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배드린 교회는 멜버른 최초의 장로교회인 The Scots Church입니다. 오래된 교회이므로 시내 한복판에 있을 뿐 아니라, 카톨릭 성당 및 영국 성공회 성당 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예배당 앞자리의 천장은 돔(Dome) 형태를 이루고 있어 찬양대의 찬양이 공명되어 정말 아름답게 퍼집니다. 

예배당 앞 부분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아름답게  치장을 했는데, 강대상 뒷편의 중앙에는 믿음/소망/사랑의 세 성화가 있습니다. 그 좌우에는 예수님의 수난의 길 등이 스테인드글라스로 있고요. 가운데 믿음 소망 사랑에서.... Faith, Hope에 이어서...사랑을 love 대신에 Charity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이후에 Charity는 자선/자비/긍휼 정도로 알고 있어서, 기독교적인 사랑을 Charity라고 표현한다는 것이 새삼 새롭게 다가옵니다.

강대상을 바라볼 때 왼쪽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습니다. 예전 미국 샬럿에서 다니던 갈보리 교회는 파이프오르간이 전면에 있었는데, 오히려 측면에 있는 오르간이 훨씬 예배에 집중할 수 있게 합니다. 이곳의 지휘자와 오르간 연주자는 모두 연세가 많은 남자 분들입니다. 주보에 오늘의 찬양은 누가 준비/지휘하며, 오르간 연주는 누가 한다...고 중요하게 다루어 밝히고 있습니다. 찬양대는 지휘자 입장에서 오르간 좌측에 남성이, 우측에 여자가 '서는데' 앉는 의자가 전혀 없고 가슴 높이의 받침대를 앞에 두고 시종일관 서 있습니다. 설교 시간에도 서 있는 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설교에 집중하느라..ㅠ.ㅠ) 

찬양대는 예배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찬양을 합니다. 오르간도 그렇습니다. Prelude, Entrance, Introit, Anthem, Choral Psalm, Dresden Amen, 그리고 Postlude 등 오르간과 찬양대가 나누어 예배를 이끌어 갑니다. 각 찬양(Hymn)을 회중과 함께 부를 때는 각 절별로 오르간 연주가 변화를 주는데, 마지막 절은 항상 웅장하게 연주하여 마음의 감동을 높입니다. 

가운이 독특합니다. 두겹의 망토같은 스타일로 목회자의 속옷을 몽땅 가리지 않고 일부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는, 전통형식 예배를 드리는 시간과 현대화 예배(?, Contemporary)를 드리는 시간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제가 참여한 전통예배는 전형적 장로교 예배인데, 어린이를 앞으로 초청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앞바닥에 앉힌 후에 목회자가 어린이를 위한 짧은 설교를 합니다. 오늘의 설교는 어른을 위한 main설교보다 어린이를 위한 설교가 제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동전을 하나 꺼냈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어린 시절 얘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가족이 해변으로 놀러 갔습니다. 어머니가 50센트 동전을 주시면서 해변 뒷쪽의 마을에 있는 작은 가게에 가서 먹을 것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모래 사장을 걸어 나오던 어린 목사님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동전을 위로 살짝 던졌습니다. 잘 받아냈죠. 몇 번을 던진 후에는 호기심이 생겨 조금 더 높이 던졌습니다.(목사님은 이 얘기를 하시면서 직접 어린이들 앞에서 동전을 던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른인 우리도 집중해서 봤죠.^^) 잘 받아내지 못해서 땅에 동전이 떨어졌지만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바로 집어들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윽고 자신이 붙은 나머지 동전을 하늘 높이 던졌습니다. 그리고 동전을 잘 받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모래사장 어느 곳에 동전이 박혔는지 아무리 헤매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목사님은 울면서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어머님의 분노를 걱정하면서요. 그러나, 그 때 어머님은 오히려 목사님을 꼭 안아주면서 이제는 함께 가게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결론보다는, 제가 느낀 것은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길지만, 읽어 주세요. ^^

