세포 하나하나에는 돈 없이 사는 공포와 상처가 새겨져 있기에, 저는 가진 것을 탈탈 털어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줄 것이 없을 때는 그들을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았습니다. 장기, 중기, 단기 투숙자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아이들 방까지 내주며 1년, 2년, 몇 달, 혹은 한 주 두 주 함께 살았습니다.
거지 같은 존재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살다 보니, 그 안에서 사랑, 신뢰, 애틋함이 피어났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상처뿐인 영혼들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살아가니, 큰 반전이 없어도 묘한 위로와 평강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구체적 표징이 없어도, 상처 입은 자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힘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살았습니다. 예수 믿고 목회하며 이런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제 삶에는 여전히 큰 반전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간증에서 듣듯이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삶에 큰 은혜와 역사를 베푸시는 일은 제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상처뿐이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곁에 있어 주기에 저는 하루를 견디고 힘을 얻었습니다. 제 안의 상처와 결핍이 오히려 그런 이들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랑으로 변하여, 그들을 세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함께 살다 보니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것들을 실천하며 살아갔습니다.
행신교회에서 사역하던 때 한 청년이 신방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였습니다. 어린 시절 두 번이나 입양되었다 파양된 뒤 세상에 홀로 내던져졌다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그의 두려움과 막막함이 제 가슴을 후벼파 저는 눈물을 참지 못해 몇 번이나 밖으로 나가 울음을 닦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결국 저는 그 청년에게 “우리와 함께 살자”고 했고, 그는 우리 교회의 한 식구가 되어 공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극적인 반전은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모난 성격과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었고, 저 역시 그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그에게 경제적·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사랑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았습니다. 험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평범한 이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선과 마음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삶에 반전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들 합니다. 기도의 응답도 잘사는 사람들에게 더 잘 이루어지는 듯 보입니다. 형편이 나은 이들은 꿈을 이룰 수단이 많아 그것을 두고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와 그 청년에게는 기도가 응답된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삶을 그대로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신학 공부를 마치고 말씀을 전하며,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 꾸역꾸역 살아가는 현실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의 파양을 겪은 아이가 누군가를 믿고 사랑하며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긴 시간 동안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축적되어, 결국 우리의 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하나님께 따지고 들 힘이 있었지만, 이제는 몸의 힘이 빠지면서 그런 은혜를 서서히 느끼게 됩니다.
저는 요즘 "반전이 없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살아갈 때 나타나는 애틋함과 사랑, 신뢰와 이해의 깊이"가 크다고 자주 말합니다. 형통하고 성공한 이들이 노래하는 "좋으신 하나님" 못지않게, 반전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하나님 형상을 닮아 가는 과정에도 크신 은혜가 있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쫄딱 망한 여배우가 술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망했는데도 웃으며 사는 여러분이 존경스럽습니다. 망해도 되는구나, 영광스러운 결과가 없어도 사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구나." 그 대사는 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한나의 아이』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답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답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신자에게 더 영광스러운 삶은 없다.
내가 꿈꾸고 소망하는 결과가 예수 믿는 자리엥서 주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빚으시고 인도하시며 결국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자매님께서도 그런 하나님의 손길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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