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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세 21. Day 16. 꿈꾸는 자의 기도는 다르다 - 김명애 교수

Jesus Christ/다니엘 기도회 2021. 11. 16.

[강사프로필] 김명애 교수 
- 주식회사 IMRN 대표 
- 서울여자간호대학 교수 
- 중앙대학교 간호대학원 간호학 박사
https://youtu.be/qH8L0Z8C64s
https://youtu.be/a1yvEixAeXA

[본문] 마가복음 12:30-31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요약]
부모님에게 재산은 물려받지 못했어도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았고, 어려운 나라를 돕고자 어린 시절 서원을 했을 때는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았다는 김명애 교수는 믿음의 유산을 남기신 부모님을 계속 간증한다. '예수님같았던 아버지'
어머니가 말기암으로 투병중이신 상황에서도 북한(개성공단)에 들어가는 1호 간호사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고, 자녀들도 선교사로 쓰임받고자 하는 비젼을 꿈꾸고 있다.

나는 11년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인데, 매 수업마다 첫시간에 반드시 하는 질문이 있다. '학생의 비전은 무엇인가?' 그러나, 대답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 흔하지는 않다.
내 비전은 북한(특히 개성) 땅에 간호대학을 세우는 것이다. 이런 비전을 심어준 분은 우리 아빠다. 목사님이셨는데 '어려운 사람,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며 살아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셨다. 어머님도 목사님이셨고, 그 사이에서 둘째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나는 모태신앙은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죽기 전에 교회 가고 싶다'며 당시 공군에 근무하던 아빠께 부탁해서 온 가족이 근처의 지하 개척 교회에 가게 되었다. 예수를 믿고 난 후 어머니의 병이 고침을 받은 후 온 가족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달려가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 때 아버지는 신학교를 다니셨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양에 교회를 개척하신 후에도 김일성 사망 사건으로 사표 수리에 문제가 생겨서, 결국은 목회와 함께 공군 근무까지 다 하다가 원사로 예편하셨다. 당시 우리 가족은 대방동 공군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틈만 나면 대방역에서 노방전도를 하셨는데, 갑자기 쓰러지셔서 간암 판정을 받고 6개월 만에 소천하셨다. 우리 아빠인 김상권 목사는 생전에 어려운 분들을 돌보고 공감했기 때문에 소천하셨을 때 장례식에 공군참모총장부터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한 장애인들까지 모든 계층의 많은 분들이 오셨다. 그러나 자녀는 돌보지 않으셨다. 딸은 피아노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목회자 가정의 자녀들은 학원비를 지원하실 정도였다.

원래 내 꿈은 교수도, CEO도 아니었고 아프리카 선교사였다. 아프리카 빈민의 사진을 보고 세수를 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아프리카 선교사 꿈을 가진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빠는 안수하며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또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 유품을 정리하다 나온 수첩에는 20여 곳 이상을 지속적으로 후원하신 기록도 나왔다. 간암 말기로 매우 말랐던 아버지는 '주여, 주여'를 하시다가 소천하셨기에 엄마는 아빠를 '예수님같은 분'이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대학생이 된 후, 의료선교대회에 참석했다가 내 선교의 대상국가가 바뀌게 되었다. 앞자리에 앉았었는데, 목사님께서 '굶어죽으면서 얼어죽는' 나라가 북한이라며 실상을 말씀해 주셨고 도전을 받아 북한 땅에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원했다. (우리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다를 때,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간호사가 된 후 일할 곳을 지망할 때는 내 생각으로는 가장 기피했던 중환자실로 지정되었을 때는 실망했지만, 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심폐소생술) 등 중환자실에서의 경험은 향후 북한에서의 활동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어느날 북한 개성에 갈 간호사를 찾는다는 전화를 받았다. 개성 공단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이었다. 2008년 정도 반년 간 개성공단을 왕래했다.
역시 목사님이던 어머니(이귀염 목사)가 췌장암으로 쓰러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신학을 해서 목사 안수를 받으신 어머니는 지하에 교회를 개척한 후에, 아버지가 남기신 군인연금으로 전국의 어려운 노인들을 섬기셨던 분이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누워계실 때 모니터가 흔들리면서 임종이 가까워질 때는 나는 믿음이 약해져서 '누가 알아주냐?'고 했는데 어머니의 대답은 '주님은 아시겠지...'였다. 그 말씀을 붙잡고 오늘까지 왔다. 엄마의 요청으로 새벽 4시에 임종 예배를 나와 엄마가 함께 드렸다. 그리고 엄마는 밝은 얼굴로 소천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기준이 있다.
(고전 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즉, 내가 미련하고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들어 쓰신다. 오직 하나님이 하신다. (직업은 꿈이 될 수 없다. 병원 취업도 꿈이 될 수 없다. 나아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나는 부모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학교가 좀 늦어지기는 했지만, 중앙대학교 전액 장학생으로 간호학과 박사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IMRN(I am a Registered Nurse란 뜻이기도 하지만 International Medical Resource Network의 약자이기도 하다. ) 회사를 창업했다. 전 세계적으로 의료 인력, 간호 인력들을 묶어서 하나님의 군사되는 간호사들을 모으겠다는 취지다. 회사 설립 배경은 몽골과 방글라데시,인도 등을 다니며 간호사들을 교육했는데 우리가 떠나면 모두 잊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엇인가 동영상으로 만들어 남겨줘야 겠다는 취지로, 간호에 대한 실기 영상을 만들었는데 아울러 북측에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북측에 간호대학을 세울 때 300명의 동역자가 있기를 기도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의 기도다. 얼핏 좋은 일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난 없이, 훈련 없이 연단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야베스는 고난을 통해 지경을 넓히기를 기도했다. IMRN은 간호를 바탕으로 지경을 넓히는 회사다.

어렵고 힘든 목회자의 자녀 여러분, 부모의 보살핌이 부족한 것에 대해 낙심하지 말자. 하늘에 포인트가 쌓이고 있다.
자녀에게도 말로만 하지 말고 부모님이 먼저 꿈과 소망을 갖기 바란다. 
시편 139편에서는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고 한다. 그러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니 알아서 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 여러분 삶 속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담대하게 나아가기 원한다. 

[적용 기도] 
부모된 우리가 찔림을 받는 시간이었다. 자녀들의 눈에 비쳐진 우리 모습은 무엇인가? 
성령은 꿈꾸는 영이다. 하나님의 비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야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꿈을 꿀 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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