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프로필] 권오희 목사
- 나무와숲학교 교장
- 제주충신교회 중고등부 담당
- 「괜찮아」 저자 - 이 세상에 버려진 인생은 없단다'
https://youtu.be/9ZGVVS5yBlA
https://youtu.be/wHiY6Dlm6iQ
[본문] 요한복음 2:1~3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할렐루야 - 여호와를 찬양하라! (안녕하세요란 뜻이 아니다.)
'오희'라는 이름 덕분에 내 별명은 '오이' 목사다. 그래서 내 전화번호도 2025에 오이오이(5252)다. (외우기 참 쉽죠?)
나는 전도사 일 때 포항에서 중등부 사역을 5년간 했는데, 청소년 사역하는 사람들끼리는 요즘 중학생들을 '양들의 침묵' '바벨론 포로' '좀비' '드라큘라' 등으로 부른다. 왜냐하면 우리 피를 다 빨아먹는 듯하기 때문이다. 5년쯤 중등부 사역을 하다가 더 이상 할 수 없어서 부산으로 고등부 사역을 하러 갔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중등부 학생들이 내게 가장 어울리는 직업에 대해서 자기들끼리 조사를 했는데, 나는 목사가 어울리지 않고 가장 어울리는 직업은 휴대폰 판매업, 사기꾼, 삐끼 순이라고 했다. 또 다른 별명은 '모자르다'였는데, 눈썹이 반 밖에 없는 내 컴플렉스를 가지고 (눈썹없는 인물화의 대표격인) 모나리자를 본따서 '모자르다'라고 한 것이다. 깊은 상처를 받고 중등부 사역이 힘든 것임을 절감했다.
다니엘기도회 섭외를 받고 매우 부담을 느껴 기도하며 이 자리에 섰다. 오늘 이 밤에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집이든, 전국 어디든, 전 세계 어디든 상관없이, 다시 한 번 이 밤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 되어지기를 소망한다. 다시 한번 주님께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기도는 우리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구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기도하고 눈을 들면 다시 한번 내 삶을 주님 앞에서 조율하는 바, 주의 뜻이 내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이 밤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좌절이 있고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주님께 기도할 마음조차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밤에 다시 한 번,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히 부어지는 시간 되어지기를 소망한다.
결핍의 시절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나아가지만, 이런 저런 기도 제목을 가지고 주님을 간절히 부르지만, 때로는 주님이 우리의 원하는 기도를 더디게 들어줄 때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주님께 매달리고 열심히 헌신하지만 하나님이 당장의 큰 소망을 들어주지 않을 때가 있다. 하나님께 그렇게 헌신했고 달려왔는데, 그렇게 오래도록 내가 기도했던 오래된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 마음에 좌절이 찾아올 때가 있다. 마치 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Philip Yancey)'가 책에 쓴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고백처럼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고 기도할 때가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소망하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요 안 이루어질 때가 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은혜 받고요 기도를 엄청 했다. 금식 기도도 했다.
우리 집은 불교 집안이었기에 부적이 붙어 있었다. 내가 은혜를 받고 나니 집에 부적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수련회에 가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은 응답하신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집에 있는 부덕이 떨어져야 됩니다.' 금식 기도를 태어나 처음으로, 밥을 안 먹고 기도했다. 놀라운 사실은, 4박5일 수련회 기간이 지나고 집에 갔는데 한 개 있던 부족이 두 개로 늘어나 붙어 있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가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참 멀리 계신 것 같은 마음을 가질 때가 있지 않은가?
은혜 받은 후에, '하나님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이 시대에 다음 세대를 품고 기도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살겠다'고 기도했다. 그리고 고3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에 4시간 5시간 자며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는데, 고3 수능시험을 두 달 남겨두고 교통사고가 났다. 웬만한 차와 부딪혀도 끄떡 없을 5톤 트럭을 얻어 타고 가다가 하필 18톤 트럭에 부딪혔다. 그날 새벽 2시에 수술해서 아침 11시에 나왔고, 17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수술 전신 마취만 총 4번 했고 수술 같은 치료를 매일 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고3 수험생 때 일이다.
