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비유의 핵심
요한복음 15장에 소위 ‘포도나무 비유’가 있습니다. “얘들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우리 아버지는 농부다. 너희가 내 안에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붙어 있지 않으면 말라서 불에 살라 버려진다.” 맞는 말씀 아닙니까?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 - 교회론의 비유
여러분,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는 흔히 ‘교회론의 비유’라고들 합니다.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포도나무를 포함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만드신 나무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땅을 뚫고 여린 줄기가 나옵니다. 나무 둥치가 나오죠. 그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가 하나 나오고, 또 더 자라면서 두 번째 가지가 나옵니다. 두 번째 가지는 어디에 위치합니까? 첫 번째 가지의 위에 위치합니다. 만일 첫 번째 가지가, "내가 제일 오래됐으니까 내가 제일 강해. 너는 두 번째로 나왔지? 그럼 내 밑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모든 나무가, 먼저 나온 가지들이 “내가 먼저 나왔고 더 크고 더 강하니, 나는 위로 올라가 있을 거야. 내 이후에 나온 가지들은 전부 밑으로 내려가.” 한다면, 그 나무는 꺾이고 맙니다. 위쪽에 먼저 나온 가지의 무게 때문에 나무가 지탱할 수 없게 됩니다. 세상에 정당이 왜 쪼개지고, 왜 시끄럽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모든 직분자들은 윗가지가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돼야 합니까? 나무는 첫 번째 나온 가지가 제일 아래쪽에 자리합니다. 두 번째 가지가 그 위에, 세 번째 가지가 그 위에, 그렇게 올라가는 겁니다. 나무가 몇 살을 먹었든지 간에, 가장 나중에 나온 가장 여린 가지가 제일 위에 앉게 됩니다. 그래서 크고 강한 가지들이 밑에서 든든하게 받쳐주기에 폭풍 속에서도 나무는 쓰러지지 않고 버팁니다. 그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내가 교회 창립 멤버다. 내가 남들보다 헌금을 더 많이 했다. 내가 더 봉사를 많이 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밑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 들어온 교인들이든, 누구든 마음껏 봉사할 수 있도록, “우리는 당신들을 위한 마당을 깔아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하고 먼저 아래에서 받쳐주는 것, 그것이 ‘생명 있는 교회’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입니다
주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셨을 때, 그 지역의 한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제국의 장교였습니다. 그 장교가 식민지 백성인 나사렛 출신의 가난한 예수라는 청년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 우리 집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서 고통이 심합니다. 좀 고쳐 주십시오.” 이 로마 장교가 자기 집 하인을 위해서 유대인 청년 앞에 무릎을 꿇은 거예요.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백부장의 마음을 보시고 “그래, 가자. 내가 고쳐 줄게.” 하셨더니, 백부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서 제 집에 들어오시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 밑에는 수많은 부하들이 있어서, 제가 이리 가라 하면 가고, 저리 오라 하면 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도 그냥 여기에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하인이 나을 줄 믿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8장 10절 하반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여러분,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겁니다. 우리 모두 다 알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진짜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만 믿는 사람인지를 분간할 수 있잖아요. 그 믿음의 눈으로 후보자를 보면, 뽑아야 될 사람과 뽑지 말아야 될 사람이 구별될 것입니다.
누구를 임직자로 뽑지 말아야 하고, 또는 뽑아야 할까요?
