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 심윤정 대표
- 극단 쏠라이트 미션 (빛과 소금 극단) 대표 https://www.facebook.com/saltmission
- 사랑의교회 권사
- 뮤지컬 「구원열차, 문준경」 등 다수 작품 연출
쏠라이트(salt + light) 미션의 대표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쏠라이트 미션'에 대해 소개하겠다. 쏠라이트란 소금 salt와 빛 light의 합성어로서, '빛과 소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쏠라이트는 지금까지 다양한 창작 뮤지컬을 공연해왔다. '뮤지컬 손양원'(2013) '구원열차'(2011~2013) '뮤지컬 문준경'(2014~2017) '크리스마스 스토리'(2011~2012) '스타라이트 스토리'(2018~2019) 등. 나는 극단의 대표를 맡으며 지금까지 공연한 작품의 대본을 쓰거나 각색하고, 연출, 안무까지 직접 맡았다. 때로는 배역을 맡기도 했다. 다양한 크리스천 창작 뮤지컬을 극장뿐만 아니라 학교와 노인요양원, 소년원, 교회, 탈북자학교 등, 하나님의 뜻이면 어디든 부르시는 곳으로 달려가서 공연을 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란 호칭은 내게 특별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는가? 나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른다. 예수님도 그렇게 부르셨다. 그런데 내게는 '하나님 아버지'로 부르는 더 특별한 개인적 계기가 있다.
열 살 때 돌아가신 아빠,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다.
나는 4대째 기독교 신앙의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1969년 2월생) 내가 장녀이고, 여동생과 다섯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어린 기억에 우리는 마당이 무척 넓은 큰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그런데, 내가 열 살 때 아버지께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실신해서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갑자기 소천하신 아버지의 몸을 붙들고 '아빠~!'를 아무리 불러도 점점 차갑게, 보라색으로 변해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갑자기 '주 예수 내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라는 가사의 찬송을 1절~5절까지 모두 빼곡히 노트에 적으셨는데, 소천을 앞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빠를 잃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남들 앞에서는 마치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씩씩한 모습으로 가식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5학년 때 '아빠하고 나하고~'로 시작하는 '꽃밭에서' 노래를 배운 후 앞으로 나가서 불러야 했던 때, 나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설움 속에서 그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아빠와의 추억으로, 아빠가 너무 그리워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잠도 못자고 새벽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고 있었는데, 새벽녘에 '내가 네 아빠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붕붕 떠다니는 기쁨을 누렸다. 하나님과의 첫 인격적 만남이었다.
무용, 추락 사고, 재활
5살 때부터 무용을 배웠기에 무용 전공으로 서울예술고등학교와 대학(경희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무용 전공자였기에 대학 입학 직후에 열린 88올림픽 개막식 공연(태풍의 눈)에도 나가고 여러 무대에도 서면서, 나는 교회보다는 세상의 문화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밤늦게 귀가하게 되었는데, 빗길이어서 마구 달리다가 강남 삼풍백화점 건설(1987년 착공~1989.12월 영업시작) 현장의 21미터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다. 공사장 철골에 몸이 박히고, 척추뼈가 으스러졌으며 내장까지 파열되는 심각한 중삼을 당했다. 의사는 어머니께 내 죽음을 각오하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의식을 잃은 동안에 빛나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는 천국 환상을 보았는데, 홀연히 엄마의 깨우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뜨고 의식이 돌아왔다.
그러나 겨우 의식을 되찾은 후 내 삶의 현실은 천국과는 거리가 먼, 고통 그 자체였다. 온 몸을 꼼짝할 수 없었고, 누워만 있으니 온 몸에 욕창도 심했고 온 몸에 수많은 호스들이 꽂혀있었다. 20세 꽃다운 나이에 대소변을 다른 사람이 받아내야 하는 비참한 상태였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화장실만이라도 내 발로 걸어가게 해주세요.' 그리고 몇 달 후에는 그 기도가 이루어져서, 내 발로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1년 정도의 재활치료를 더 한 후에 학교로 복학하고, 공연 무대에도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하나님께서 내 몸과 영혼을 모두 살려주신 것이었다.
