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신 쏘니 카세트 라디오 @ 1978
초등학교 교감으로서 여러 연구활동을 활발히 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인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여러 시청각 미디어 기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환등기를 가져오셔서 마당에서 흰색 창고 벽을 스크린 삼아 여러 사진을 보여주시기도 하셨고, 때로는 영사기를 가져오셔서 영화를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코디언 박스만 한 릴 테이프 녹음기를 가져오셔서 녹음 소리를 자녀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부터는 카세트테이프 레코더가 등장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집안에 한 대 밖에 없는 카세트 라디오를 가지고 교육방송을 녹음했다가 다시 듣기 위해서는 누이들과 일정을 잘 조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제 전용 카세트라디오를 사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미 아버지는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셨지만 육 남매가 대학에서부터 초등학교까지 학비가 가장 많이 들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지출 계획으로는 어렵고 아마도 작은 '계'라도 순번이 되어야 큰 마음먹고 사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약속만 믿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약속을 하신 날부터, 저는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날이면 날마다 괜히 어머니 곁을 맴돌았나 봅니다. 저는 감히 어머님께 졸라대는 말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그 모습을 안타까워하시던 어머니는 어디에서 돈을 융통하셨는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시내에 있는 '화신 쏘니' 대리점으로 저를 데리고 가셨고, 당시 최첨단이던 '원 터치 녹음방식'의 카세트 라디오(모델명 CF-302WK)를 사주셨습니다. 당시의 국산 제품들은 검은색에 맥없이 덩치만 크고 녹음을 하기 위해서는 플레이 버튼과 녹음 버튼을 모두 동시에 눌러야 해서 불편하고 녹음마다 '삑-'하는 잡음이 끼던 시절에, 일본 쏘니의 부품을 가져다가 조립만 한국에서 했다는 '화신 쏘니'는 콤팩트한 사이즈에 원터치 녹음이었고 그레이 색 외장재도 멋있고 음질도 좋았습니다. 카세트 데크 속의 주황색 사각형도 너무 세련되었습니다. 마음이 행복해 날아오를 것 같았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작은 아들은 한 번 입에 담은 말은 곧바로 실행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여서....' 그 말씀은 그 후로도 여러 번 말씀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직성이 풀리다
'직성이 풀리다'는 '바라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져 마음이 흡족하고 편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 때 직성은 한자로 直星이라고 씁니다. 직성은 사람의 나이에 따라 운명을 맡아본다는 별입니다. 9개의 직성들이 있는데, 토성, 수성, 금성, 해, 화성, 달, 목성 등 7개 직성은 알겠는데, 제웅직성과 계도직성은 낯설어 찾아보았습니다.
제웅직성은 흉한 직성으로 아홉 해에 한 번씩 돌아오는데 '제웅'은 한자어가 아닙니다. 나후직성(羅睺直星)이라고도 하는 이 별은 어느 별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계도직성(計都直星)도 흉한 직성으로 어느 별에서 이름이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직성이 풀린다는 표현은 무속에서 그 해의 직성에 따라 적절한 '직성 풀이'를 하는 것에서 온 것 같습니다. 길한 직성은 맞이하고 흉한 직성은 쫓아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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