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임직자 선출을 일주일 앞둔 오늘, 저는 먼저 여러분들께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왜 어떤 교회는 목사가 주인처럼 보이고, 또 어떤 교회는 특정 장로 혹은 장로들이 주인처럼 보이고 있는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반석 같은 고백을 들으시고, 그 고백 위에 “너희의 교회”를 세워 주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반석 같은 베드로의 고백 위에 “내 교회” 즉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천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교회이든, 교인 수가 얼마이든, 임직자가 몇이든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보여야 할 분은 주님이십니다. 아멘.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주님은 보이지 않고,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가, 어떤 교회에서는 장로 혹은 장로들이 주인처럼 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왜 한국에만 여성 권사 직분이 있는가?
두 번째 질문입니다.
“왜 한국 교회에는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여자들만을 위한 권사’라는 직분이 있습니까?”
감리교회에는 원래 권사라는 직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리교 권사는 남녀 모두를 위한 직분입니다. 그런데 그 외의 교단에서는 권사가 오직 여성들만을 위한 직분이지요. 만약 그 직분이 정말 성경적이라면,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다른 나라와 다른 교회에서도 권사라는 직분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 한국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 임직자 선출이 왜 세속 선거와 비슷해졌는가?
세 번째 질문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임직자를 선출할 때, 후보로 선정된 분들이 왜 은연중이든 공공연하게든 본인이 직접 나서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선거운동을 하는 것입니까?”
교회의 임직은 세속의 임직과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임직자를 선출하고 후보를 정하고 투표하는 전 과정을 보면, 세상의 선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또 무엇이겠습니까?
한국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장로교회의 효시를 장 칼뱅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즉, 16세기 스위스 제네바의 개혁자 장 칼뱅이 장로교회를 창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도 그렇게 설교하시지요. 그러나 장 칼뱅은 결코 장로교회를 세운 적이 없습니다.
장 칼뱅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하면서, 자신이 이끄는 교회 이름을 ‘장로교회’가 아닌,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 붙였습니다. 부패한 로마가톨릭교회에 맞서서, 세상과 교회를 주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개혁’하는 데 방점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장 칼뱅이 의도한 본래의 교회
칼뱅은 그 개혁을 위해 교회 안에 네 가지 직분을 두었습니다.
목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씀을 전하고 설교하며 교회를 다스리는 사람.
교사 : 당시 ‘교사’는 오늘날 교회학교 교사와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신학 전공자로, 교수 혹은 박사라고 불렸습니다.
장로: 목사와 함께 치리와 권징을 담당하고, 목회 사역을 돕는 직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칼뱅 시대의 장로는 한국처럼 항존직(恒存職)이 아니라 ‘1년 임기의 임시직’이었습니다. 매년 신임 투표에서 떨어지면 다시는 장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집사: 제네바 시(市)에 소속된 병원·복지시설, 그리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칼뱅은 이렇게 교회의 모든 직분이 오직 말씀으로 세상과 교회를 개혁하는 통로가 되도록 했습니다. 로마가톨릭 교황 ‘1인 체제’의 독재 구조를 무너뜨리고, 민주적 대의정치를 도입한 것이었지요. 칼뱅이 장로들과 함께 이른바 ‘Consistory(치리회)’를 구성한 것도, 장로라는 직분이 절대적이라서가 아니라, 교황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체제를 막고자 한 대의정치적 대안이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그 장로들은 1년 임기의 임시직이었습니다.
이처럼 장 칼뱅이 만든 개혁교회에서는, 교회 안의 어떤 직분자도 자신의 직분을 내세우거나 권리를 강조하거나, 그 직분을 서열화·계급화·권력화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직분 자체의 목표가, 부패한 교회와 세상을 ‘주님의 말씀으로 끊임없이 개혁’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칼뱅의 개혁교회는 부패한 로마가톨릭교회에 의해 피폐해진 유럽의 사회·문화를 새롭게 하는 신선한 시대정신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존 녹스의 장로교회에서의 변화
한편, 제네바와 동시대를 살던 스코틀랜드에서 존 녹스(John Knox)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메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 망명길에 올랐던 존 녹스는, 잠시 제네바에 들러 칼뱅을 도우며 그의 개혁교회를 배웠으나,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만든 교회는 칼뱅의 개혁교회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칼뱅은 교회에 목사, 교사, 장로, 집사라는 네 직분을 두었는데, 존 녹스는 그중 ‘교사(박사)’를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목사·장로·집사’만 있는 교회를 만들었지요. 목사도 ‘말씀을 전하는 장로’라 하여, 결국 세 직분이긴 해도, 목사 또한 일종의 장로인 셈이었습니다.