뮤지컬에서 소명을 발견하다
브로드웨이 캣츠로 인해 뮤지컬을 공부하고, 결혼과 출산도 했습니다
(나는 원래 5살 때부터 무용을 배웠고 대학 때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대학 4학년 때 무용공연을 위해 미국 뉴욕에서 한 달을 머물렀는데, 내 공연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관람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CATS(캣츠)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하면 사람들이 칭찬하고 박수를 쳐주었는데,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전달되거나 소통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음악과 무용과 대사와 무대를 모두 총동원하는 '종합 예술'인 뮤지컬은 관객과 소통하는 것 같았다. 충격과 전율을 느꼈다. 나도 해보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뮤지컬 유학을 가려 했으나 엄마의 반대로 결국 이모가 계시던 시카고로 유학을 갔다. 시카고에서 뮤지컬을 배우면서 (Columbia College Chicago) 친구들과 공연도 만들고 극단에 소속돼 경력도 쌓았다. 4년 정도 유학 중일 때 한국에서 온 남성 한 분을 만났는데 우리는 서로 첫눈에 반했다. 그 분(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고 아들도 낳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용이나 뮤지컬을 배운 경험이 단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예비하고 준비하게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IMF와 남편의 실직, 아기의 병, 엄마에 대한 원망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IMF가 터져서 남편이 졸지에 실업자가 된 것이다. 실업급여 50만원이 우리 가족 소득의 전부였다. 전세금을 계속 낮춰가면서 교외로, 시골로 거듭 이사를 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기가 천식에 걸리는 바람에 경제적인 쪼들림이 심했다. 남편도 구직 활동을 열심해 했지만 나도 힘이 닿는 대로 온갖 일을 해야만 했다. 무용강사, 뮤지컬 강사 등등.... 아기는 엄마와 매일 떨어져야 하는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가와사키 병에 걸렸다. (소아에서 발생하는 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인데) 그냥 방치하면 아기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병이었다.
아기 간병을 위해 찾아오신 어머니는 가난한 내 시댁 타박을 했고, 그로 인해 엄마에 대한 묵은 내 원망이 터져나왔다. 엄마는 장녀인 나보다 남동생만 위하고 남동생에게서만 삶의 행복을 찾았었기에, 내게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어려서부터 쌓여 있었다. 사실 객관적으로는 우리 엄마가 사랑과 정이 많은 분이고 내게 늘 잘해주신 분이셨는데, 그 때는 서운함과 상처만 내게 다가왔다. 아마도 내가 하나님보다 엄마를 더 원하고 의지했기 때문인 것 같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룬다
아기가 겨우 가와사키병 치료를 잘 받고 퇴원을 했는데, 그 후유증인지 심장 판막에 구멍이 생기고 심각한 천식 중세를 갖게 되었다.
그 때 '성경을 봐라!'는 음성을 들었다. 펼친 성경은 롬5:3~4 말씀이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 구절의 끝에 있는 '소망을 이룬다'는 말씀을 위안 삼고 겨우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같은 구절의 말씀이 있는 전도엽서가 우리 대문에 붙어 있었다. 주변에 새로 개척한 교회에서 붙여놓고 간 것이었는데 전도 문구가 내가 응답받은 말씀과 같았던 것이다. 게다가, 주일에는 그 때 섬기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보니 성경 본문이 또 롬 5:3~4였다. 하나님께서 내게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분명하게 주신 확실한 응답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였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우리가 얼마나 자주 하게 되는지요? 새벽기도 설교의 내용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극동방송에서 듣게 되고, 다시 출근 길의 묵상집에서 마주하게 되는 기적같은 우연이, 아니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 큰 은혜로 다가오던 날들이 생각합니다.)
