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19. Day 10. 우리에게 닥친 고난과 하나님의 은혜 (예레미야 33:3)
강사 : 오은주 집사 (36세)
영화 '교회오빠' 주인공
「교회오빠 이관희」 저자
원래 이 자리는 남편이 서기로 했던 곳인데, 남편이 작년에 소천한 이후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내가 섰다. 나는 오늘 우리 부부에게 일어났던 기적과 같은 삶을 나누고자 한다.
사랑하는 신랑이고 믿음의 선배이고 스승인 남편 이관희 집사의 삶에 대해 얘기하겠다.
금년 봄에 '교회 오빠'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고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함께 기도해 주셨다. 또 '교회오빠 이관희'라는 책이 나온 후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영화와 책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시사회에서의 KBS 최은영 아나운서의 감상평을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살아있는 욥'이었다.
(욥기 1: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남편 이관희 집사는 고난의 시간을 겪어내는 동안 욥기서를 읽고 또 읽으며 그의 믿음을 지켜 나갔다. 내게도 남편이 욥과 같은 사람은 못되더라도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부는 자랑할 것이 고난 밖에 없는데,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오히려 고난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고난은 우리 부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가 아닌가 한다.
첫째 고난은 이관희 집사의 대장암 4기(완치가 어려운 말기) 진단이었다.
2014년 (남편 당시 나이 36세) 9월의 일이다. 남편은 고려대 ROTC로서 육군 장교 복무를 마치고 LG를 거쳐 퀄컴 코리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나는 32세로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던 때였다.
청년 이관희는 술담배는 근처에도 가지 않고 집과 교회 밖에 모르는 '교회오빠'였다. 차라리 지루하고 답답해 보이는 '엄친아'였다. 실제로 우리 엄마 친구의 아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우리 친정 오빠의 과외 선생님으로 청년 이관희를 집으로 불러서 나도 어린 시절에 처음 이관희 집사를 보게 되었고 무뚝뚝한 그였기에 그는 내 소녀 시절의 짝사랑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후 1학년 때 이관희씨와 처음 사귀기 시작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헤어졌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내가 30세가 되었을 때 마침내 이관희 집사와 결혼하게 되었다.
사실 그 10년 동안에도 주변에서는 많은 권면이 있었는데 나는 여성의 고난에 대한 직관 때문인지 이관희 씨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부잣집 막내딸로 유복하게 살았는데, 내가 대학 졸업하기 전에 아버지의 사업이 완전히 망가져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돈이 많은 남자를 배우자의 조건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청년 이관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없더라도) 돈이 많은 남자와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물질의 부자는 아니지만 믿음의 부자니까, 신뢰할 만한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만29세에 마침내 이관희 씨와 결혼하게 되었다.
'암을 만나서 투병하는 이 과정이 어떤 점에서는 고맙다. 영적으로 더욱 건강해지기 시작했기에 고맙다'고 이관희 집사가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의 짧은 6년간의 결혼생활에 나는 아무 후회도 없다.
달콤한 신혼과 전쟁 같은 적응기를 보낸 후, 임신과 출산을 통해 둘의 사이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남편의 대장암 판단을 받게 되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 남편의 대장암 판정을 들은 후 나는 산후였지만 매일 밤 엄청나게 울었다. 게다가 그 좁은 집에 시어머니께서 남편을 돌보시러 들어오시고 미국에 살던 시누이도 오빠를 돌보겠다며 조카까지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되어 나는 더욱 힘이 들었고 날카로워져 갔다.
그 때 남편은 LG전자에서 퀄컴 코리아로 직장을 옮긴 후였고 곧 독일로 주재원으로 갈 예정이었기에, 중학교 음악선생이었던 나는 함께 독일로 가서 음악 공부도 더 하고 싶었다.
갑자기 대장암 진단을 받고 하나님께 원망이 생길 수도 있던 그 때에도, 남편은 매우 달랐다. 암과 열심히 살았고 암 앞에서 쫄지 않았고 열심히 기도하면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그 꿈이 깨지고 죽음의 그늘이 다가올 때조차 그는 아무 요동도 없었다. 내가 암 환자를 위한 여러 책을 사다가 읽자고하면 남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자고 하였다. 그때는 무척 힘든 시기였기에 남편에게 서운한 일도 많았고 미워하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집을 나가고 싶었지만 딸(소연)을 생각해 주저 앉았다.
둘째 고난도 갑자기 닥쳐왔다.
매일 아침 QT를 남편과 함께 시작했는데 큰 은혜를 받게 되어서 우리 부부가 조금씩 안정화 되어가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각각 집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어머니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남편의 얘기에 4개월된 딸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나 혼자 시어머니 댁에 갔다가 옷방 안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시어머니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급히 달려온 남편은 놀란 나를 달래주고 기도를 시작했다.
