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에서 새롭게 깨달은 내 생각들... right or wrong...
1. 노동이 인간 타락의 징벌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노동은 인간의 타락 이전부터 있었다. 창세기 2:15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부여하신 인간의 본래 역할 중의 하나가 바로 '경작'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노동의 신성함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노동의 목적이 바뀌게 된 것이다. 창세기 3:17절과 19절을 보면, 인간은 타락 후 이제 수고하여 땀을 흘려야 그 소산을 먹게 된다. 즉, 노동이 생계의 방편이 되어버린 것이다.
2. 교회 안과 밖이 결코 다르지 않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또 23절에서는 무슨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때 '무엇을 하든지'는 교회 안에서의 종교적 행위 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사회/가정 생활에서의 그 어떤 일에 있어서도 주께 하든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 안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大使)다.
예수님은 70인을 그냥 곳곳에 보낸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친히 가시기' 전에 둘씩 짝을 지어 보낸 것이었다. 우리 가정에 나를 보내신 것은, 우리 회사에 나를 보내신 것은, 예수께서 친히 오시기 전에 미리 준비하도록 보내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4. 나는 죄악의 순간의 짜릿함을 위하여 거룩함의 영원한 즐거움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경에서도 강제성폭행하는 장면이 간혹 나온다. 대표적인 경우가 압살롬 반역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암논의 이복동생 다말 강간 사건이다. 그는 동생을 범한 후에 뜨거운 사모함이 미움으로 급변해버린다.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더욱 짜릿한 욕망이 마침내 분출된 후에는, 5초도 못되어 많은 남자들은 깊은 후회와 공허함을 경험하곤 한다. 그리고 그 짜릿함과 맞바꿔 버린, 잃어버린 안정과 성결함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 관계의 상대자가 가만히 있는 자신을 유혹했다고 생각하고 겉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와 무관하게 그를 미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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