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 온성도 목사
- 통일소망선교회 사무총장
- GMS 선교사
- 열방샘교회협력 목사
*GMS 선교사란?
둘째 날 김성제 선교사님도 GMS 필리핀 선교사로 약력에 표기되고 오늘 온성도 목사님도 GMS 선교사로 표기되어서 GMS에 대한 궁금함이 생겨서 찾아보았습니다.
GMS는 Global Mission Society의 약자로서, 우리 오륜교회가 속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의 선교 사업을 위임받은 교단 선교 단체입니다. 1998년 교단 총회에서 교단 내 선교기구를 통합하고 교단 선교부를 확대해서 GMS를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설립했습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GMS 선교사란 표현은 예전의 '총회 파송' 선교사로서 비교적 공인된 파송 선교사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재 2,563명의 선교사가 99개 국가에서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철책선에서 북한 선교의 마음을 품다
내 이름 '온성도'는 가명이 아니라 본명이다. 영광군 염산 옥실 제일교회가 모교회인데 아버지께서 교회에서 언제나 '온성도에게 복이 있기를'이라는 축도를 하는 것에서 은혜를 받아지어 준 이름이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고모 한 분은 이름이 '온신자'이고 조카 중에는 온유, 온사랑 등도 있다. 이제 오늘의 간증을 시작하면서 우리 서로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라고 인사하자.
나는 강원도 화천에서 군생활을 하는 동안 북한선교의 사명을 갖게 되었다. 90년대 중후반에 군 복무를 했는데, 철책선 너머 북한을 보며 당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중이던 비참한 상황의 북한을 늘 바라보며 북한 선교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제대 후 신학교를 다니던 중에 중국 선교단체와 함께 동쪽 두만강 끝 훈춘에서 서쪽 압록강 끝 단둥까지 중국/북한 접경을 따라 여행하며 탈북민들을 많이 만나봤다. 탈북민들이 접경에서는 위험하니까 내륙으로 옮겨서 훈련을 시키던 '미션홈'들이 많이 있었는데, '천독반(성경을 1000회 읽는 반)'이라는 곳도 있었다. 많은 분들이 신학생인 나보다 더 복음으로 준비된 모습이 크게 도전이 되었다.
탈북민 열방샘 교회 동역
이빌립 목사와 동역하게 되다
탈북민 교회인 열방샘교회를 개척(2004년 9월 7일)한 탈북민 전도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빌립 전도사님은 북한 정치보위부 출신으로서 탈북과 북한 소환을 반복하다가 겨우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마침내 한국까지 오신 분이셨다. 그분으로부터 '남한' 사역자가 필요하다는 권면과 강권을 받고 기도했는데 (사 43:19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는 말씀을 100번 정도 하나님께서 떠올리게 해 주셔서,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갖고 그 교회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도 파주의 순복음 오산리 기도원에서 남한 사역자를 보내주시기를 기도하던 중에 같은 구절의 말씀으로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하여 지금까지 18년째 동역을 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탈북 여성들을 돌보는 사역 - 통일소망선교회
내가 동역하는 열방샘교회(담임 이빌립 목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탈북민들을 전도·심방·양육하는 일을 집중적으로 한다. 그런데 탈북민 성도들이 이야기 하기를, 중국에는 아직도 인신매매를 당해 비참하게 사는 탈북 여성들이 각 시골마다 많다’는 것이었다. 5천 위안, 당시 환율로 약 90만 원에 팔렸기에 배우자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물건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탈북 여성들이 많았다.
성도들의 요청으로 한국에서 지원 물품을 기증받고 모금을 받아서 중국으로 찾아갔더니 탈북 여성 자매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작은 열방샘 교회에서 단기선교를 나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위로받고, 상처가 치유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우리가 놀랐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사역을 감당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 년에 두세 차례 중국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했다. 여름/겨울 정기적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그분들을 만나 사역을 하고,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임을 통해 선교회가 세워졌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섬기고 있는 ‘통일소망선교회’다. (2010년에는) 이 선교회에서 한 가정을 선교사로 파송했는데 임천국/주향기 선교사가 파송되어서 지금까지 13년째 사역을 하고 있다.
