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에는 니므롯(Nimrod)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홍수 시대를 거친 노아의 아들 '함'의 장남인 '구스'의 아들인데요, 성경에서는 이 사람을 인류 최초의 영웅이요 뛰어난 사냥꾼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고대 메소보다미아(Mesopotamia. 메소스-중간의, 포타모스-강, 두 단어의 합성어로서 티그리스와 유브라데 강 사이 지역. 처음에는 북부 앗시리아를 가리키다가 남쪽으로 바빌로니아 지역까지 확대됨)의 중요 도시들 특히 바벨, 니느웨(니네베) 등을 건설했습니다.(기원전 4000년 또는 3000년경)
바벨론
가장 오래된 도시였던 바벨을 거점으로 기원전 2000년경에 생겨난 고대 바벨론은 400년가량 지속되다가 기원전 1600년경에 헷 족속(히타이트 Hittites)에 멸망했습니다. 이때 함무라비(Hammurabi) 법전도 만들어졌습니다.
그 후 기원전 1100년 경에 느부갓네살 1세가 중기 바벨론 시대를 열었으나 앗수르의 영향권 아래 있다가 기원전 690년경에 신앗수르 제국의 산헤립(Sennacherib)에 의해 전멸되었습니다.
앗수르 (앗시리아)
강력한 철기를 바탕으로 제국을 이룬 앗수르는 기원전 850년경에 아합 왕을 공격하고 예후의 조공을 받기도 합니다. 잠시 쇠퇴하다가 기원전 745년경에 디글랏 빌레셀 3세 (성경의 '앗수르 왕 불')의 즉위로 전성기를 열어 북이스라엘 왕 므나헴, 베가를 침공하고 포로를 잡아갑니다. 북이스라엘왕 호세아가 앗수르에 등을 돌리고 애굽에 조공을 바치게 되면서 살만에셀 5세의 공격을 받게 되고, 그즈음 새 왕이 된 사르곤 2세가 마침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은 기원전 721년이며, 그 후 강제 이주와 통혼 정책에 의해 이스라엘 혈통과 종교적 전통은 말살되었습니다. 그 직전 여로보암 2세의 41년 통치 기간 동안에 반짝 부흥이 있었으나 그 번영이 오히려 망국병이 되어간 것은 기억할만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파송하신 것은 기원전 760년경으로 북이스라엘 멸망 전입니다. 니느웨가 내륙 티그리스 강가에 있는 반면 달아나려 했던 다시스는 스페인 남부 해안으로서 내륙인 니느웨와는 전혀 반대인 곳이며 지중해 바다 건너 수천 km 떨어진 곳입니다. 요나서에서 니느웨가 삼일 길이라고 한 것은 해안가에서 니느웨까지의 소요 시간이 아니라 니느웨 성읍 자체를 도보로 한 바퀴 도는 데만 3일이나 걸릴 만큼 큰 도시였다는 뜻입니다.)
사르곤 2세의 아들인 산헤립(BC 704~681)은 니느웨를 수도로 삼은 후 애굽을 공격하고 남유다의 히스기야에게 조공을 강요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갑자기 귀국한 후 그 아들에게 암살당합니다. 그 아들 에살핫돈은 남유다 므낫세 등을 강요하여 앗수르 신에게 영원히 맹세하도록 하는 조약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혼란을 겪고 쇠퇴하다가 나훔과 스바냐 선지자의 예언대로 느부갓네살의 아버지인 나보폴라살에게 멸망당합니다.
신 바빌로니아
나보폴라살(Nabopolassar. BC 625~605)의 민중 봉기로 바벨론이 앗수르에서 독립했는데 (제 1대 왕), 그 아들이 바로 느부갓네살 (2세)왕이며 (제 2대 왕) 이를 新바빌로니아라고 합니다. 느부갓네살 (네부카드네자르, Nebuchadnezzar. BC 605~562)은 남유다를 멸망시키고 기원전 605년에 첫 이스라엘 포로를 바벨론으로 끌고 간 이후 기원전 597년과 586년까지 3차례에 걸쳐 포로를 끌고 갑니다.
