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은 출애굽 이후 가나안 진격을 처음 앞두었을 때, 그리고 불신앙의 결과로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이기 전, 12명의 정탐군들 중의 하나로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던 때에 이미 헤브론의 산지를 비전으로 품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보고 듣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내 비전을 품게 된다.
일단 비전을 품었다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그 비전에 대한 확신을 우리가 갖기를 원하신다. 선포되는 말씀으로, 또는 우리 인생 속에서 누군가를 '결정적으로' 만나게 하시거나, 또는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통해서, 또는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과 상황을 통해서 우리에게 비전을 확신하게 하신다.
갈렙의 경우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그의 비전을 확신하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10명의 정탐군들의 악평과 그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보면서, 그 산지를 정복하여 기업으로 삼겠다는 비전을 품었으며, 모세의 말을 통해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살아야 한다. 비전이 분명해야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따라,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1] 왜 이 산지를 비전으로 삼았는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헤브론의 산지는 험지이고 요새가 많아서 정복하기 어렵고 거인족인 아낙 자손이 살고 있었고 그 성읍들은 견고했지만,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그들을 쫓아내리라고 한다.(12절)
'이 땅'이 아니라 '이 산지'라고 표현한다. 즉, 땅을 소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아낙자손이 거주하고 있고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있는 '산지'를 정복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곳을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하나님이 약속에 신실하심'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크고 견고한 성읍이어서 정복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었다. 가나안의 완전한 정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복해야 할 곳이었다.
이것이 비전과 야망의 차이다. 야망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 전능하심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인생의 나이를 초월한다. 갈렙이 비전을 품은 것은 40세 때의 일이다. 그리고 45년이 지나 85세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강건하였다'. 기력이 쇠하거나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수 14:10,11)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수 14:12상)
후에 실제 헤브론 산지를 정복할 때, 갈렙은 지휘만 하고 옷니엘을 통해서 그 땅을 정복했다. 그의 육체보다는 그의 마음이 젊고 강건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젊고 열정이 있다.
100세의 김형석 교수 (연세대)를 생각해보자. '65~75세까지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했다. 아브라함도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모세도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3] 갈렙도 40세에 비전을 받고 85세가 되었으나 한 번도 그 꿈을 잃은 적이 없었다.
인생의 나이를 탓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잃지 말자. 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정복되고 있다.
갈렙은 인생의 나이를 따라 살지 않고 비전을 따라 일하고 살았다. 모든 성도들이 비전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조지 휘필드 '하나님의 사람은 녹이 슬어 없어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닳아 없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비전의 사람이 가져야 할 믿음
하나님이 주신 비전도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다. 비전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비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4] 첫 번째 믿음은,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 신앙'이다.
(수 14:14)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5]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
'뒤를 가득히 채우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간격도, 틈새도 생기지 않도록 가득히 채웠다는 뜻이다. 내 마음 속에 어떤 부정적인 생각도 들어오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웠다.
사탄은 언제나 틈새전략을 취한다. 틈이 생기면 사탄이 들어온다. 그러나 갈렙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비전으로 가득차 있었다.
(민 14:24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여기서 그들은 가나안을 악평했던 10명의 정탐군들과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마음이 달랐다'는 것은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들은 그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 그러나 갈렙은 '행동으로' 그 약속을 믿고 따랐던 것이다. (민 14:8)
갈렙의 믿음은 머릿속으로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믿고 따른 것이다. 그것이 '온전히 좇다'의 의미다. 초강력 접착제처럼 하나님께 딱 붙어서 따른 것이다.
나이가 들고 오랜 전쟁과 광야 생활 속에서 지칠 수도 있었으나 그는 결코 지치지 않았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약속을 기다려 왔는가? (너무 조급한 것 아닌가?)
한 때 신앙적이었던 사람들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질되는 것을 많이 본다. 솔로몬, 요하스, 웃시야 등 이스라엘 왕들의 말년이 초기와는 매우 달랐다. 그러나 갈렙은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6] 두 번째 믿음은, '임마누엘의 신앙'이다.
'수 14:12하.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은 비전만 가지고 도전하지 않았다.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지고 도전했다.
비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지고 도전했다.
[7] 우리에게도 정복해야 할 산지가 있다. 우리가 달려가야 할 인생의 푯대며, 사명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후, 생육하고 번성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복 주셨다.
이 세상에 정복당하지 않고 이 세상을 정복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과 사명이다. 그리고 그 산지가 아직 남아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비전을 붙들고,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면 정복할 것이다.
우리도 갈렙처럼 비전의 사람이 되어 도전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하자.
[찬양] 주님이 주신 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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