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라는 이름을 가진 외국인 동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스테파니라는 아름다운 소설 속의 아가씨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이름은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이름에서 비롯됩니다.
어려서부터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돌로 쳐 죽임을 당했다는 잔인한 사실을 배웠으면서도 제 마음 속의 이미지(心象)은 '하늘문이 열리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형상을 제게 심어준 여러 성화들이 모두 순교자 스데반을 차마 비참하게, 또 잔혹하게 그릴 수 없어서 거룩하게 그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그림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 그림은 스데반의 순교에 대한 그림 중에서 가장 사실적인 그림으로 제가 나름 찾은 것이지만, 여전히 잔인한 모습은 피했고 하늘문이 열린 데 그 초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땠을까요? 저는 대학 시절에 수업을 듣기 위해 아래 법대쪽에서 경제과가 있는 위쪽 14동 교실로 가다가,
높은 지역인 14동 위쪽에 자리잡고 투석전을 준비하고 있던 시위대와 아래 도서관쪽에서 밀고 올라오는 전경부대와의 사이에 애매하게 끼인 적이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최루탄이 날아오고 위에서는 돌과 화염병이 쏟아지는 그 한복판에서 겁에 잔뜩 질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돌의 무서움을 잘 압니다.
야구공에 맞아본 적이 있으세요? 별 생각 없이 운동장 주변에 서 있다가 세게 날아온 축구공에 맞아본 적이 있으세요? 그렇다면 스데반의 아픔과 상태를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타박상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얼굴과 머리가 깨졌습니다. 피 범벅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총살이 가능한 때였으면 그 고통의 시간은 짧았겠지요. 그는 가장 비참한 몰골이 되었습니다. 가장 큰 고통 속에...사람들의 분노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는 하늘문이 열리는 것을 보며 사람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Passion of Christ라는 멜 깁슨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다가, 차마 예수님의 고난을 다 못보고 마음 속으로 '고마해라, 많이 맞었다 아이가..?!' 하는 고함을 질러댔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제대로 그려진 스데반의 순교 그림을 보면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늘문을 바라보는 믿음은 그러한 순간에 빛을 발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그 순간에 힘을 나타냈습니다.
오늘 김은호 목사님이 긴 시간 설교를 했지만, 한 순간 잠깐 흘린 스데반 얘기가 제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하며 살아갑니다. 흐리멍텅하면...아니 아니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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