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는 누진세이다. 저소득자는 면세가 되기도 하고 억대 연봉으로 올라가면 매우 높은 세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또 얼마 이상이 되면 더 이상 누진은 없어서 고소득자 간의 불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태복음 20장에는 포도원 주인 또는 일꾼의 비유가 나온다.
포도 수확철이 되어 주인은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일꾼을 찾아 사람들을 포도원으로 데려 온다. 오전9시에 온 사람에서 시작하여 어떤 사람은 오후 5시에 일터로 오게 된 사람도 있다. 해가 지고 품삯을 지불하게 되었을 때, 주인은 맨 마지막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지불하게 했다. 오후5시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그 후한 주인의 처사에 모두 놀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아침 9시에 온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데나리온씩을 받은 것이다. 보너스는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와서 일한 사람들은 오후 5시에 온 사람과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부당하다고 따진다. 주인은 약속한 대로 주었으니 잘못은 없다고 한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가 이 내용을 그렸다. 빛이 비치는 곳에 주인이 앉아 있고 맨 왼쪽에는 청지기/관리인이 앉아 있다. 그리고 주인의 옆에는 부당함을 따지는 사람들이 있고, 그 오른쪽에는 두런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 봐야 보이는 곳에는 한 사람이 포도주통을 굴리며 정리하고 있다. 이 중에 오후 5시에 온 사람은 누구일까? 품삯에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을 때 포도주통을 정리하는 저 사람의 미안함과 감사함은 어떤 마음일까?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 나는 줄곧 나 자신을 어디에 두었을까? 나 역시 예전에는 아침 9시에 온 사람의 입장에서 주인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지금은 오후 5시에 온 사람과 같은 내 모습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이것이 개인적인 내 신앙에서의 새로운 해석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나와 우리의 편협한 마음을 깨닫게 된다. 오후 5시 하루를 허탕치고 가족에게 돌아가야 했던 절박한 형편의 이웃과 동료에게 베풀어진 주인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좁은 마음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복지의 혜택을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때가 있다. 누가 부지런하게 절제하며 일했는지, 무엇을 희생했는지의 계산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생명을 살리는 생각을 해야 한다. 고통 받고 소외된 이웃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를 기꺼이 축하하고 부담할 각오를 다져야 한다. 그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이다.
어쩌면 천국은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서 조차 자신의 우월함을 근거로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라는 곳이 아닐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을 '호모 사케르'로 눈감아 버리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이 바라는 곳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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