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체인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 명확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for 지속적 혁신
- 남과 다른 차별화된 전략이 있어야 한다.
- 성경에는 게임 체인저가 매우 많은데, 그 최고는 예수님이시다
-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이야 말로 가장 혁신적이다. 우리가 믿는 복음이다.
- 예수님의 혁신적 발걸음은 넓은 길 대신 좁은 길로, 높고 빛나는 자리가 아니라 낮고 천한 십자가로 가셨다.
- 우리도 고난 주간 동안 십자가를 묵상하며 예수님과 더불어 변화를 일으키는 게임 체인저가 되자
- 헌금의 가치가 변질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인정하신 게임 체인저는 가난한 과부였다.
- 오늘 제3일(화요일)의 헌금 관련 내용은, 예수님의 대중을 향한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더욱 간절하고 직설적이었다.
- 막 12:41 성전 뜰에서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이 헌금함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 성전에는 총 13개의 헌금함이 있었는데 그 모양이 나팔처럼 생겼다. 당시는 지폐가 아니라 동전이었으므로 헌금을 하면 그 소리가 주변에 잘 퍼지게 했다. 또 헌금함 앞에는 제사장이 있어 즉시 계수를 해서 공표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헌금함의 소리가 믿음의 지표로서 널리 쉽게 주변에 알려지는 구조였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 헌금에 변질이 일어나게 되었다.
- 헌금의 본질적 고유가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이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
- 헌금의 양적 소유가치로 변질함. 숫자놀음과 헌금 액수의 경쟁으로 치닫게 했다.
- 막 12:42 예수님의 시선은 '한 가난한 과부'에게 향한다.
- 경제적으로 가난했고, 사회적 신분은 약자인 과부였다.
-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 : 두 렙돈은 일용직 노동자 일당인 한 데나리온의 1/128이었다. 오늘날 13만원으로 노동자 평균 일당을 생각한다면 이 헌금은 1천원 정도에 불과했다.
-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전부였다. 예수님의 눈에는 그녀의 '거룩함이 거대함을 이겼다.'
- 게임 팔로워 vs. 게임 체인저
- 요즘 우리의 신앙 생활은 하나님께 받는 것만 생각하며 간구할 뿐, 하나님께 드릴 때는 망설이고 일부만 계산적으로 드린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이 세상의 또 하나의 게임 팔로워가 되고 있다.
- (헌금을 드리는 것은, 돈과 물질이 경배의 대상이 되어 버린 이 세상에서 내 삶의 주인이 돈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헌금의 액수가 아니라 우리의 온 마음을 담아 온전한 헌신을 약속하며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다.)
- 빌 2:6~8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셨고 비우셨다
- 내가 아무리 작고 초라해도 우리를 주님께 내어 드림으로 게임 체인저가 되자
- 우리의 두 렙돈은 무엇일까? 우리의 전부를 주님께 드리자. 초라하든 부족하든, 우리의 전부를 드리자.
- 요즘 우리의 신앙 생활은 하나님께 받는 것만 생각하며 간구할 뿐, 하나님께 드릴 때는 망설이고 일부만 계산적으로 드린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이 세상의 또 하나의 게임 팔로워가 되고 있다.
- 이 시대의 게임 체인저 : Chick-fil-A
- 공개적 동성결혼 반대 이후 불매운동으로 경영위기를 겪었다.
- 아칸소 주지사의 8월1일 감사의 날 지정으로, 지지자들의 매출 운동이 시작되어 반전을 이루었다.
- 아틀란트 본사의 앞마당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과 십자가의 동상이 있다.
- 고난주간 Passion week
- passion : 고난 vs. 열정(열심)
- 하나님의 열심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가 존재한다. 고난주간 동안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열심을 묵상하고 이 시대의 게임 체인저가 되는 결단을 하자.
- 기도
- 거대함을 추구하는 이 세상을 우리의 거룩함으로 변화시키게 하소서.
- 오륜교회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소서. 기도로 하나님을 대면함으로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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