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프로필] 장세호 목사
- 이스라엘 샬롬교회 담임목사
- 예루살렘 홀리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the Holy Land) & 미국 미드웨스턴 침례신학교(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교수
- 이스라엘 선교사
https://youtu.be/RJtK9ihHIoo https://youtu.be/lusIWnCHrfI
[본문] 시편 23:1~4, 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샬롬, 샬롬~ (이스라엘의 인사법이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왔다. 이스라엘에서는 히브리어를 사용한다.
1999년 10월에 이스라엘에 들어간 이후 22년이 지났다. 성경을 성경 히브리어로 읽고 싶어서 이스라엘 히브리대에 들어갔다. 현대 히브리어, 성경 히브리어뿐만 아니라 아카드어, 우가리트어, 아람어, 독일어, 헬라어 등을 공부해야 성경을 읽고 공부할 수 있었다. 열심히 공부했다. 모교회인 낙원 제일교회 최병현 목사님과 성도들께 은혜를 갚고 싶었다. 때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이드 생활도 했다. 굉장히 바쁜 시간이었지만 너무 감사했다.
폭탄테러를 겪었다.
2002년 7월 31일 밤을 새우면서 고고학 페이퍼를 준비하고 학교에 가서 제출했다. 목사님 한 분(권갑상 목사)을 데리고 갔는데, 제출 후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다가 다른 전도사님 한 분(권성달 전도사)을 만났다.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하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왼쪽에 앉아있던 전도사님이 내 얼굴을 강하게 때리는 것처럼 생각이 됐다. 오른쪽으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왜 때려요?' 하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이미 두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끼고 있던 안경은 다 날아가버렸고 고막은 이미 다 뚫어져버려서 귀에는 웅웅한 소리만 들렸다. 화약 냄새가 났고 그것이 폭탄 테러임을 알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폭탄 테러가 심하다. 경계가 삼엄한데, 1년 동안 위장취업을 해서 보안요원들을 사귄 테러범들이 보안을 뚫고 폭탄을 반입하여 폭탄테러를 감행한 것이었다. 내가 공부하던 그 도서관 앞에서 페인트 칠을 하던 페인트공 아랍 아저씨들을 보았는데 바로 그분들이 그 테러리스트였던 것이다. 테러가 자주 발생했지만 내가 그 한가운데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목사였기에 하나님이 나와 가정을 지켜주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7명이 현장에서 죽었고 2명은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으며, 85명이 무참히 다쳤는데 부상자 중에 내가 가장 크게 다친 사람이었다. 팔에 붙은 불을 끌 수가 없어서 옷을 벗어던지고 폭탄이 또 터질까 봐 건물 밖으로 일단 뛰어나왔다. 공원용 벤치가 있기에 그 위에 누웠는데, 달려 나온 학생들이 벤치채 들고 엠블란스까지 뛰었다. 왼쪽 허파가 아파서 숨을 쉬기 어려웠다. 긴급 수술을 받게 되었고 나는 눈을 감았다.
코마 상태에 있다가 눈을 떠서 겉에 있던 아내에게 물으니 26일이 경과했다는 것이다. 아내의 일기에 의하면, 테러가 있던 날에 나는 6시간의 수술을 받았다. 온몸의 50%가 화상을 입었다. 의사들은 내가 죽을 것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24시간 릴레이 기도를 하던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내 침대를 예수님이 감싸주시고 계신 모습이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응급실의 간호사가 나를 보더니 '당신은 용사입니다!'라고 했다. 어려운 고비를 무척 많이 넘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부이식 수술을 하는 동안 나는 그물로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고 했다. 그때 내 나이 33세였는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많은 근육이 사라져 버리고 앙상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매일의 드레싱 작업이 칼로 베는 듯한 아픔이었다. '의사는 살아있기에 아픔도 느끼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스테이플러 250개를 왼손에 박았다가 피를 흘리며 다시 빼기도 했다. 피부를 이식해서 주름이 없으니 손과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았다.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며 재활을 시작했다. '언제나 나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의사들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들어와서 웃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 들어오니, 웃고 다닐 수 있었다. 웃고 다니니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오해도 받았다.
이스라엘 TV에서 나를 취재했다. 외국인이 이스라엘에서 테러를 당했지만 귀국하지 않고 이스라엘에 남아 있으니 기사화될 의미가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대신해서 고통을 당했다며 미안해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이스라엘 사람이 되어갔다. 2014년에는 이스라엘 영주권도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이제 유대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외국인에 대한 경계를 풀고 나를 보면 미소를 띠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 아이들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국 베들레헴시가 대한민국 호적에 올라있는 공식 출생지다.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만나다
시간이 지나며 화상 후유증이 시작되었다. 밤만 되면 뜨거워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 열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었다. 호소했더니 유태인 정신과 의사가 찾아와 시편 23편을 읽어주며 힘을 내라고 했다.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러나 내 현실은 너무 아팠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고난 중에 시편 23편을 썼기 때문에 '결핍'을 나타내는 '부족함'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즉, 다윗의 삶 속에서 (세상적인)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충분한)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2절과 3절, 하나님이 내 목자이므로 풀밭과 물가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가보면 우리가 흔히 교회 달력 등의 성화에서 보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웬만해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상적인 삶을 묘사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강제로 되돌리신다는 뜻이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이름을 위하여 인도한다는 것은 고대에 잘 사용하던 표현이며, 자기 이름값을 위해 약속하신 대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의미다.