'주님, 암이라는 병도 저는 축복으로 여깁니다. 제 육과 영을 깨끗이 고치기 위함임을 믿습니다. 욥보다 강한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의 평안이 제 기도의 첫 제목이었는데, 이렇게 제 믿음을 시험하지 마세요' 그런데 이윽고 남편의 기도가 이렇게 변화하는 것이었따.
'어떤 환난이 닥쳐와도 절대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엄마 미안해, 엄마 사랑해."
나중에 그 그기도에 대해 남편은 이렇게 얘기했다.
'사실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는데, 성령께서 내게 역사하시는 것이었다. 비극적 죽음을 선택하신 우리 어머니를 품에 안고 울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도저희 주님을 원망할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감사뿐이었다. 그것은 성령께서 내 안에서 이루어내신 극적인 반전이었다.'
그러나 우리 두 부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그 두 가지 고난도 끝이 아니었다.
시간이 좀 흘러 우리의 삶이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때 쯤, 나는 진통제로도 다스려지지 않던 산후통이 악화되어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입원을 했다. 당시 남편은 12차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검사결과 내 온 몸에 암이 퍼져 '혈액암 4기'니 곧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믿기지도 않았고 하나님이 원망이 되었으나, 하나님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하고 물으셨고 그 질문에 나는 내 위선적 삶이 너무 아파서 며칠을 통곡하며 회개했다. 그리고 결국은 이 심판의 사건들의 처리 방침을 수용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주님만 의지하겠습니다.'
7개월만에 세 가지 모든 고난이 겹쳐 다가왔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기로 했다.
마의 삼각파도 혹은 저주의 퍼펙트 스톰 앞에서 우리 부부는 극단적 선택하기 보다는, 서로 용서하고 위로하며 이 세상 어느 커플보다도 더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되었고, 투병생활 중에도 소소한 행복들을 놓치지 않았다.
남편의 신앙은 감히 ‘살아있는 욥’이라 할 만큼 깊어졌고, 너무나 세속적이었던 나도 믿음과 배려심이 깊어졌다. 우리 둘 다 암 4기 말기이다 보니 서로 싸울 일은 없고 서로가 암 발병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에서 서로에게 미안해서 많은 대화를 함께 나누다보니 그동안의 오해도 풀렸다. 받고 싶은 것보다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이 때부터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나와는 달리 투병과정 중에 암에 대한 책보다는 성경을 읽고 묵상했다. "욥기의 진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결과는 오로지 하나님의 것일 뿐,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변화해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남편은 고통이 매우 심해졌을 때도 늘 말씀과 기도에 힘을 썼다.
14개월만에 암이 재발해서 15시간 동안 몸의 대부분의 장기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한 후에도, 남편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 감사할 것을 찾아야 한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삶이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둘 다 보험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투병과정에 돈 문제는 없었는데, 치료비가 문제가 되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해 애통한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요즘 암 환자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영혼들을 많이 본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 (오은주 집사는 현재 판교에 있는 사랑의병원 문화홍보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나는 항암치료 후 결과가 좋아 지금은 건강을 회복한 상태다. 하지만 남편 이관희 집사는 두 번의 암 재발을 겪은 후 끝내 작년 2018년 9월16일 (만 39세 생일)에 주님을 만나러 갔다. 소천 10일 전에 말기암의 통증 중에서도 '하나님은 눈부신 삶을 사는 사람을 증거로 삼기도 하지만, 고통 속에서 주님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도 증거로 삼으신다’고 고백했다.
투병 과정 중에 하나님은 우리 부부가 KBS TV 이호경 PD를 만나게 하시고 2016년, 2017년에 우리 부부에 대한 내용이 KBS 다큐멘터리로 소개되게 하시고 이제는 영화와 책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때에 만남을 우리에게 주셨다.
내게 소원이 하나 있다.
이 땅에서 내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딸 소연이를 잘 키우고 나중에 천국에서 남편을 다시 만나면 '은주야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린다.
기도하자. 하나님 '인정 중독'(다른 사람의 인정을 갈구하는 상태)에 걸려서, 기복적인 복만 구하며 진정한 팔복은 간구하지 못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적용기도 (김은호 목사 인도)
이관희 집사가 이 자리에 서기로 되어 있었는데, 오은주 집사가 대신 서주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도전을 주는 시간이었다.
고난을 당하면 우리의 문제는 크게 보이고 하나님은 작아 보여서,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다.
대장암4기, 어머니의 자살, 아내의 혈액암4기.... 이 어려움 속에서도 이관희 집사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찬양 '요동치 아니하리' 처럼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여 주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갑자기 다가온 인생의 고난, 이해되지 않지만 여러 고난이 겹쳐도 이관희 집사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우리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겠다고 결단하자.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참 짧다. 부모와 자식, 부부간에 사랑할 시간이 짧다. 서로 으르렁거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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