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리다가 집에 돌아오면,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는 때가 있다.
이 병은 한 두 해가 된 병이 아니라, 어려서부터의 고질병이라고 볼 수 있다. 따뜻함을 약간 맛본 후에 겪게 되는 3월 하순의 꽃샘추위와 황사의 오묘한 조합은 내 눈에 뜨거운 눈물을 흐르게 하곤 했다.
가장 절정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였다. 초등학교 6년을 새로운 반편성도 별로 겪지 못하고 잘 알고 있는 친구들과 줄곧 함께 지내다, 모든 것이 새로운 중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의 복잡한 관계형성은 쉽지 않았고, 새로운 선생님들과의 좋은 관계형성은 더군다나 쉽지 않았다. 배치고사 성적에 따라 반장으로 임명되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때처럼 부모님이 해주시는 것도 아닌 '환경정리' 심사는 너무 큰 시간적 부담으로 다가와 마침내 선생님을 찾아가 반장을 사퇴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연로하신 담임 선생님의 그 싸늘하고 냉소적인 미소는 '공부나 잘하는, 리더쉽 없는 학생'의 가슴을 후비었고, 어머님의 빤한 지갑 사정을 알기 시작한 나이에 중학교의 미술 도구 준비는 너무 큰 경제적 부담이었다. 학교는 추웠고 집으로 돌아오는 황사 바람 길은 더더욱 매서웠다. 마침내 양철 대문을 밀고 들어선 마당 저 편의 어머님 모습은, 큰 교복 무겁게 걸친 어린 중학생의 눈가에 고였던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게 만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니?.... 황사가 눈에 들어갔나 보구나! 이리 오렴." 이미 나보다 작아졌던 어머님의 품 안은 새로운 힘을 얻기에 충분히 넉넉했고 따뜻했다. 어머님은 이 것 저 것 입장 곤란한 질문을 하지 않고, 그저 안아만 주셨다.
가슴 시린 일들을 겪고 퇴근하는 길에 머리 속에서 수많은 사표를 쓰고 찢으며 퇴근하는 날이면, 아내가 보다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니다, 사실은... 아내가 모른 체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더 많다. 속상하고 지친 모습을 아내가 눈치챌까봐 주방의 아내에게 인사도 안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양복을 벗고 욕실로 직행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수상한 행동은 아내의 눈치를 자극해서 너무 불안한 모습으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때가 더 많다. 그 때는 나약한 남자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아서 아내에게 더욱 미안해진다.
각각 자기 방에서 공부하고 있는 두 아들은, 다녀 오셨느냐는 인사성 물음을 던지고는, 문 밖으로 나와 보지도 않는다. 보통은 그러려니 하지만, 속이 너무 상하고 마음과 몸이 너무 지친 날에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즉, 아이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조용히 이름을 부르고 뒤에서 아들들을 껴안는 것이다. 웬 뜬금없는 스킨쉽이냐는 아이들의 표정을 뒤로 남기고 조용히 나와서, '왜 겨우 마음 잡고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방해하느냐'는 아내의 꾸지람을 들으러 안방으로 들어간다. 옷을 벗으면서, 아이들은 내가 왜 자기들 이름을 불렀는지 알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저 혼자 쓴웃음을 짓고 만다.
돌이켜 보면, 내 아버지도 그런 때가 있으셨다. 젊어서는 술을 드시는 모습을 간혹 본 적도 있지만, 장로님이 되신 후에는 아버지는 술을 전혀 안드셨다. 교장 승진이 제 때 되지 않았을 때, 가족 가까이로 전근 오시려던 계획이 무산 되었을 때 등등, 아버지에게도 속이 상할 일이 많이 있으셨을 것이다. 간혹, 저녁 식사 전에 숙제를 끝내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 퇴근하신 아버님이 안방으로 부르시던 날이 있었다. 야속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마음을 가득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면, 아버지는 '무엇이 되고 싶은 지, 힘든 일은 없는 지.... ' 등을 '뜬금없이' 물으셨다. 당연히 대답은 '글쎄요..., 없어요'였고, '숙제하다가 왔는데 가 봐도 될까요?'가 다음 질문이었다.
이제 내 아이들도 많이 자라서, 퇴근을 하면 일부러라도 눈을 마주치고, 학원이나 과외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길의 차 안에서 장래의 희망이든, 궁금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연스러운 기회도 많아졌다. 내 품을 떠나기 전에 더욱 좋은 사이가 되어야 할 텐데... 이 글을 쓰다가 시방 내 손은 이제 핸드폰을 찾아 고향의 아버지의 전화 번호를 누르고 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한다, 아들아, 아버지의 이름으로"
여기 오늘 내 눈물샘을 자극한 하나의 시가 있다. 아버지에 대한 정호승 시인의 시이다.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이 병은 한 두 해가 된 병이 아니라, 어려서부터의 고질병이라고 볼 수 있다. 따뜻함을 약간 맛본 후에 겪게 되는 3월 하순의 꽃샘추위와 황사의 오묘한 조합은 내 눈에 뜨거운 눈물을 흐르게 하곤 했다.