4절부터는 이미지가 달라진다. 이상적인 푸른 초장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배경이 전환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골짜기다. 차라리 이것이 유다 광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이다. 다윗이 처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었다. 왜 내가 그 형편에 처하게 되었을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그런 고난을 겪는다는 것을 다윗은 잘 알고 있어서,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리라'는 것을 알았다.
3절까지는 하나님은 3인칭 'he'로 나타난다. 그러나 4절에는 '주 (히브리어로는 2인칭 '당신'의 뜻. 영어로는 thou 또는 you)'로 바뀐다. 3인칭은 이상적인 하나님, 원리적인 하나님, 지식적인 하나님으로 멀리 느껴지는 반면, 2인칭의 하나님은 바로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을 말한다. 이전까지는 3인칭의 하나님으로 고백을 했으나, 현실로 돌아와 보니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는 것이다.
목자가 양을 치며 이동할 때, 양이 앞에 갈까 목자가 앞에 갈까?
4절과 6절을 보면, 양이 앞에 가는 모습이다. 1절~3절의 이상적인 모습은 목자(하나님)가 앞에 가며 인도하는 모습이지만, 4절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라온다고 한다. 지팡이와 막대기 등 이 2가지는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대구를 이룬다. 지팡이는 '쉐벳'이라고 하는데,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양을 지팡이 아래로 지나가게 하여 십일조를 사용할 양을 지명했다. 따라서 지팡이는 '통치자의 권위'를 나타낸다. 막대기는 '미쉬에넷'이라 한다. 기대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 끝은 구부러져 있다. 목자가 다리가 아플 때 기대기도 하고, 양이 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는 그의 목을 낚아채서 올바른 길로 걸어가게 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양은 이것을 알고 있다. 양은 목자가 내 뒤에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목자는 지팡이와 막대기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을 보고 묵묵히 걸어갈 수 있다. 요동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가야 할 길을 그도 걸어간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면 목자가 나를 건져줄 것인지 아닌지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그래서 우리는 힘든 이 세상을 묵묵히 살아갈 수 있다. 아파도 고난이 와도 어려워도,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간다.
2003년이 되고 특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았다. '메아 쉐아림' 즉 '100개의 문'이라는 뜻의 마을을 보여주셨다. 여기는 종교적으로 매우 엄격한 마을이어서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곳이다. 그곳을 한국에서 온 청년들이 찬송하며 지나가는 환상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이 이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이었다. 이 말씀에 엉엉 울었다. '이것을 네가 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손가락도 굽혀지지 않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순종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22년을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히브리어로 '에무나'라고 한다. 신실함이란 뜻이다.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전쟁 장면인데, 여기서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다는 곳의 어휘가 '에무나'이다. (에무나= 내려오지 않았다.) 아멘의 어원도 '에무나'이다. 나는 이것을 '버틴다'라고 번역한다. 벅에 잘 박힌 못처럼 떨어지지 않고 변하지 않도록 내가 버티는 것이다. 우리가 '아멘'이라고 할 때 '내가 주님을 믿음으로 나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을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고백이요 선언이 되기를 축복한다.
우리가 곤궁에 빠졌을 때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은 바로 우리 선한 목자 예수님이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자신의 양을 지키셨던 분이다. "주님, 제가 버텨내겠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내가 서서 끝까지 버텨내겠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제가 그곳에 서 있겠습니다." 그 어려움을 지나서 2016년 5월에 히브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손가락도 이제 완벽하게 구부러지고 회복되었다.
6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선하심(토브), 인자하심(헷세드)이 내 뒤를 따라올 것이라고 한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는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 때는 뒤를 돌아보라.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라오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여러분은 포기하지 마라. 그곳에 버티고 서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을 감당하자.
이스라엘 스타일의 축복은 민수기 6장의 아론의 축복으로 서로를 축복하는 것이다. 너무 중요하게 받아들여서 축복하겠다고 하면 바로 서서 '아멘, 아멘'으로 받는다.
(민 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적용 기도]
우리 인생에는 언제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다. 그렇지만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는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때로는 우리의 삶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고 보게 되면 하나님이 결코 실수하지 않으셨음을 알게 된다. 인생의 퍼즐이 맞춰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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