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라모트 '용서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쥐약을 마시고 쥐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결국 가해자인 상대가 아니라 피해자인 자신을 해치는 일이다.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노예로 팔렸던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된 후 형들과 화해하는 내용이 창세기 45장에 나온다.
요셉이 은잔을 빌미로 베냐민을 종으로 삼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 야곱의 상심을 염려한 형 유다가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자청하는 모습에 요셉의 마음 속의 묵은 상처가 완전히 치유된다. 그를 오랫동안 괴롭혀 왔던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아물고 그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자신을 '애굽에 팔린 자'로 소개한 요셉은 형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것은 이스라엘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니 금심하거나 한탄하지 말라고 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경험한 비극을 신앙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의 죄가 하나님의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동생을 죽이려 하고 노예로 팔아넘긴 그 소행은 매우 악한 일이었으나, 하나님은 그 악함을 이용해서 선한 뜻과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만일 형들이 악한 마음으로 요셉을 팔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이스라엘 생명 구원 계획은 무산되었을까? 아마도 형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누구도 상처 받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시고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셨을 것이다.
기독교인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의 뜻을 통해 바라보고 해석하고 재구성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두려워 떨던 형들이 요셉과 말하기 시작한 것은, 요셉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가 형들과 입맞추며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난 후였다. 진정한 용서와 눈물이 전달된 후에 비로소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용서는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화해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일이 된다. 용서는 가해자의 회개 없이도 피해자가 홀로 할 수 있겠으나, 화해는 가해자의 진실된 회개와 뉘우침, 그리고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루겠다는 진정성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영화 밀양에서의 유괴범 학원 원장은 화해 없이 용서받았다고 믿어버렸으나,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누가 용서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이 자기의 비극을 재구성할 수 있기에 용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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