회복의 시작
며칠 후 남편은 외국계 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몇 달 후에는 한국지사장이 갑자기 퇴직하게 되어 내 남편이 후임 지사장이 되었다. 나는 늘 남편이 이 시대의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아이의 천식도 깨끗이 낫고, 심장 판막도 건강해졌다. 그리고 값싼 전세를 찾아 다니며 여덟 번 이사한 후에 마침내 우리 집도 갖게 되었다. 남편의 취직, 아이의 건강, 우리 집 등 내 세 가지 기도제목을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신 것을 감사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뮤지컬 강사에서 뮤지컬 선교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나는 항상 교회에 다녔지만 사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만도 못한 거짓되고 가식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거의 40세가 되어 예수님을 만난 후 내 삶은 변화됐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에는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고, 하나님을 믿는 것도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나의 성취를 위해 '이것 해 주세요, 저것 해 주세요' 하며 소원을 비는, 마치 우상숭배 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예전과는 180도 변했다. 기도의 내용도 달라졌다.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하게 되었고, 비록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것이 맞습니다. 완전하시고 선하신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며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순장님의 권유로 제자훈련, 사역훈련을 받았다. 그 시간 동안, 마치 하나님과 나와의 1대1 양육훈련처럼 하나님께서는 강력하게 나를 만져 주셨다.
용서를 배우다 - 엄마를, 동생을, 그리고 나를
첫째가 '용서'였다. 기도 중에 환상처럼 '엄마가 어리고 앳띤 모습이었는데, 그 옆에는 어린 세 아이가 딸려 있었고 엄마는 흐느끼고 있었다. 바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젊은 나이의 엄마의 모습이었다. 엄마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왔다.
또,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의 내 남동생의 모습도 환상으로 보았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침대 위에 올라가서 즐겁게 깡총깡총 뛰고 있는 모습이었다. 워낙 어려서 아빠를 여읜 내 남동생은 아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는 평생 아버지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엄마와 동생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들고 이해가 되어서 그들을 용서하려 하다가, 정작 진짜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임을 깨달았다. 먼저 내 악함을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했다. 그리고 꿈을 꾸었는데 내가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 쓰고 있었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나를 씻기우고 신부의 드레스와 관으로 내게 입히고 씌워주셨다. 2011년 1월1일의 꿈이었다. 너무 생생했다.
그런데, 제자 훈련을 마치고 사역훈련을 하면서 '영적 제자도'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했다. 그 책에 나오는 스가랴의 네번째 환상부분을 읽으며 내 꿈과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에 놀랐다.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유대백성의 영적 지도자인 제사장 여호수아가 환상 속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있는 환상이었다.(김은호 목사님의 주일 설교 참고. https://samuelkim.xyz/810) 내 더러운 죄를 예수님이 씻겨 주시고, 내 머리에 관을 씌우셨듯이 나도 소중한 사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기쁘고 자유를 느꼈다.
형제간에 부모자식간에 서로 미워하는 사건들을 뉴스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나도 엄마를 미워하고 동생을 시기했었다. 가정이 깨진 것은 지옥과 같다. 그것이야말로 사탄 마귀가 가장 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자신을 주님 안에서 용서해야 한다.
뮤지컬 선교의 소명을 받다
둘째, 뮤지컬을 통해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갖게 되었다.
뮤지컬을 공부했고 때로는 생계를 위해서, 또는 전공이니까 뮤지컬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뮤지컬은 내게 직업이나 전공일 뿐이었다.
교회에서 치앙마이 단기 선교단 을 위해 위십댄스 자원자를 모집한다고 광고를 해서 찾아갔는데, 단장님이 내게 해외단기선교지에서 공연할 뮤지컬 작품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1개월 정도 안에 대부분 뮤지컬에 대한 경험이 없는, 단기선교를 위해 모인 분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라는 제안이어서 처음에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그 당시 나는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기도를 갔다 오던 길에 단기선교를 위한 뮤지컬 대본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님이 대본을 주시고 나는 그저 받아 적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아이디어였고, 나를 그저 순종할 수밖에 없도록 강권적으로 이끌어주셨다. 이렇게 한 달 만에 뮤지컬을 준비해서 태국 치앙마이로 단기선교를 갔다.
