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19. Day 6. 북한 영혼들을 향한 나의 사명 (빌 2:1-4)
강사 : 지성호 대표
현) 북한인권단쳬 NAUH(나우) 대표
동국대 법대 졸업
책 '나의 목발이 희망이 될 수 있다면'의 저자
2023년 현재 국민의힘 당 비례대표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
(빌립보서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4년 동안의 북한에서의 삶
나는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함경북도 회령시 학포리 세천에서 태어났다. 1982년 북한에서 태어난 나는 ‘고난의 행군 시대’라고 불리는 199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북한에서 태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의 내 삶은 무척 춥고 힘들었다. 나는 이 자리에 혼자 온 것이 아니다.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 기독교인 형제들의 마음을 함께 가지고 이 자리에 왔다. 다니엘 기도회에서의 오늘의 이 만남이 통일의 물꼬가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나를 그 땅에서 살려 주셨고 이끌어 주셨다. 지금도 탈북을 원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 2천만명의 마음까지 함께 갖고 이 자리에 왔다.
우리집은 할머니, 부모님, 남동생, 여동생 이렇게 6가족이 함께 살았다. 어느날은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피눈물이 난다'는 제목으로 글짓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미 정해져 있는 모범답안대로 남한이나 미국, 일본 등이 피눈물나는 곳이라고 써야 했는데, 나는 고생하시는 우리 아버지의 삶이 피눈물난다고 썼다가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가 추궁을 당하고 수용소에 갇힐 뻔했다. 나는 그 때 어렸지만 이렇게 내 감정도 통제 당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1990년대 중반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학교 친구들도 죽었고, 우리 할머니도 굻어서 돌아가셨다. 그것이 슬프기보다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겠다는 것이 당시 13세 소년의 마음이었다. 양식을 달라고 해도 잡아 갔고 일을 나가지 않아도 잡혀 갔다. 우리가 살던 탄광지역은 6.25때 잡혀온 포로들이 대부분이었던 곳이었다. 달리는 열차에 매달려 석탄을 훔쳐서 팔곤 했는데 어느 날은 아버지가 잡혀서 내가 보는 앞에서 군인들에게 코피를 흘리며 맞기도 했다. (나는 남한에 온 후 샐러드를 10년 동안 먹지 않았다. 북한에서 풀을 지겹도록 뜯어 먹었기 때문이다.)
왼쪽 다리와 손을 잃다
살아남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꽃제비가 되어 석탄을 훔쳐 팔며 목숨을 부지하던 중에, 1997년 3월 7일은 잊을 수 없다. 내 왼쪽 다리와 손을 잃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중증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의족과 의수를 착용하고 탈북자로 살고 있다.
그 날은 3월이었지만 북한은 너무 추웠고 15살의 나는 사흘째 굶었기에 기차에 매달렸다가 60톤 화물열차에서 떨어져 다리와 팔이 잘렸다.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어떻게든 지혈을 하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겨우 병원으로 호송되었으나 병원에서도 나같은 꽃제비를 수술해주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호소로 겨우 마취제도 없이 3시간 동안 수술을 받아야 했다. 내 살을 써는 소리, 내 뼈를 자르고 갈아내는 소리와 아픔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보니 손가락이 잘린 왼손은 손목까지 절단되어 있었다. (오늘 이 시간의 이 만남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다.) 수술실 밖으로 나왔을 때, 어머니는 혼절해 있고 여동생은 벌벌 떨고만 있었고 아버지는 아들의 잘린 발과 손을 언땅을 파고 묻어야 했다.
북한 당국의 지도로 배고픔에 진흙을 먹은 동생들은 얼굴이 두 배로 부어 있었다. 탄광에 들어가는 부품의 쇳일을 하던 아버지가 본인의 죽을 드시고도 막내 동생의 죽그릇에 눈길을 두는 것을 보고 나는 차라리 내가 죽어서 하나라도 입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11월이 되어 다리가 겨우 낫자 병신이라고 맞고 천대 받으면서도 나는 다시 열차에 매달려 석탄을 훔쳐야 했다.