그러면 누구를 뽑지 말아야 할까요? 모두가 함께 봉사했는데, 늘 “내가 했어! 내가 그때 이만큼 헌신했어!”라고 생색내는 사람, 어디를 가든지 상석에 앉으려 하고, 스포트라이트와 박수갈채를 즐기는 사람들. 이런 분들은 임직자가 되면 반드시 직분을 계급으로 여기는 분들입니다. 더더구나 후보가 발표된 뒤 직접적으로나 제삼자를 통해서 “나 좀 뽑아 달라.”라고 전화 돌리는 분, 혹은 갑자기 밥을 사 주는 분, 혹은 교회에 큰 헌금이나 헌물을 하고 이름을 알리는 분. 절대 그런 사람을 뽑으면 안 됩니다. 그런 분들은 윗가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누구를 뽑아야 합니까? 구제 현장에 늘 가 있지만, 한 번도 생색내지 않는 사람. 언제나 남을 위해 자리를 치워 주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지만, 정작 그 말을 여기저기 옮기지 않는 사람. 교회와 상관없이 어려운 이가 있다고 하면, 물질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눈빛과 미소로 돌봐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분들을 뽑아야 합니다. 그런 분들이 곧 든든한 ‘가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에서 임직자 제도를 혁신한 사례
제가 은퇴하기까지 마지막으로 목회했던 백주년기념교회는 초교파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단 헌법에도 얽매이지 않고, 교회 자체 정관에 따라 운영이 됐습니다.
제가 처음 목회했던 ‘주님의 교회’는 장로교 통합 측 교회였는데, 임직자를 선출할 때 제가 설교 시간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선거운동 하느라고 전화하는 사람, 밥 사 주는 사람, 절대 뽑지 마십시오.” 그리고 임직 예배 때도 “오늘 임직식이 끝나고 임직자들이 나갈 때 절대 ‘축하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분들은 축하받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주님의 교회를 위해 가장 밑에서 십자가를 지는 분들입니다. 그러니 ‘축하합니다’ 대신 ‘수고하십시오’라고 인사하라”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교회마다 교인 수첩을 안 만드는 추세이지만, 예전에는 교인 수첩을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교회에서 교인 수첩을 만들 때는 제일 앞에 영아부(어린아이들) 사진이 먼저 나왔어요. 영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 그다음에 장년부.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나 장로님들 사진이 실렸고, 제 사진과 이름은 수첩 맨 뒤에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직자는 밑가지”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백주년기념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주님의 교회’와 ‘제네바 한인교회’, ‘백주년기념교회’ 모두, 등록한 지 1년 이상 된 세례교인이면 누구든지 주일 대예배 시간에 돌아가면서 공기도(대표 기도)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장로라고 해서, 안수집사라고 해서 그게 특권이 아니다”, “권사가 특권이 아니다”, “개신교의 핵심은 ‘만인제사장’이라는 것”을 실제로 실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광주 새순교회 주보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모릅니다만, 제가 섬겼던 세 교회에서는 주보에 그 예배 순서를 맡은 사람의 이름만 적었지, 그 뒤에 직분을 따로 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 설교도 “설교: 이재철” 이렇게만 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장로로 기도드리는 것 아닙니다. 목사로 설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재철’이 설교하는 것이지, 우리는 다 똑같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임을 예배 때 교인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원로목사, 원로장로, 무슨무슨 장로 등 이런 호칭과 이름들을 주보에 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런 분들을 뽑아야 앞으로 광주 새순교회가 정말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든든하게 받쳐 줄 수 있는 분들, 이런 분들을 뽑을 때 광주 새순교회는 대한민국 교회를 새롭게 하는 미랄이 될 것입니다. 아멘.
미래를 작정하는 것은 소용 없습니다. 지금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한 마디만 더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가 칼로 무 자르듯이 딱딱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제가 지금 강대상 위에 손을 올려 두었다가, 내 볼을 만지고 머리를 만지고, 또다시 볼을 만지고 손을 내린다고 해 봅시다. 지금 이 순간, 손이 강대상 위에 있던 때는 과거고, 머리를 만지는 순간은 현재고, 다시 내리는 순간은 미래인 것 같아도 사실상 1초도 안 되는 그 사이에 과거, 현재, 미래가 계속 어우러져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는 이렇게 한데 엉켜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광주 새순교회를 ‘주님의 교회다운 교회’로 만들고 싶다면, ‘지금’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미래 언젠가 광주 새순교회가 새로워질 것이다.”라고 아무것도 안 하고 바라기만 하면 결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일주일 뒤의 임직자 선출이라는 중요한 기회를 통해 광주 새순교회가 새로운 교회로 거듭나는 첫출발을 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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