그들은 일반 태국 국민들이 아니라 이웃나라에서 넘어온 난민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면 모두 도망갔고, 겨우 뮤지컬 개막 시간이 다 되었지만 공연장인 학교 강당에 관중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무작정 공연을 시작했는데, 강당 창문 밖에 매달려서 뮤지컬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안으로 불러들였더니 금방 강당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도망가던 난민들이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며 가깝게 대했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다. 할렐루야!
쏠라이트 미션을 창단하여 뮤지컬 선교 사역을 하다
단기 선교를 통해 뮤지컬이 복음 전파에 매우 좋은 도구임을 내 눈으로 보게 된 후, 나는 쏠라이트 선교 극단을 창립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아는 내 마음이 창단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였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는 '골리앗 앞의 소년 다윗'의 모습을 보여 주시며 성경 말씀을 주셔서, 결단을 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또 방향성이 흔들려서 청계산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했다. (2013년, 하나님의 눈물이 고인 곳이 어디인지 기도 중에 보여주셨는데 바로 다음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눈물이 고인 곳, '대학로'였다. 당시 정말 많은 공연이 대학로 무대에 올라왔지만, 동성애와 폭력, 비성경적인 가치관과 음란, 욕설이 난무한 작품이 많았고, 그것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어린 세대, 우리의 다음세대인 자녀들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나님께서 대학로 선교로 우리를 인도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명을 받고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학로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래도 대학로는 상업 공연과 이 세상 문화가 판을 치는 곳이어서 선교 극단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때 이스라엘 정탐군 12명 이야기를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셨다. 대학로는 가나안과 같은 곳이었고, 내 연약한 모습은 마치 메뚜기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기도 응답이었다. 여리고성의 기적도 강하고 담대하게 순종할 때 이루어졌음도 응답으로 주셔서, 그 말씀을 붙들고 대학로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땅밟기 7바퀴를 돌고 공연을 시작했다.
대학로 선교에 처음 올린 작품은 '뮤지컬 구원열차'였다. 쉬는 날도 없이 120여 회를 계속 올렸는데, 첫 공연 때는 텅 비었던 객석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차더니 마지막 공연 날에는 만원 버스처럼 빼곡히 관객이 들어차 까치발로도 설 자리도 없을 정도였다. 극단 초창기여서 아는 분들도 많지 않고, 홍보할 여건이 안 됐음에도 입소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관객을 보내주셨다.
이제는 대학로뿐만 아니라 재소자, 탈북민, 군부대 등 어디든 우리를 초청하는 교회나 기관마다 기쁜 마음으로 찾아가 뮤지컬을 진행하고 있다.
이름 없이, 복음 진리를 전하기만 하라
창단 후 10년 쯤 되었을 때 단장 역할을 다른 분들께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때 하나님은 나아만 장군 이야기를 내게 기도 응답으로 주셨다. 나아만 장군에게 엘리사를 소개해 준 사람은 '이름 없는' 여종이었다. 나도 그런 여종이 되면 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여종처럼 진리를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힘을 얻어 서원하고 단장으로서 사역을 계속하게 되었다.
내가 대표라고 소개는 드렸으나 사실 쏠라이트 극단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소위 대표인 나는 실제로는 하나님의 여종일 뿐이다.
예레미야 31:3 말씀은 우리 극단의 모든 뮤지컬에 대사로 담기는 핵심 구절이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렘 31:3)
내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고난의 광야길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된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김은호 목사님의 정리 기도
오늘 말씀의 키워드는 '관계'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 관계를 다시 점검해보자.
부모님으로 받은 상처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른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육신의 부모도 계시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하고 완전하신 아버지다.
다음 키워드는 '관계의 회복을 통한 축복'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묶여 있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기도 어렵다. 사람과의 관계는 '용서'를 통해 묶인 것이 풀리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먼저 회개하고, 또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용서가 먼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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