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최고봉 - 낭송 유튜브
연기자 신애라 님이 유튜브 방송한 것을 극동방송에서 들려준 것을 운전 중에 우연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감동이 되어서 찾아보았습니다. Oswald Chambers의 'My utmost for His Height (주님은 나의 최고봉)'은 1년 365일을 위한 묵상집인데, 그 내용을 읽고 묵상하는 유튜버들이 여러분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님, 라엘, 신애라, Voice Ministry 등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특히 중세를 통해 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성령의 사역에 관심이 있는 성도로서, 여러 체험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체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서 각각 매우 다양한 형태와 정도로 '결과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일 뿐, 체험 자체가 간구할 것은 못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방해하는 적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경험하게 되는 체험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구속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믿고 영접하도록 기도하고 묵상합시다. 체험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주님보다 체험을 더 좋아합니까? 구속 체험 vs. 구속 실체 (예수님)
제가 감동을 받은 묵상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의 12월 21일 내용 '주님보다 체험을 더 좋아합니까?'입니다.
성경 본문은 고린도전서 2:12입니다.
We have received…
the Spirit who is from God, that we might know the things that have been freely given to us by God.
우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freely) 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My experience is not what makes redemption real— redemption is reality.
체험은 구속을 실체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속 자체가 실체입니다.
Redemption has no real meaning for me until it is worked out through my conscious life.
구속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구속을 내 의식적인 삶 속에서 받아들여 내 삶 속에서 그 구속이 실제 효과를 나타낼 때까지는요.
When I am born again, the Spirit of God takes me beyond myself and my experiences, and identifies me with Jesus Christ.
중생을 할 때 (거듭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우리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들어 올리셔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나 경험과는 무관하게) 우리를 예수님 그리스도와 동일하다고 간주하고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내 공로나 선함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근거하고 있으니까요.)
If I am left only with my personal experiences, I am left with something not produced by redemption.
우리가 만일 여전히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에 애착을 갖고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구속/구원과는 무관한 것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But experiences produced by redemption prove themselves by leading me beyond myself, to the point of no longer paying any attention to experiences as the basis of reality.
우리가 거듭날 때 구속의 체험을 하는데, 그 체험은 (자기 자랑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주인이 되지 않고), 더 이상 체험을 실체의 근거로 생각하지 않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Instead, I see that only the reality itself produced the experiences. My experiences are not worth anything unless they keep me at the Source of truth— Jesus Christ.
(체험이 실체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실체 자체가 체험을 만들어 줍니다. 자기의 체험은 오직 진리의 근원이신 예수님(실체)께 자신을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체험은 우리의 구속의 표현일 뿐입니다.)
영적 체험 vs. 역사적 예수님
If you try to hold back the Holy Spirit within you, with the desire of producing more inner spiritual experiences, you will find that He will break the hold and take you again to the historic Christ.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 하시는 것은 맞지만) 더 많은 내면의 영적 체험을 하고 싶어서 성령을 (자신의 체험에) 가두려 한다면 (당신이 자기 자신의 신비로운 체험 안에만 머무르려 한다면), 성령께서는 그 구속을 깨뜨리시고 당신을 다시금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Never support an experience which does not have God as its Source and faith in God as its result.
하나님이 근원이 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굳세지는 것과 관계가 없는 체험은 절대 옹호하지 마십시오.
If you do, your experience is anti-Christian, no matter what visions or insights you may have had.
하나님께 온 것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세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굉장한) 어떤 환상이나 통찰이라도 적그리스도적입니다. 기독교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삼층천 하늘을 보고 온 바울이 얼마나 조심했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Is Jesus Christ Lord of your experiences, or do you place your experiences above Him? Is any experience dearer to you than your Lord?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체험의 주인이십니까? 아니면 당신의 체험을 예수님 위에 놓고 예수님을 대치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보다 체험이 더 소중하지는 않습니까?
You must allow Him to be Lord over you, and pay no attention to any experience over which He is not Lord.
예수님이 당신의 주인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체험에도 관심을 두지 마십시오.
Then there will come a time when God will make you impatient with your own experience, and you can truthfully say, “I do not care what I experience— I am sure of Him!”
그러면 당신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에 당신은 신실하게 얘기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어떤 체험을 하느냐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죠.'
체험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Be relentless and hard on yourself if you are in the habit of talking about the experiences you have had.
늘 당신의 체험에 대해서 얘기하나요?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잔인할 정도로 엄격해져야 합니다.
Faith based on experience is not faith; faith based on God’s revealed truth is the only faith there is.
체험에 근거한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 자체를 확신하는 믿음은 이미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예수님)에 근거한 믿음만이 참 믿음입니다.
We are not to preach the doing of good things; good deeds are not to be preached, they are to be performed.
선한 일을 하라고 설교하지 맙시다. 선한 행동은 설교할 내용이 아닙니다. 실행해야 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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