가장 절정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였다. 초등학교 6년을 새로운 반편성도 별로 겪지 못하고 잘 알고 있는 친구들과 줄곧 함께 지내다, 모든 것이 새로운 중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의 복잡한 관계형성은 쉽지 않았고, 새로운 선생님들과의 좋은 관계형성은 더군다나 쉽지 않았다. 배치고사 성적에 따라 반장으로 임명되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때처럼 부모님이 해주시는 것도 아닌 '환경정리' 심사는 너무 큰 시간적 부담으로 다가와 마침내 선생님을 찾아가 반장을 사퇴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연로하신 담임 선생님의 그 싸늘하고 냉소적인 미소는 '공부나 잘하는, 리더쉽 없는 학생'의 가슴을 후비었고, 어머님의 빤한 지갑 사정을 알기 시작한 나이에 중학교의 미술 도구 준비는 너무 큰 경제적 부담이었다. 학교는 추웠고 집으로 돌아오는 황사 바람 길은 더더욱 매서웠다. 마침내 양철 대문을 밀고 들어선 마당 저 편의 어머님 모습은, 큰 교복 무겁게 걸친 어린 중학생의 눈가에 고였던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게 만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니?.... 황사가 눈에 들어갔나 보구나! 이리 오렴." 이미 나보다 작아졌던 어머님의 품 안은 새로운 힘을 얻기에 충분히 넉넉했고 따뜻했다. 어머님은 이 것 저 것 입장 곤란한 질문을 하지 않고, 그저 안아만 주셨다.
가슴 시린 일들을 겪고 퇴근하는 길에 머리 속에서 수많은 사표를 쓰고 찢으며 퇴근하는 날이면, 아내가 보다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니다, 사실은... 아내가 모른 체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더 많다. 속상하고 지친 모습을 아내가 눈치챌까봐 주방의 아내에게 인사도 안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양복을 벗고 욕실로 직행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수상한 행동은 아내의 눈치를 자극해서 너무 불안한 모습으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때가 더 많다. 그 때는 나약한 남자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아서 아내에게 더욱 미안해진다.
각각 자기 방에서 공부하고 있는 두 아들은, 다녀 오셨느냐는 인사성 물음을 던지고는, 문 밖으로 나와 보지도 않는다. 보통은 그러려니 하지만, 속이 너무 상하고 마음과 몸이 너무 지친 날에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즉, 아이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조용히 이름을 부르고 뒤에서 아들들을 껴안는 것이다. 웬 뜬금없는 스킨쉽이냐는 아이들의 표정을 뒤로 남기고 조용히 나와서, '왜 겨우 마음 잡고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방해하느냐'는 아내의 꾸지람을 들으러 안방으로 들어간다. 옷을 벗으면서, 아이들은 내가 왜 자기들 이름을 불렀는지 알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저 혼자 쓴웃음을 짓고 만다.
돌이켜 보면, 내 아버지도 그런 때가 있으셨다. 젊어서는 술을 드시는 모습을 간혹 본 적도 있지만, 장로님이 되신 후에는 아버지는 술을 전혀 안드셨다. 교장 승진이 제 때 되지 않았을 때, 가족 가까이로 전근 오시려던 계획이 무산 되었을 때 등등, 아버지에게도 속이 상할 일이 많이 있으셨을 것이다. 간혹, 저녁 식사 전에 숙제를 끝내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 퇴근하신 아버님이 안방으로 부르시던 날이 있었다. 야속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마음을 가득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면, 아버지는 '무엇이 되고 싶은 지, 힘든 일은 없는 지.... ' 등을 '뜬금없이' 물으셨다. 당연히 대답은 '글쎄요..., 없어요'였고, '숙제하다가 왔는데 가 봐도 될까요?'가 다음 질문이었다.
이제 내 아이들도 많이 자라서, 퇴근을 하면 일부러라도 눈을 마주치고, 학원이나 과외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길의 차 안에서 장래의 희망이든, 궁금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연스러운 기회도 많아졌다. 내 품을 떠나기 전에 더욱 좋은 사이가 되어야 할 텐데... 이 글을 쓰다가 시방 내 손은 이제 핸드폰을 찾아 고향의 아버지의 전화 번호를 누르고 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한다, 아들아, 아버지의 이름으로"
여기 오늘 내 눈물샘을 자극한 하나의 시가 있다. 아버지에 대한 정호승 시인의 시이다.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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