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소개] 고성준 목사
- 수원하나(침례)교회 담임목사
- 컴미션(Come Mission) 국제이사
- 난민 NGO 리홉 이사장
*1966년생. 서울대학교 수학과 85학번으로 학사/석사를 마치고, 미국 UC Berkeley에서 수학박사(ph.D)학위 마침
[성경 본문] 에베소서 1:11~12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요약]
방황하거나 인생의 의미를 묻는 사람들에게 ‘데스티니 메이커’로서의 창조주 하나님이 디자인한 설계도 ‘데스티니의 길’을 따라 살아가기를 촉구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절대 평강이 있다... 하나님이 잃하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위해 거룩함을 지켜라. 말씀의 무게를 회복하라... 기도와 말씀 묵상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말씀 묵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이다.
[설교]
Destiny에 해당하는 적절한 우리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데스티니'라고 그냥 제목을 정했다. 언어는 역사적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어서 우리말에는 불교나 유교적 요소들이 많아서, 영어 또는 기독교 용어를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면 오도(誤導)의 여지가 있는 경우가 있다. Destiny의 경우 '부르심' 또는 '운명'이라고 번역할 수 있으나, 가장 가까운 번역은 '팔자(八字)'가 될텐데 설교제목을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기독교적 배경의 영어 Destiny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뜻이다.
각 사람에게는 Destiniy가 있다.
우리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주 구체적이고 복된 계획 가운데 태어났다. 따라서 하나님의 그 계획을 발견하고 이루어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된다. 성공적인 인생은 백지에 화려하게 그린 그림이 아니라, 설계자가 계시므로 (크고 화려함이 아니라) 설계자의 설계대로 짓는 건물이다.
우리 인생의 설계자인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살펴보며, 우리 인생의 Destiny에 대해 생각하고자 한다.
첫째, Destiny 안에 행복과 불행의 DNA를 집어넣어 놓으셨다.
By design (하나님의 설계에 의해),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이루어 가면 행복하도록 창조하셨다. 그것이 우리의 Destiny다. 그러나, 거기에서 벗어나면 부족함과 갈망을 느끼도록, 그래서 불행하도록 창조하셨다.
나는 중고등학교까지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행복의 충분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수학을 좋아했기에 원하는 대로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했는데, 그 행복 효과는 겨우 6개월에 불과했다. 입학 후에 실컷 놀았는데 노는 일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어서 6개월 정도 지나니 더 이상 즐겁게 놀 일이 없었다. 그리고 허무감이 몰려 왔다.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다녔지만, 그 허무감이 점점 더 커지던 중에 선배 한 분이 내게 (이미 알고 있던) 복음을 전해줬다. 집에 돌아간 후에 그 말씀들이 자꾸 생각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기도는 솔직하게 하는 것이 주님 앞에 올바른 태도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원하면 원한다고 해야 하지, 자기 속에 있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기도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니 특별한 이유도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2~3시간을 펑펑 울었다. 그러다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정말 말 그대로 '전혀 다른 세상'이 내 앞에 있었다. 성령의 역사였다.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기쁨과 인생의 의미와 목적들이 주어졌다. 영은 갈망을 준다. (수학에서 더이상 증명할 수 없는 자명한 진리를 '공리(公理)'라고 하는데) 영은 공리같은 것이다. 세상의 영이 임하면 돈/권력 등 세상적인 갈망이 생겨나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갈망이 일어난다.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이 영이다. 영이 없으면 갈망이 없는 인형같은 존재가 된다. 세상의 성공에서 허무함을 느끼고 기도한 그 이후, 내게 새 영이 임하셔서 내게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고, 그 이후 내 삶에 하나님을 향한 그 기쁨을 잃지 않았다.
여러분 삶 속에서 참된 Destiny를 원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자기의 Destiny는 자기가 연구하거나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설계자를 만나서 그분에게 들어야 한다. 그래야 참 목적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설계하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둘째, Destiny에는 돌파하는 '능력'이 있다.
예수님을 만난 후 한동안 울고 다녔다. 원래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었으나, 하늘을 봐도 아름다워 울었고 나비가 날아가도 아름다워 눈물을 흘렸다. 너무 행복해서 목회자가 되는 것을 생각했으나, 말을 더듬었기에 바로 포기했다.