예제원과 북한선교학교
탈북한 여성들을 도와서 수개월 훈련을 시키고, 한국에서 한 사람당 수백만 원 씩의 모금을 해서 구출해내는 ‘예제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예제원은 ‘예수 제자 훈련원’으로서 이곳을 통해 모두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이 사역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또 준비 없이 들어가면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어서, 중국/북한 선교를 위해 '알고' 들어가도록 훈련 과정도 2011년에 만들게 되었다. ‘북한을 알아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북한선교학교’를 시작한 것이다.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북한에 대해 경험이 많은 선교사들을 초청해서 (북한선교)를 준비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지막 아웃리치로 중국으로 들어가 중국 형제·자매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등 단기선교를 했다.
네가 가라 - 직접 중국으로 파송되다
2014년(? 설교시간에는 2004년이라고 말씀하셨으나...) 8월, 우리가 파송한 중국 내 선교사들이 공안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새로운 파송 선교사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가 들어가라’는 응답을 주셨다. 고민이 되었다. 그때 내게는 7년 만에 겨우 얻은 이란성쌍둥이 아들·딸이 있었다. 겨우 여섯 살이었다. 주저하다가 결국 아들은 친부모님께 맡기고, 딸만 데리고 중국으로 아내와 함께 들어갔다. 거기서 수많은 탈북 여성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했다.
나와 함께 성경을 공부했던 탈북민 할머니 한 분은, 한국에 간 딸에게 손녀를 데려다 주기 위해 손녀를 업고 탈북했으나, 탈북 후 긴장이 풀려 뇌출혈로 쓰러진 뒤 3개월 동안 그 손녀 딸과 우리 부부가 함께 절실하게 기도하는 가운데 온전히 회복되는 환상을 보았는데, 그 후에 그 할머니는 실제로 회복되었다. 완전히 다른 생생한 모습이 된 분을 한국에 모시고 왔는데 2016년 가을이었고 우연히 3만 번째 탈북자가 되어 큰 환영을 받았다. 손녀와 한국에 와 있던 딸과 만나 잘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으로 양육하며 구출하는 사역을 했다.
탈북민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가지만, 어떤 사람은 미국·캐나다 등지로 갔는데, 이를 위해서는 라오스를 거쳐 UN 국제 난민수용소가 있는 태국으로 가야 했다. 그들을 중국은 밀입국자로 취급해서 공안에 잡히면 북한으로 소환되어야 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했다. 때로 이들을 복음으로 양육한 이후에는 버스·택시·오토바이·기차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태국까지 이동시키는 일을 했다.
고후 5:17 말씀처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는 수많은 탈북민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상처가 복음으로 회복되는 은혜의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이 컸다. 이렇게 1,450명이 통일소망선교회를 통해 구출된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중국 공안에 체포되다
2017년에 우리가 구출하여 잘 양육하고 있던 8명이 브로커와 함께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한국과 중국의 사드 문제로 관계가 악화돼 공안의 단속이 심해졌다.) 본부에서 위험하니 중국에서 빨리 나와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뒤따라 중국에 들어왔던 아들을 포함한 가족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긴급 피신하기 위해 칭다오(청도) 공항으로 갔지만, 결국 출국 전에 공안에게 체포되었다.
온갖 협박과 욕설을 들으며 취조를 당했으나 다른 형제/자매를 보호하기 위해 '팅부동(听不懂. 난 모른다)'만 외쳤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손도 움직이지 못하게 묶인 채로 철 의자에 앉혀져서 공안 책임자에게 조사를 받았는데 '한국 목사가 왜 중국에 들어와서 그런 중대범죄를 저지르느냐?'고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나를 다그쳤다. 나는 그때까지와는 다르게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또 통역관의 도움을 받아, 큰소리로 북한 탈북자들의 비참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따져 물었다.
‘우리 많은 탈북 형제·자매들이 고통받는 이유를 당신은 아는가?’, ‘가족들이 북한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어 중국에 돈 벌러 온 탈북민 수천 명의 아픔을 아는가?’, ‘여성들은 인신매매, 남성들은 임금착취를 당하며 일하고 있는데, 그 아픔을 아는가?’, ‘그들이 북송되면 북한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아는가’”라고 했다.
