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임경훈 집사가 보낸 문자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에노스임을 깨닫고..."라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생각을 전개시키고 연결한 다음에,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메시지를 깨달았습니다.
에노스는, 가인에게 죽임당한 아벨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아들 '셋'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의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병약한'의 의미를 가집니다.
셋은 왜 그 아들의 이름을 'Mortal(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갖게 지었을까요?
제가 해석하기로는,
창세기는 그 참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살인자 가인의 자손들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성을 쌓고 산업을 일으키며 문명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인간의 한계와 탐욕과 전쟁과 폭력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허망함을 셋의 자손들은 목격합니다. 셋의 자손들, 즉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임을 깨달은 에노스와 그 일가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나의 '자기 발견'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제 바울남선교회 성경공부에서 나눈 화두였습니다.
나의 깨진 도자기같은 모습에서 좌절하기보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또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에노스가 내 이름이며, 그렇기에 이제 나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에노스임을 깨닫고..."라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생각을 전개시키고 연결한 다음에,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메시지를 깨달았습니다.
에노스는, 가인에게 죽임당한 아벨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아들 '셋'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의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병약한'의 의미를 가집니다.
셋은 왜 그 아들의 이름을 'Mortal(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갖게 지었을까요?
제가 해석하기로는,
창세기는 그 참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살인자 가인의 자손들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성을 쌓고 산업을 일으키며 문명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인간의 한계와 탐욕과 전쟁과 폭력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허망함을 셋의 자손들은 목격합니다. 셋의 자손들, 즉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임을 깨달은 에노스와 그 일가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나의 '자기 발견'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제 바울남선교회 성경공부에서 나눈 화두였습니다.
나의 깨진 도자기같은 모습에서 좌절하기보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또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에노스가 내 이름이며, 그렇기에 이제 나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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