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고향 익산과 친가, 외가에 대한 글을 여러 개 블로그에 남겼습니다.
제 어린 시절과 고향을 생각해보면 '수리조합'이나 '대수로 공사' 황등제 등 저수지의 매립, 동진강 간석지의 간척 사업 등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졌던 대규모 토목공사가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 배경에 대해 조금 더 정리합니다.
호남평야는 일제 수탈의 가장 핵심기지였는데, 김제 평야의 유명한 저수지인 벽골제는 당시 이미 매몰되어 제 기능을 상실했고, 호남평야는 가뭄과 홍수의 영향에 따라 미곡의 산출량이 크게 요동을 쳤습니다. 이에 일본인 대지주들은 수리관개 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특히 1924년에 우리나라는 큰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는데, 수리관개 시설이 좋은 지역은 오히려 풍작을 거두게 되어 옥구, 익옥 (임옥, 임익 두 곳이 합병된 이름. 이리시에 사무소) 및 동진 등의 수리조합이 결성되고 대규모 수리관개 사업이 진행된 것입니다.
부담은 한국인 소작인에게, 혜택은 일본인 대지주에게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수리조합들이 일제가 조선 농민들을 지배하고 수탈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1920년대와 30년대에 '수리조합 반대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식민지 지주제를 확립하고, 2차에 걸친 산미 증식 계획을 통해 일본의 선진 공업화를 위한 식량기지로 한국을 만들기 위한 작업들이었습니다. 대지주를 위한 각종 혜택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기에 한국의 중소 자작농이나 자소작농들은 과다한 공사비와 수세(水稅)의 부담만 가중되었고 소작료가 인상되는 결과를 가져왔기에 저항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특히 기존의 수원지라든지 물대기가 매우 좋았던 양답(良畓)들이 토지 수용령 등을 통해 피해를 입고, 일본 대지주들의 땅이 혜택의 중심에 서게 되는 공사들이 이루어졌기에 저항 운동이 불가피했습니다.
이 모든 대규모 사업의 중심에는 익옥 수리조합이 있었습니다.
완주군의 동쪽 높은 산지에 경천 저수지, 대아리 저수지를 만들고 그 물을 대기 위한 대수로 공사를 하고 하류에도 대규모 저수지를 조성합니다.
동진강 수역은 안정된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섬진강 상류인 정읍군 산내면과 임실군 강진을 잇는 길이 262m, 높이 33m의 댐을 건설하고, 왕자산과 성왕산을 뚫어 물길을 동진강 상류로 돌리는 공사를 했습니다. 운암 발전소에서 방류한 물이 동진강 물길을 따라 광활면의 갯들까지 공급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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