실제 탈북 후에 북한으로 소환된 후에 감옥에서 영양실조로 고생하다가 머리핀과 이빨로 동맥을 끊어 자살 시도를 했으나 죽지도 못했던 자매가 있었다. 또 40대 중반에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북한으로 끌려가 3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은 감옥 안에 있던 시체들의 구더기를 집어 먹고 살아난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한국에 와서 잘 지내고 있음)
그렇게 따져 묻자 그 공안 책임자는 한국말로 ‘나도 북한 사람, 불쌍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칭다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단둥에서 살 때 조선족 중학교를 다니며 한국어를 배웠던 사람이었는데, 오랜 시간 이야기 끝에 자기도 북한 사람들이 불쌍하니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는 내 부탁 대로 가족 비행기표를 사는 등, 체포되었던 내 가족을 도와 일주일 만에 한국으로 먼저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함께 체포된 8명의 탈북자들은 이미 북중 국경으로 이송되어서 구출할 수 없다고 했다.
나도 거기로 이송되었다. 랴오닝(遼寧) 성 번시(本溪)의 ‘간수소(구치소)였다. 2017년 2월의 추운 겨울이었다.
우리가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우리 선교회의 여러 선교사님들이 중국 감옥을 경험했기에 들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직접 감옥생활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중국 감옥에서는 죄수들을 감시하기 위해 밤에도 소등하지 않는다. 환하게 불을 켜고 CCTV로 감시를 받았다. 앞사람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하루 종일 죄를 뉘우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나는 함께 잡힌 8명이 북송되지 않기를, 복음의 능력을 저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매일 기도했다.
감옥에서는 싸움도 많았고 먹는 것이 부실하니 몸은 마르고 충치 치료했던 땜질이 떨어져 잇몸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과 부딪혀 안경이 깨져서 앞을 잘 볼 수 없었고, 하루 종일 앉아만 있으니 엉덩이에는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만 화장실을 가게 되어 용변을 참다보니 변비가 왔고, 육체적으로 힘드니 시간은 더욱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한국으로 추방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 소요되었던 3개월을 참고 기다렸지만, 나는 중범자이므로 재판이 6개월 연장된다는 통지를 받았다. 내 사건은 공안에서 검찰로 넘어갔다. 중국 형법상 ‘타인의 밀출국 조직죄’로서 조직을 구성하고 밀입국을 시켰기 때문에 20년 형을 구형했다.
내 인생이 끝났다는 절망 속에 함께 잡힌 8명이 고문과 총살을 당하는 꿈을 계속 꾸게 되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영양이 부실해서 계속 몸은 야위어 갔다. 마음에 낙심이 찾아왔다. 육체는 약해지고, 사탄은 부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었다.
그때 하나님이 놀랍게도 역사하기 시작했다. 그때 고린도후서 4장 7절이 떠올랐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은 볼품없고 깨지기 쉬운 값싼 그릇인데 그것이 내 모습이었다. 내가 강한 자인 줄 알았었으나, 그때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보배되신 예수님이 계신 것도 다시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낙심하고 끝이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하나님께서 크신 위로를 부어주셨다. 밤에도 악몽이 아니라 소망의 꿈을 꾸고 감옥을 철장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목하여 바라보게 이끌어 주셨다. 이 사랑을 너무 크게 부어주셨다. 내가 당하는 고난보다 훨씬 큰 위로를 부어주셨다. 고전 1:3~5에서 바울은 '찬송하리로다'하며 외쳤다.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주셨기 때문이다. 주님이면 충분했다.
(중국에서 내가 힘썼던 탈북민 구출 사역은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마치 내가 한 것처럼 여겼던 것을 회개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절실히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이것 밖에는 답이 없었다. 하나님이 내게 ‘너는 깨어질 수밖에 없는 질그릇이다. 그러나 질그릇이 더욱 부서질 때 그 안의 보화가 더욱 찬란하게 빛이 난다’고 했다. 바울은 바다, 광야, 거짓 형제의 위험 등을 당하고, 굶고 헐벗었다. 그럼에도 답답하고, 박해를 받아도 낙심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모든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환난과 어려움이 넘치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의 환난보다 훨씬 크다. 사역에서 힘든 일을 당할지라도, 그럴수록 하나님의 위로가 넘친다. 우리의 질그릇이 더욱 깨지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보화가 우리 내면에 풍성히 빛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자 내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년을 복역하더라도 이 곳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죄수들이 복음의 대상이라는 확신이 생겨났다.