예수 믿지 않는 집안에서 나만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든 식구가 알고 있는데, 내가 고3 수능을 앞두고 교통사고가 났다. '내가 주님 위해서 살겠다, 주님 위해서 내가 내 마음과 열정을 드리겠다 서원했는데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저희 집에다가 제가 뭐라고 이야기할까요.? 하나님을 증거해야 되는데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런 마음이 들었다. 좌절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때로는요 결핍 같은 인생이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주님께 달려가지만 내 인생이 참 결핍이 많고 주님은 참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되었다. 결혼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매우 풍성하고 부부가 무척 기다린 시간이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당시 이 지역은 약 일주일 정도 혼인 잔치를 했다. 깨끗한 물이 많지 않았기에 포도주는 혼인 잔치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계획이 잘못된 것인지 손님이 너무 많이 온 곳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잔치를 망치게 되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때로는 바로 이 본문처럼 내가 주님 앞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내려고 결심하고 열심히 마음을 다해서 살아가지만, 때로는 이 가나의 혼인잔치 포도주가 떨어진 것처럼, 내 인생의 그런 결핍과 좌절 가운데 내 인생의 포도주가 떨어졌다라고 느끼는 분들이 이 시간에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이러한 결핍의 시기가 있다. 이러한 '결핍의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요한복음의 요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결핍과 풍성함으로의 전환은 가나 혼인 잔치에 국한되지 않고 요한복음 전체에 걸쳐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만나신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복음을 몰랐다. 그로 인한 결핍이 있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나온다. 고난과 아픔과 절망 속에서 남편이 여러 명이면서도 그 갈급함을 채우지 못하는 참 결핍이 많은 한 인생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수많은 무리가 따라왔지만 배가 고파서 굶주려 있는 그들을 예수께서 바라보신다. 인생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주의 말씀을 듣고 있지만 결핍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가운데 예수님이 서 계신다. 오늘 우리가 결론은 무엇인가? 우리 인생의 좌절이 있고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면 우리 인생에는 새로운 희망이 있는 줄 믿는다.
결핍의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함
고3때 교통사고가 났을 때 다리가 부러졌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제가 복음을 들고 전국을 다녀야 되는데 다리를 이렇게 하시면 어떡합니까?' 하나님께 원망하는 기도를 드렸다. 한참을 원망하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분이 있었다. 이야기만 들었는데 어떤 목사님이 다리가 소아마비가 있으신데 그 아픔과 절망과 절룩거리는 다리를 가지고 오히려 사람들을 더 많이 위로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분이 떠올라서, 이런 기도를 했다. '하나님, 어차피 이 다리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제가 예수 그리스도 만나면 너무 행복하고 주님이 나에게 온 생명을 다 주셨으니, 혹시 제가 이 다리를 잃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찬양을 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 높여드립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 언제나 동일하신 주~' 17개월간 병원생활을 하고 부를 찬양은 아닐 수 있지 않은가?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셨고 함께 하실 것임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퇴원 후 어느 집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찬양인도자가 이 찬양을 인도하셨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 높여 드립니다." 그 찬양을 부르다가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 언제나 동일하신 주" 이 부분에서 하나님이 내게 여러 말씀을 해주시는 것을 느꼈다. "오희야, 너 그거 아니? 네가 십대 때 아픔과 좌절이 있을 그때, 꿈 없이 방황하던 그때, 내가 너와 동일하게 함께 했단다. 네가 사고 나서 그 안에서 나에게 기도할 때 나를 원망했지만, 네가 네 다리를 잃더라도 감사하겠다는 그 고백을 내가 받았고, 그 자리에 내가 너와 함께 했어. 병원에 실려가고 마취가 돼서 아무 정신도 없을 그 수술 시간에도 내가 너와 함께 했고, 네가 퇴원하고 이곳에 와서 나를 예배하는 지금 이 순간 또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단다." 그 마음을 주시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다리에 장애가 생겨서 무릎 꿇기 쉽지 않았지만, 목발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는데 이 마지막 이 한 마디에 눈물을 펑펑 흘려버렸다. "오희야, 기억해야 돼. 지나간 시간 동안뿐 아니라 앞으로 너의 인생 가운데 내가, 너의 미래 가운데 여전히 동일하게 함께할 거야!" 저는 그 말씀을 지금도 믿는다. 여전히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막 풀리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니고, 좌절도 오고 '도대체 이게 목사인가?' 싶을 정도로 내가 나 자신을 실망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결핍 많고 연약한 내 인생 가운데 지금도 함께하는 분임을 믿는다.