내게 복음을 전해 준 교회 선배가 선교단체에 속해 있었는데, 함께 성경 공부를 하는데 너무 재미 있었다. 목회는 할 수 없으나 어려서부터의 꿈이었던 교수를 하면서 학교에 남으면 이렇게 좋은 젊은이들과의 교제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님도 서울대 수학과 교수셨고 내 적성에도 전공인 수학이 맞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나님 은혜로 학교를 졸업하고 국비유학생으로 박사학위를 하러 미국 U.C.(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으로 갔다. 거기 유학생교회 집회에서 아프리카 선교사하시던 이재환 선교사님을 만나서 그분을 쫓아다녔고 내 평생의 멘토가 되어 주셨다.(이 글의 맨 아래 세부 소개 참고) 아내와 상의한 후, 나도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국비 장학생의 의무조건인 학위 후 3년간 국내 근무를 위해 귀국했다가 친한 선배 유학생 출신 목사님이 수원에서 교회를 개척하셔서 잠시 집사로서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그분이 급한 일이 생겨서 미국으로 돌아가시면서 내게 교회를 맡겼다. 신학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망설였으나 기도는 해보기로 하고 기도원으로 올라갔다.
"제가 선교사가 아니라 목회를 해야 한다면 알아듣게 말씀해 주세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방법으로 말씀해 주세요." 나는 매우 보수적인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경험이 적었기에, 절대 그런 특별한 역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3일째 되는 날 내 인생의 모든 패러다임을 깨는 말씀을 듣는 체험을 했다.
"네 Destiny는 선교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를 돕고 준비시키는 훈련관, trainer다"는 말씀을 주셨다. 그렇게 1주일만에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절대 즉흥적이지 않은 내 원래의 성격과는 완전히 다른 결정이었다.
내 첫 직함은 '담임 집사'였다. 부랴부랴 신학교(대전 침례 신학교)에 들어가서 정식 목회자가 되는 과정(목회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말을 더듬던 내게 첫 어려움은 '설교'였다. 두려움에 밤새 기도를 했다. 새벽이 되니 원망이 살려달라는 간구로 바뀌었다. 아침 9시에 첫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하나님이 내 말더듬증을 거짓말처럼 한 번에 고쳐주셨다. 그 이후 지금까지 말더듬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Destiny에 들어서면 여리고는 무너진다.
Destiny에는 능력이 있다. Destiny를 가로 막는 장벽을 돌파하는 능력이 있다.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로 가득하다.
모세의 때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의 Destiny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었으나, 그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다. 홍해는 갈라졌고, 그들을 방해하지 못했다. 여호수아 때에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때 여리고성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여리고성은 무너졌다. 이러한 장벽을 돌파하는 능력은 모세와 여호수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성도들 모두에게 적용된다.
나는 이 일에 대한 증언자다. 여러분 누구든지, 여러분의 Destiny를 알고 발을 떼어 들어가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므로, 하나님이 하시려 하는 일이므로, 아무도 그 무엇도 여러분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인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 밖에 없다. '내가 안하겠다면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면, 사람이든 마귀든 어느 장벽도 막을 수 없다. 그 능력을 경험하기를 축원한다.
세째. (죄는 Destiny를 파괴하므로) 죄를 멀리해야 한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하나님께 해로울 일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를 싫어하시는 이유는 '죄가 죄를 지은 사람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다. 아버지의 마음이 언제 가장 아픈가?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보다 자녀들의 인생이 망가질 때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이 죄를 싫어하신 것이다. 가인의 죄, 사울의 죄가 그들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생각해보라. 거룩함!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것은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내 간증이다.
미국에서 논문을 쓰고 심사 과정에서 defense를 마치고 pass도 받았다. 지도교수의 최종 sign을 위해서 찾아갔다가 문제 지적을 받았고 쉽게 고칠 수 없는 큰 문제여서 이를 수정하기 위해 한 학기를 더 공부해야 했다. 풀려고 노력할수록 풀리지 않아서 학위를 포기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기적적으로 그 문제가 풀렸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보니 결코 풀린 것이 아니었다. 결과는 문제가 없었으나 증명의 여러 단계 중에서 한 단계가 풀리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했던 교수로부터는 축하의 이메일도 받았기에 그냥 넘어가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매일성경으로 QT를 하고 있었는데 계시록 7장 본문을 읽다가 '흰옷'을 성도들이 입은 모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오점이 없기를 바란다'는 묵상을 했다. 결국 지도교수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연구 연장의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평생 겪어 보지 못한 하나님의 임재와 충만하심을 경험했다.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이 쩌렁쩌렁한 울림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그 난감한 상황에서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고 기쁨이 넘쳤다. '평강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하심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와 기도는 양립할 수 없다. 염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망각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고, 평강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인식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되면 평강할 수 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지낸 후, 꿈 속에서 그 문제가 풀렸다. 그래도 개꿈은 아침에 일어나면 다 잊게 되는 것이 속성이지만, 하나님의 꿈을 달랐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풀이가 정확하게 기억났다. 그렇게 풀어 답을 찾았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defense를 하고 졸업을 했다.