중국에서 교회를 다니게 되고 마침내 탈북
중국땅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교회에 가 보았다. 북한에서 너무 나쁜 곳이라고 배워서 얼마나 나쁜 곳인지 보러 갔다. 갔더니 그들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었다. 내 가족 이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이 가슴에 와 닿아서 계속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고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예수님이 누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는가? 나같은 북한 사람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배웠다.
성도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쌀자루를 지고 가서 북한에서 고생하는 부모님께 쌀밥을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려던 순간에 경찰에게 잡혀가서 쌀은 빼앗기고 구타당하며 취조 당했다. 그 순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도 희미해질 정도로 슬펐다. 그리고 북한 땅을 탈출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2006년에 6년만에 겨우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중국으로 간 어머니도, 엄마를 찾으러 간 여동생도 돌아오지 못했기에 남동생과 두만강을 건넜으나 중국-라오스-미얀마-태국 등을 거치는 1만 km의 그 먼길을 돌아서 어렵게 남한으로 왔다. 중국에서 라오스로 넘어가는 정글에서 일행에게 버림 받아 혼자 남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께 기도하자 일행이 다시 돌아와서 나를 부축해서 함께 넘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지금은 믿는다.)
[남한에서의 삶]
대한민국으로 입국한 후, 나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자, 언젠가는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한 손으로 컴퓨터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갔으며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내가 먼저 기회를 두드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북한은 싫었다. 3개월 후에 돌아가겠다고 아버지께 약속했었으나 우리는 모시러 갈 수 없었고, 연락이 겨우 닿았을 때는 우리를 기다리다가 탈북을 시도하던 아버지는 잡혀 고문 끝에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이제는 어머니와 여동생도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고 있다.
탈북민을 돕는 활동을 시작하다
대학 공부할 때 미국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나와 피부색이 다른 그들이 울며 박수를 쳐주고 동감해주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 어린 아이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북한을 위한 fund-raising 캠페인에 참여해 주었다. 남한에서 나아진 생활 속에서 나만을 위해 살며 북한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던 내게 그 미국 어린이가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라'는 도전을 주셨다.
그래서 2010년 4월에 북한의 인권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탈북민을 돕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며 NAUH(NOW ACTION AND UNITY FOR HUMAN RIGHTS)라는 단체를 세웠다. 탈북여성 1인당 200만원씩을 들여서 구출을 시작했다. 2~3명을 구출하다가 3년차에는 25명을 구출할 수 있었다. 더 많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교회에 가서 팔았다. 1000만원 정도를 만들었다. 그 후, 방송에 나갈 기회가 있어서 호소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주었다. 형편이 어려운 탈북 여성들조차 동참해 주었다.
북한에서 꽃제비로, 거지로 살았던 북한 친구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미국에 가서 연극을 공연했다. 웜비어의 학교 근처에서 시작하여 백악관 근처까지 갔다. 5개월 후인 2018년초에는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력의 백악관에 초청을 받았다. 6년을 기도해서 탈북했던 과정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나는 한반도의 통일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확신도 그 때 갖게 되었다.
맺는 말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살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하나의 삶을 주관하신다. 우연이란 없다.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오늘 기도회를 위해 하루 금식을 했다. 굶기 싫어 탈북한 내가 금식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북한을 위해서 하루 금식'을 할 수는 없을까? 우리 주변에서 굶주리는 사람들을 섬기면 좋겠다. 행함이 있는 신앙생활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왜 북한에 마음을 써야 할까? 그곳에도 '사람'이 '인간'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이나 인생의 중요한 기도 제목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웃의 영혼을 살리는 기도 역시 필요하다.
내 고향 땅에 교회가 세워지기를 바란다. 그 때가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시간은 하나님 손에 있고 통일도 하나님 손에 있다. 하나님이 하시면 이루어진다.
기도회로 끝나지 않고 행함으로 열매맺기를 당부한다.
하나님의 눈물이 어디에 있는가? 그곳에 우리의 마음이 가기를 원한다.
적용기도 (김은호 목사 인도)
통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질일 때 그 통일의 시간은 앞당겨질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북한의 동포들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한다. 지하교회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3만 3천명의 새터민들이 정착하고 복음화되어 하나님을 만나도록 기도해야 한다.
믿음은 행함이다. 우리교회도 나서겠다.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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