존 녹스는 그 교회를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라고 불렀습니다. 장 칼뱅은 그런 이름을 쓴 적이 없지요. 장 칼뱅의 “개혁교회(Reformed Church)”와 달리, 스코틀랜드에는 “장로교회”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장로'의 어원
헬라어 'πρεσβύτερος'(presbyteros): '장로'라는 단어는 헬라어 'πρεσβύτερος'(presbytero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나이가 많은', '경험이 풍부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신약성경: 신약성경에서 '장로'는 교회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장로교의 특징
: 장로교는 교회의 권위가 목사에게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장로와의 공동 지도 체제를 강조합니다. 이는 장로가 단순한 보조자가 아니라 교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로교에서 장로의 역할
- 교회의 정책 결정: 장로들은 목사와 함께 교회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합니다. 예배 방식, 선교 활동, 교회 재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을 내립니다.
- 교인들의 영적 성장: 장로들은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개인 상담을 통해 교인들의 어려움을 나누고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 교회의 일치: 장로들은 교회 안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고,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 데 힘씁니다.
결론적으로, 장로는 단순히 나이가 많은 신자를 넘어,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이자 봉사자입니다. 장로교는 장로와 목사가 함께 교회를 이끌어가는 공동 지도 체제를 통해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추구합니다.
그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훗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거기서 미국 장로교회가 생겼습니다. 그 미국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 장로교회의 모태가 되었지요. 결국 한국 장로교회의 뿌리는 칼뱅이 아닌 존 녹스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장로교회는 지금 거의 소멸 상태이고, 미국에서도 장로교회는 이렇다 할 대세 교단이 되지 못했습니다. 미국 장로교회(PCUSA) 교인 수가 현재 약 120~130만 정도로, 미국 내 다른 주요 교단에 비해 많지 않습니다. 침례교, 감리교 등은 훨씬 더 큰 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로”라는 특정 인간의 직분이 교회 이름을 차지하고 있는 구도가 자유분방한 미국인 정서와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장로 직분이 계급화되기 쉬운 구조적 문제가 있어서, 미국 장로교회는 일찌감치 장로를 ‘직능 대표’화하고 임기를 두어서, 특정인의 권력이 절대화되지 않도록 애썼습니다.
한국에서의 장로교 부각 배경
그러나 한국에서만큼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와 결합되면서, 장로직이 서열이 되었고, 권력이 되었고, “대접받는 자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단도 수도 없이 쪼개지고 생겨납니다. 한국에서는 “장로교회”라는 간판을 내걸어야 사람이 모인다는 식의 인식이 생겼습니다. 본래는 감리교, 침례교 등에는 장로직이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교단들까지도 ‘권사’ ‘장로’ 등의 직분을 새로 만들거나 변형시키는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서두에 던진 질문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 왜 어떤 교회는 목사가, 어떤 교회는 특정 장로들이 주인처럼 보입니까?
장로라는 직분이 서열의 정점이 되었고, 그중에도 설교하는 장로(목사)가 힘이 세면 목사가 교회의 주인처럼 보이게 됩니다.
2. 왜 한국 교회에는 여자에게만 주어진 ‘권사’라는 직분이 생겼습니까?
장로직이 남성 가부장제와 결합해 최고 서열이 되다 보니, 여성들은 차선을 만들어야 했고, 그 결과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권사 제도가 생겼습니다.
3. 임직자 선출 시 왜 선거운동이 벌어집니까?
서열과 권력, 대접받는 자리가 되다 보니, 임직을 얻기 위해 세상의 선거처럼 경쟁하는 행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는 “장로교회”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특정 직분자가 서열의 정점처럼 군림하게 된 구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장 칼뱅이 의도했던, “오직 말씀을 통한 교회의 끊임없는 개혁”이라는 본래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일입니다.
다시 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그 본래 정신,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칼뱅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와 임직, 그리고 직분 모두,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근본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모든 직분자는 권력과 서열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통해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봉사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직분과 봉사가 주님의 뜻과 말씀 안에서 이뤄질 때,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번 임직자 선출이 그런 참된 개혁의 시작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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