오늘 이 포도주가 떨어졌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기적이 임한 것처럼 여러분 삶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삶과 여러분 가정은, 여러분 삶에는 희망이 있는 줄 믿는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릴 때는 비록 '아멘'하지만 때로는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께 나아갈 때에도 아픔이 올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지금까지 온 것이 모두 주의 은혜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부족하고 결핍된 나조차 들어 써주시는 하나님의 섭리
10대 때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웠다. 공인5단 태권도 유단자이신 아버지는 다소 폭력적이었고 태권도장도 하셨다. 오래 가지는 못했고 군대에서 배운 이발 실력으로 무자격 이용원을 하고 고물상을 하기도 했고 불법 다단계 마케팅을 하는 등 여러 일을 하시다가, 3년간 절에 들어가셔서 스님이 되시기도 했다. 나는 할머니 집에서 살아야 했다. 아버지는 절에서 돌아오신 후에는 교회 다니던 나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절에 들여보내겠다고 하셨다. 철학관도 운영하셨으나 얼마 후에 망했다. 그리고 스포츠 댄스를 배우셔서 1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상을 타오셨다. 최근에는 노래자랑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하셨다. 트로트 가수가 꿈이시다. 이런 아버지가 예전에는 싫었다. 지금은 관계가 많이 좋아져서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그 때는 무척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3세) 헤어졌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 친어머니를 뵌 적이 없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숙모가 보여주셔서 사진만 보았을 뿐이다. 사진을 본 그날 밤 이유 모를 눈물만 흘리다가 잠든 기억이 있다. 둘째 어머니는 아버지와 10년 정도 사셨으나 별 관계나 기억이 없다. 발로 채인 기억만 있다. 아버지가 그 어머니와 헤어지고 사귄 분은 점보는 아주머니였다. 작두 타는 진짜 무당이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참 좋은 분이셨다. 나와 대화도 많이 했다.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셨는데, 마지막 임종 순간까지 그분 귀에 계속 복음을 전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 복이 없다고 해야 할지 많다고 해야 할 지 모르지만, 내 나이 25세에 가족이 된 네번째 어머니는 무척 좋은 분이시고 아직까지 어머니로 지내고 계시다.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내 자존감은 매우 낮았다. 마음에는 분노가 가득해서 친구들과 싸움을 일삼았다.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도둑질이나 다른 아이들의 돈을 갈취하기도 했다.
인생의 꿈도 소망도 없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지 몰랐지만, 그러면서도 교회공동체 안에 머물렀던 것이 다행이었다.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한동대 채플실에서 열린 수련회에 갔다. 에쁜 여학생들이 많다기에 나선 길이었기에, 설교를 들어도 은혜가 되지 않았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아멘으로 화답하는데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내가 이런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내 상황을 좀 바뀌게 해달라고 힘들 때 내가 기도했는데, 엄마 보고 싶다고 기도 했을 때, 하나님이 있으면 나타나든지 기도 응답을 해주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 삿대질하고 원망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곡의 작곡자 '이민섭'씨가 직접 와서 불러주었는데도 그 찬양이 너무 싫었다.
둘째날이 되었으나 찬양하며 춤추는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째날에는 친구들이 방언이 터지고 통성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그곳이 사이비 집단 같아서 밤에 도망나왔으나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서 도로 한동대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이 되었다. 다 포기하고 그냥 주저 앉아 있는데, 조장 형이 눈을 마주보며 손을 들게 하고 내 이름을 넣어 찬양을 불러 주었다. '오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형이 눈물을 흘렸고 그 눈을 바라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형 품에 안겨 엄청 울었다.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하나님은 반드시 만남을 통해 열매를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 '오희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오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부분에서 갑자기 눈물이 와르르 난 것이다. 그냥 품에 안겨서 한참 울었다. 그 때 갑자기 내 마음 안에 이상한 음성 같은 것이 들렸다. 덜썩 주저앉아서 내가 하나님께 범죄했던 것들도 깨닫고 하나님께 내 죄를 고백하고 지나간 시간들의 아픔들을 주님께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마음에 이상한 음성이 들렸다. "사랑한다!" 눈을 떠봤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분명한 음성을 들었다. "사랑한다!" 그날 밤의 그 음성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엄마도 나를 버렸어요. 엄마만 3명, 4명 이예요. 이런 저를 정말 사랑하시나요?" 사랑이라는 것은 내게 너무나 멀리 있는 이야기였다.놀랍게도 눈에 보이지도 않고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내 면전에 찾아오지도 않았는데, 그냥 이유 모를 이상한 음성이 들렸는데 "사랑한다"는 그 음성이 그날 밤에 믿겨지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오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믿어지니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다. 내 마음에 그동안의 좌절과 아픔과 결핍 같은, 포도주가 떨어져서 도대체 어찌 될지 모르는 인생에서 다시 한번 어떤 삶으로 어떻게 풍성한 삶을 채워갈지 모르는 나의 인생이었지만, 그날 밤에 주님이 내 인생에 찾아오시자 그 사랑이 전해지자 그날 밤에 깨달았다. 이 땅에서 나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는 줄 알았는데 그날 밤에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소리로 이렇게 기도했다. "저도 주님이 너무 좋아요. 저도 저 앞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라고 그날 밤에 기도했다. 