거룩함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통로다. 갖추어진 환경이다. 죄와 거짓과 불의가 해결되지 않은 곳에 하나님이 임하셔서 일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네 인생 가운데 일할텐데 너는 그 환경을 만들어라. 그것은 거룩함이다. 죄를 멀리하는 것이다. 그 싸움을 싸우라. 거룩함을 위한 싸움을 싸울 때 적을 물리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일을 못하시는 분이 아니라, 거룩함이 없어서 일을 못하시는 것이다. 지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땅의 교회에게 필요한 것도 거룩함의 회복이다.
맺는 말 : 각 공동체, 나라와 민족에게도 Destiny가 있다.
Destiny는 개인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에게도 있다. 개인의 은사가 다르고 Destiny가 다르듯이, 나라와 민족에게도 가각 다른 Destiny를 주셨다고 나는 믿는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에게 '너는 나의 제사장 나라가 되고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제사장은 개인의 직분인데 나라에 이 직분을 주신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땅을 연결하는 직분이다. 그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구약과 신약의 성경이 이스라엘을 통해 주어지고, 메시아도 유대인으로 오셨다.
한민족의 Destiny는 '기도'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기도는 특별한 영역이 있다. 새벽기도, 산기도, 통성기도 등 온갖 종류의 기도를 만들어냈다. 한국전쟁 후에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에 60년대와 70년대에 기도의 불이 일어나면서 경제적 돌파가 일어났고 경제부흥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기도의 불이 꺼져간다. 대학 캠퍼스의 복음화율은 2%도 안되는, 미전도 종족에 속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내 안의 믿음이 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기도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일으키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유업이 있다. 10만 선교의 꿈을 갖고 세계 각지로 나간 선교사들이 계시다. 중동 1호 선교사로 나가서 남편을 여의고 자녀들과 남아서 40년째 선교를 하고 계신 분도 있다. 부모님들의 임종은 물론이고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하면서 선교 사역을 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믿음의 유업이 있기에 하나님은 이렇게 한민족을 끝내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열망이 있으시다. 기도할 때, 기도의 불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다시 돌파의 능력을 보여주실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다시금 Destiny의 시계를 가게 하실 것이다.
[참고: 이재환 선교사]
1949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이재환 선교사는 중학교 때 주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고 공군에 장기 복무를 하던 중 군목으로부터 다시 한번 소명을 확인 받지만 거부하다 갑작스런 복통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정신만 살아 있는 식물인간과 같이 되었다. 이때 그의 죄를 회개하고 그 후 6개월의 회복기간을 거쳐 병과 제대하고 곧바로 총회신학대학에 입학하고 1980년 총신대 신학 대학원을 졸업, 선교를 꿈꾸며 미국을 거쳐 영국으로 가고 그곳 선교단체 WEC의 선교사 훈련과정을 마치고 1984년 감비아 땅을 밟았다. 1987년 WEC서 독립하여 한국 선교부 산하 West Africa Mission를 설립하였고 이후 Canaan Multi-Purpose Youth Center와 Canaan Christian Community, Canaan Technical Institute, Canaan Bible School, Church, Nursery School을 세우면서 현지인들과의 본격적인 ‘더불어 삶’을 시작하였다. 이 선교사는 모슬렘 선교사역의 소망이 오로지 젊은이들에게 있음을 알고 그리스도를 통한 생활을 혁명, 정신의 혁명, 영혼의 혁명을 젊은이들 속에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원주민 형제. 자매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그리스도 공동체 생활에 초점을 두고 사역해 왔다.
15년 동안의 감비아 만딩고족의 선교를 마친 후, 지역교회를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깨우며 세계 각지에서의 선교 강의와 세미나를 통해 그의 선교 열정을 수많은 이들에게 전염시키고 있다. 있다. 저서: “나라의 임하옵시며”, “검은색이 아름답다.”, “Mission Possible”, “골방에서 열방을 품는 무릎 선교사”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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