페르시아
그다음 왕인 벨사살(Belshazzar) 기원전 539년에 바사(페르시아 Persia. 오늘의 이란-'아리안 족의 땅'이란 뜻의 고원지역)의 고레스(Cyrus 2세. BC 559~530)에 의해 바벨론은 멸망당했습니다. 바벨론은 성경에서 유다에게는 큰 영향을 주었지만 제국 자체는 100년을 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고레스 왕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모든 민족들의 본토 귀환을 지시하여 유다 백성의 첫 귀환도 기원전 537년에 이루어집니다. 이때 스룹바벨(Zerubbabel-바벨론 출생이란 뜻. 유다 왕 여호야긴의 손자로 왕위 계승자)을 예루살렘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고레스 왕은 다니엘과 같은 피정복민들도 실력에 따라 관직에 기용할 정도의 관대한 정책을 펴서 페르시아 제국의 토대를 단단히 쌓은 왕입니다.
기원전 522년경에 고레스 왕의 아들인 캄비세스가 전쟁 길에서 죽은 후 다리오(Darius)가 그 후계자로서 왕이 되었는데,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 훼방을 받을 때 고레스의 칙령을 재확인하고 성전 재건 지속을 허락했습니다. 여러 황금기를 구가했으나 기원전 490년경 그리스(헬라)와의 마라톤 전투에서 패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아들인 크세르크세스(Xerxes. BC 486~464)는 성경 에스라서와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왕입니다. 폭정을 일삼다가 그리스 원정에서 실패하여 소아시아 대부분 영토를 빼앗기고 살해당합니다.
그 아들 (에스더의 양자) 아닥사스다(Artaxerxes. BC 464~424)는 '롱기마누스'라고도 부르는데 그리스와 우호 조약을 맺고 기원전 458년에 2차(에스라 -에스라는 역대기 상/하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444년에 3차 (느헤미야) 남유다 포로 귀환을 통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지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후 제국이 분열되다가 기원전 336년 다리우스 3세가 즉위한 후 기원전 334년 동방 원정길에 오른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하고 부하에게 암살당함으로써 페르시아는 멸망합니다.
선지자들
학개, 스가랴는 기원전 500년 경에 활동한 선지자들입니다.
학개 선지자가 포로기 이후 기원전 520년에 가장 먼저 활동한 선지자인데 스룹바벨 이후 14년 동안 중단되었던 성전 재건 사업을 독려하고, 성전을 통해 유대 민족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격려하는 선지서를 썼습니다.
스가랴는 성전 재건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환상과 예언, 상징을 통해 묘사하였습니다. 건물로서의 성전 재건이 아니라 성전이신 메시아와 그분의 강림에 대한 예언까지 발전시켰습니다.
사마리아
사마리아는 남쪽으로 유대, 북쪽으로는 갈릴리, 동쪽으로는 요단 강과 경계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피해 우회하지 않고 사마리아 수가 성의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러 일부러 들리신 것입니다.
기원전 720년에 앗수르에 멸망당한 후 신 바빌로니아의 통치를 거쳐, 페르시아가 통치했고, 알렉산더 이후에는 '마케도니아 왕국'에 속해서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마카베오 전쟁 이후 기원전 113년에 유대인의 마지막 독립 왕조로 건설된 하스몬 왕조(BC 142~63. 79년간 유지됨. 모압, 암몬, 에돔 등도 복속시켜 유대인화 시킴. 헤롯의 가문도 개종한 에돔인)가 사마리아를 침공해서 유대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 에돔/모압 등이 모두 유대인에 동화된 반면 사마리아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오히려 충돌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현재도 유대인과는 별개의 독립된 민족집단으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과 가장 혈연적으로 가깝습니다.(언어적으로는 아랍인으로 분류됩니다. 즉 역사적으로 점점 아랍화된 사람들입니다.)
블레셋 Philistine
블레셋은 '외국인, 나그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과 아랍이 모두 셈족 계열이었던 반면 블레셋은 함의 자손으로서 일찍이 지중해의 크레타(그레데, Caphtor)에서 팔레스타인 서남 해안지역의 비옥한 땅에 정착한 이방 민족입니다. 아브라함보다도 먼저 가나안에 이주하여 정착했고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도 이들의 전투력으로 인해 정복하지 못한 듯합니다.) 사사 시대에 이미 블레셋은 철기 문화를 받아들여 이스라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다윗의 통일 왕국 이후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당한 후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Palestine'이란 말은 '블레셋의 땅'이란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반란에 분노한 로마 황제에 의해 이스라엘 지역의 이름이 유대에서 팔레스티나로 바뀌게 된 이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다 포로 (바벨론 유수) 및 귀환 과 헬레니즘 시대에서 로마까지의 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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