 

하나, 우리의 죄도 점점 성장합니다.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며 너무 무서운 것이지만,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왜 일까요? 그 달콤함 때문입니다. 훔치는 것이 죄라면 그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달콤함이 큽니다. 간음이 죄라면 그 설레는 성적유혹의 달콤함도 사실입니다.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것이 죄라면 그 얄미운 존재에 대해 즉각적인 응징을 해버리는 달콤함도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리가 큰 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작은 생각부터, 잘못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동전 던지기처럼, 그 작은 허물은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발각되었을 때의 무서운 결과에 대해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아직은 그 달콤함 때문에 계속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도저히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까지 가게 됩니다. 목사님이 동전을 조금씩 높게 던질 때마다, 저는 제 죄가 점점 깊어져 가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스스로 포기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온 탕자 얘기는 우리 모두가 잘 압니다. 부모된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할 때 깊이 느끼게 되는 것은, 탕자인 작은 아들이 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잘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재산을 탕진해버려 삶이 끝나는 지경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살해 버리지 않고, 아버지의 집을 기억하고 머슴으로라도 쓰게 해달라고 하겠다며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아들이 공부를 안하거나 큰 실수를 했을 때 크게 나무란 적이 있습니다. 내쫓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된 마음으로 항상 가지고 있던 마음은 아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지, 징계를 목적한 적은 연약한 사람인 제게도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향상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하지나 않을 지 아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던 것이 아비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죄악을 무섭게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것으로 인해 포기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11월 들어서... 모든 것을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안 일도, 회사 일도... 모두가 내 허물이지만 그 성과가 엉망이었습니다. 아내도, 자녀도, 회사의 상사도, 팀원들도.... 행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제게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동전이 가슴에 부담은 크게 되지만, 이 시간 제가 할 일은 어머님께 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제 잘못에도 불구하고 제 삶을 새롭게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길게 얘기했지만, 짧은 어린이 초청과 설교가 끝나면, 어린이들은 선생님을 따라 앞쪽 작은 문을 통해 교육관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어른을 위한 목사님의 설교는 '선포'로서 사진에 보이는 높은 발언대 같은 곳으로 올라가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첫 선교에 대한 것이었는데, 어린이 설교보다 무척 어려워서 제게 감동은 적었습니다.(쉽게 표현하자면, 영어를 못알아 들었음..ㅠ.ㅠ)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성도들이 전혀 서두르지 않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문 밖에서 이유를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설교자인 목사님과 모든 예배 참석자들이 한 줄로 서서 악수와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인사만 하고 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옆으로 새서 서둘러 돌아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없어도 너~무~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저도 목사님께 다가갔습니다. ' 저는 한국에서 방문차 왔습니다. 예배를 통해 감동을 크게 받았습니다.'  "어디에서 오셨다구요?" '한국입니다.' "와우! 정말 환영합니다. 만나서 너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소심한 제가 이제는 많이 Social하게 변했습니다.^^)  서로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서로 웃었습니다.

한국에서 저는 수만명이 모이는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과 악수하기 위해 악수를 시작하면서 바로 손을 뒤로 움직입니다. 그것에 상처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찬양대에서도 악수를 합니다. 많은 분들과 짧은 시간에 인사를 나누기 위해 그저 악수를 가볍게 하고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말을 나눕니다. 가끔 직원들과 All hands meeting을 합니다. 프로젝트에 나가 있는 많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는데, 그저 '잘 지내?'하고 끝내곤 했습니다.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곳 목사님은 성의없는 내과의사의 감기처방시간보다 긴 시간의 인사를 모든 예배 참석자와 나눕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것을 참고 기다립니다.

 

오랜만의 영어 예배는 이렇게 많은 생각 속에 끝났습니다. 목사님은 영국식 또는 호주식 영어로 말씀하시는데 내게는 그 말씀이 한국어로 들리는 초대교회 방언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오늘 멜버른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ㅠ.ㅠ

金殷生 개인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