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날 아침에 예수님을 사랑했던 몇 여인들이 찾아갔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끝까지 사랑했기에 안식일이 끝나자) 무덤을 보려고 갔다.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마 28:2)
예수님 생애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천사들이 나타났다. 예수님의 탄생 전후에도,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겟세마네에서 기도할 때도 그리고 부활과 승천의 때에도 천사들이 어심없이 나타났다. 그 형상이 번개와 같고 눈처럼 희었다.
왜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의 돌을 굴려 열었을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가 빈무덤을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3]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지키던 자들의 반응은 두려움이었다.
예수님께 희롱과 핍박을 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사람들 이었다.
[4] 찾아간 여인들도 무서워 떨었다. 그런데 천사는 무서워하는 여인들에게 가장 먼저 '무서워하지 말라.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마 16:21, 마 17:9하, 마 17:22~23, 마 20:19) 살아나셨느니라'고 말했다.
말씀하시던대로!!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마 27:63~64)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또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셨다. (고전 15:3~4)
즉 예수님의 부활은 갑작스런 일이 아니라 예언의 성취였다.
예수님은 부활뿐만 아니라 여러 예언을 하셨는데 그 모든 것이 성취되었다. (눅 22:34 베드로의 세 번 부인 예언, 막14:27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릴 것을 예언, 요 13:21하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후에 가룟유다의 배신을 예언, 마규13:2 헤롯 성전의 붕괴 예언 - 녹아내린 금을 채취하기 위해 돌을 모두 사라지게 함)
성경에는 '말씀대로'라는 말이 수없이 사용되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예언 중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두 가지는 바로 '재림'과 '심판'인데, 이 두 가지도 모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살아나셨느니라'고 천사들은 크게 외쳤다.
[5]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이 왜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예수님의 인생이 실패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죗값)과 부활로 사망이 우리를 다시는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히 2:15, 롬 6:9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의 영적인 부활이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졌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겼느니라 요 5:24)
우리의 육체적 죽음은 남아 있지만 그것 역시 아무 두려움이 없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영광스러운 육체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6]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매우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도록 여러 rumor를 퍼뜨렸다.(몸의 부활이 아니라 환상이다? 가사 상태였다?)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이며 40일 동안 11차례나 여럿(500명에게 동시에)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 이후 변화된 제자들의 삶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해준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났던 그들이 부활 이후에는 부활에 대해 목숨을 걸고 전했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라고 하며, 갈릴리에서 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7] 예수님께서 친히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하셨는데, 왜일까?
'내가 죽고 살아난 후에 내가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하셨다.
'마 28: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님의 관심은 예루살렘도 빈 무덤(진짜 부활했을까 의문의 장소)도 아니었고, 갈릴리였다.
그 이유는, 갈릴리가 제자들에게는 '부르심과 소명을 받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어부가 되라는 사명을 받았던 것이다. 갈릴리가 소명의 자리였기에 그곳에서 다시 비전과 사명을 주어서 세상으로 보내기 위함이었다.
(마 28:19~20, '너희는 가서')
갈릴리는 믿음의 새출발을 하는 곳, 잃어버린 사명을 다시 찾는 곳이었다. 예루살렘의 빈무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다시 보내기 위함이었다.
(요 20:21 안식후 첫날에...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의 대사로서 이 세상 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약속도 함께 주셨다. (마 28:20하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 가운데 계시지 않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다.
따라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우리의 육체도 죽음을 경험하겠으나,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썩지 않고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 겁을 내지 말자.
예수님의 관심은 갈릴리였다. 우리를 향한 부르심의 소명과 사명을 다시 회복하자. 이 세상으로 나아가자.
'불멸의 네 군목' 기념관 - 필라델피아
영원한 빛(The Light Eternal..4명의 군목 이야기)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월 22일
뉴욕항을 떠난 연합군 병력 수송선 ‘도체스터’호는
904명을 태우고 어둠을 가르며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항해 12일 만인 그 해 2월 3일
독일 잠수함이 도체스터호에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했다.
어뢰를 맞은 도체스터호는 얼마지 않아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병사들은 서로 붙잡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네 명의 군목들은 침착하게
구명조끼를 나누어주며 병사들을 구명정 타는 곳으로 안내했다.
더 이상 나누어줄 구명조끼가 없었다.
그 때 군목 클라크 폴링 중위가 병사에게 물었다.
“자네 예수 믿는가?”
“아니요”
그러자 군목은 자기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주면서 말했다.
“나는 예수를 믿으니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 구명조끼를 입고 살아서 꼭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서 만납시다.”
네 명의 군목은 모두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병사들에게 주었다.
도체스터호에 점점 물이 차올랐다.
네 명의 군목들은 서로 팔을 끼고 기울어진 갑판에 서서
‘내 주를 가까이’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였다.
생존한 병사 그래디 클락은 군목들의 최후를 이렇게 진술했다.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은, 군목들이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들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병사들에 벗어주고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병사 904명 중 605명이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수병들은 군목들의 희생을 기억하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4명의 군목,
조지 폭스, 알렉산더 구스, 클라크 폴링, 존 와싱턴을
기리는 기념예배당(US Naval Chapel)을 건축하였다.
필라델피아市는 용감하고, 희생적인 네 사람의 군목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훠 채플린스 기념관’을 짓고,
'4인의 불멸의 군목들'이라는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작곡가 제임스가 이들을 소재로
‘영원한 빛(The Light Eternal)’이라는 뮤지컬을 제작,
공연하여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Jesus Christ >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 (사 40:27~28) (0) | 2020.07.12 |
---|---|
진정한 사랑이란 (0) | 2020.05.24 |
위기인가? 기회인가? (마태복음 14:22~25) 김은호 목사 (0) | 2020.04.19 |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도전하라 (수 14:12) 김은호 목사님 주일 설교 (0) | 2020.03.29 |
아이 성의 패배가 주는 교훈 (수 7:1~5) 김은호 목사 (0) | 2020.03.15 |
도전하는 자여,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라 (삼상 17:28~30, 51) 김은호 목사 (0) | 2020.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