하나님은 오병이어처럼 너무 작은 하나의 떡과 물고기 같은 내 고백을 들으시고 아마 지금까지의 인생을 인도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을 사역하고 있다. 7년 전에는 대형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교회가 너무 커서 학생들을 뒷모습으로는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은 교회에서 전임 사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연결된 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제주도에서 새터민 사역을 하고 계시던 목사님을 만났는데, 제주도가 이혼율/쓰레기 배출율/우울증 1위라시며, 다음 세대 사역자가 없으니 제주도에 전념해보라는 권유를 하셨다. 아내도 흔쾌히 동의해서 1년 뒤에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에 가서 교회 사역 열심히 했다. 연합사역도 하고 미자립 교회 수련회도 하고 여러 노력을 하다가 5년 전에 그 열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매일같이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같이 만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고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이야기해주고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아침 말씀을 묵상하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공부하고 꿈 꿈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너희도 꿈을 꿀 수 있고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고 우리 인생에 동행한다는 그 사실을 알려주는 방법은, 학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직접 학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학교를 하려 했지만 돈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서, 그나마 알고 도와주실 분들이 있는 부산으로 가서 학교를 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계속 제주도를 마음에 품게 하셨다. 결정을 못하고 있었는데, 예배를 인도하시던 '이커브미니스트리'의 정신호 목사님이 마커스의 '부르신 곳에서' 찬양을 인도 하셨다. 그 찬양을 하는 중에 하나님이 내게 물으셨다. "오희야, 너의 안정감은 어디에 있니?" 다 알고 물으신 것 같았다. 내 안정감은 사람들에게 있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친한 사람들, 함께 지내는 사람들, 도와주는 사람들... '하나님, 사람들을 제가 의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저의 안정감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면서 이 찬양의 '부르신 곳'이 갑자기 '제주도'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가 이 부르신 제주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시작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오희 네가 제주에서 처음 예배했다' 2년 동안 그토록 열심히 사역하며 예배드렸지만, 늘 부산과 제주 두 가지 마음을 예배했기에, 그날 밤 제주도 그 땅을 품고 기도하니 그것이 첫예배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학교가 시작되었다. 돈도 아무것도 없었지만 교회에서도 많이 도와주셨다. 가장 큰 문제는 장소였는데 제주도 기독교 백화점의 비어있는 장소를 권사님이 제주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 쓸 사람이 있으면 빌려주려고 5개월 동안 비어두셨다는 얘기에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다. 다음은 학생들이었는데, 놀랍게도 여섯 명의 학생이 와서 그렇게 학교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너무 귀한 선생님이 오셨고 나는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일하면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정말 이 땅에 앞으로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다음 세대의 일이 제주 땅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열심히 헌신했다. 때로는 교사 월급을 줄 수 없어서 당근 마켓에 책도 팔고, 집에 있는 제 소중한 것을 모두 팔아서 교사 월급 만들어 가면서 기적적으로 시작했다. 3년 차가 되었을 때는 제주도 일곱 교회 목사님들께서 모이셔서, 또 다른 교회들이 후원해서 법인을 만들었고, 제주도에 너무 어울리는 이름 '나무와 숲'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5년 차가 되었다. 지금은 서울, 대구, 부산, 거제도에서 선생님들이 오셔서 제주땅의 다음 세대를 위해, 그 박봉으로 아이들 한 명을 매일같이 품고 아이들의 아픔과 어려움들을 같이 고민하면서, 이 애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함께 그 일들을 해가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너무 놀랍다. 작고 결핍 많았던 내 인생이 마치 이 물 물을 떠서 주라고 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시킨대로 했을 때 역사가 일어났다. 더러운 물이었다. 깨끗한 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하인들이 순종하여 물을 떠줄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줄 믿는다.
맺음 말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이 있는 그 가정, 전 세계에 있는 그 나라의 그 지역에, 여러분 가정과 여러분이 사는 그곳에, 너무 힘들고 지치고 결핍에 빠지고 포도주가 떨어져서 너무 어려운 인생이지만 하나님이 그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는 줄 믿는다. 힘을 내자. 연약하고 부족한 인생이지만,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인 줄 믿는다.
아버지시니까, 자녀니까 사랑하신다.
아들이 4살 경에 아들과 목욕탕에 놀러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랑한다고 했다가 서로 더 사랑한다며 한 시간 동안이나 말장난을 했다.
그러다가 물었다. '이안아, 아빠를 왜 사랑해?' 어린 아들이어서 잘 놀아주고 맛있는 것을 많이 사줘서 좋아한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마디로 대답했는데, 무척 놀라웠다. "이한이는 아빠 아들이니까~"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나에게 뭘 주셔서, 또는 훌륭한 목사나 학교 교장이 되게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이유도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봉사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지치고 힘들고 어렵고 눈물 날 일 많고 참 괴롭지만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하나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귀한 아들 딸이기 때문이다. 이 밤에 우리의 삶을 은혜로 인도하신 그 주님께 다시 한번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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