감옥 안의 찬송과 전도, 일하시는 하나님
감옥 안의 흉악범들 중에서 조폭 두목이 있었는데, 그는 키가 크고 몸무게가 그들 표현으로 240근이나 나가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의 부하들에게 끌려 나갔는데 내게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부르라고 했다. 가사를 모른다고 하니 다른 노래라도 부르라고 해서, 박수를 치며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났소'하는 실로암 노래를 끝까지 불렀더니 앙코르도 받았다. 그다음부터 '나의 등 뒤에서'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됨은' '손을 높이 들고 주를 찬양'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찬송가를 불렀다. (성령의 감동으로) 죄수들의 반응이 좋았다. 매일 새로운 특송을 고민했다. 그 조폭 두목에게 한국말도 가르쳐 주면서 그와 친해지니 감옥 생활이 편해지고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도 얻었으며, 반면에 나는 그에게 욕이 섞인 중국어도 많이 배웠다.^^
성경을 읽고 싶은 갈급함이 있었지만 재판을 받지 않은 미결수였기에 성경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 찬송을 통해 내게 우호적이었던 어느 간수의 도움으로 신약만 있는 성경책을 겨우 받았다. 내 입에 꿀보다 더 단 말씀의 은혜를 그때 경험했다. 밤새 불 켜놓은 것이 너무 감사했다. 성경을 읽을 수 있기에....
생각이 바뀌니 감옥 생활이 너무 바빠졌고, 바빠지니까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1년 만에 재판을 받았는데 20년 구형이 15년으로, 또 8 년으로 감형되다가 최종적으로 2년 6개월 형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시고 구명 활동도 해주신 것을 나중에 들어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기쁜 소식도 있었다. 8명 중의 한 자매가 임신 초기에 체포되었었는데 감옥에서 아기를 낳았고, 추가로 체포된 탈북자들이 더해져 모두 20명이 되었는데, 나와 공범이어서 바로 북송되지 않고 대기하고 있던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생겼고, 북송당하면 생명이 위태로우니 그들을 한국으로 보내주자는 이야기가 중국 측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칭다오에서 만났던 공안 책임자가 찾아와 전해주었다.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 후 나는 8시간씩 노동을 하는 곳으로 이감되었다. 4개월 정도 복역하였을 때 한국에 있던 아내와 통화연결이 되었는데, 그 20명 모두 한국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를 체포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섭리 가운데 선을 이루신 것을 감사했다. 내가 빨리 감옥에서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감옥에서 복음을 꼭 들어야 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재판으로 인해 늦어질수록 공안들의 마음에 탈북민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셔서 결국 이들이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었다. 우리의 믿음을 더 성장하게 되었고, 고난이 유익이 되었다.
만기 출소, 자유 그리고 다시 사역
그렇게 나머지 감옥 생활도 은혜 가운데 잘 지내고 만기 출소했다. 국내에서 석방 운동과 외무부 탄원이 있었지만 단 하루도 감형되지 않고 만기를 다 채우고 출소했다. 출소하니 자유가 너무 좋아서 여러 곳을 다녔고, 너무 많이 걷다 보니 다리 근육이 파열되기도 했다. 특별히 감옥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북송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도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낀다며 고난이 유익이 되었다는 재소자 청년의 간증도 들었다.
우리는 질그릇과도 같지만 우리 안에는 보배되신 예수님이 계셔서 놀랍게 역사하시는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박해를 받을수록 그리스도의 은혜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던 오뚝이가 일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오뚝이 속의 추가 떨어진 경우다. 다시 추를 제자리에 고정해야 다시 일어선다. 우리 안의 추(錘)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근래에 특히 코로나로 인해 북한 선교가 매우 어렵다. 탈북 후에 중국 감옥에 있는 사람만 1000여 명이 있다. 중국에 나와 있는 탈북여성들이 대략 10만 명이 된다고 한다. 한국에 오지 않고 중국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복음 사역이 필요하다. 현지에 팀장을 세우고 우리는 온라인 사역을 하는데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그 자녀들은 북한 땅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자원자들도 많다.
열방샘교회도 탈북민들의 교회다. 그들의 친구가 되어달라. 그들은 통일의 마중물이다. 우리 통일선교회의 많은 분들이 감옥에 다녀왔지만 병환 속에서도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사역 중에 중국 땅에서 갇힌 사람도 많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달라.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되신 예수를 더욱 바라보고, 주님과의 사귐 가운데 날마다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복음통일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김은호 목사님의 정리 기도
-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면, 우리는 선교적/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 제3국에서 유리하는 탈북민들이 북송되지 않도록 기도하자.
- 대한민국 내에 있는 34,000여 명의 탈북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으로 거듭나서 복음통일의 마중물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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