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학에 신정론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신정론(神正論)은 "신의 정의(正義)에 대한 논의"라는 의미로, 전능하고 선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왜 세상에 악과 고통이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루는 신학적, 철학적 논의입니다. 이는 특히 신의 전능성과 선하심을 믿는 신앙과 현실에서 경험하는 악과 고통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합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신정론은 주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한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선한가? (악을 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왜 세상에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
이 문제는 "에픽쿠로스의 역설"(Epicurean Paradox)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악을 없애고 싶지만 할 수 없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다.
하나님이 악을 없앨 수 있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선하지 않다.
하나님이 악을 없앨 수도 있고 원하기도 한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
여러 신학자들이 악과 고통을 설명하려고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1. 자유의지 신정론 (Free Will Theodicy) - 대표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인간이 이를 남용하여 죄를 짓고 악이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사랑과 선을 자유롭게 선택하기 원하셨기에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지만, 그 결과로 악이 발생했다는 것이지만, 자연재해나 어린이의 고통 같은 악은 인간의 자유의지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2. 혼합 신정론 (Soul-Making Theodicy) - 대표 신학자: 이레니우스(Irenaeus), 존 힉(John Hick)
악과 고통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도록 하는 과정(영혼 형성의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고난과 시험을 통해 성숙해지도록 하셨다는 것이지만, 너무 극단적인 고통(예: 전쟁, 학살)을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3. 최선의 세계 신정론 (Best of All Possible Worlds Theodicy) - 대표 신학자: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하나님은 무한한 가능성 중에서 가장 좋은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보니다.
일부 악과 고통이 있어야 선과 행복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만, 우리가 보기에 너무 큰 악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정말 최선의 세계인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4. 신비적 신정론 (Mystical or Skeptical Theodicy)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욥기(Job)의 이야기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만, 지적인 설명보다 무조건적 믿음을 강조하는 방식이라 회의론자들에게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일부 철학자들은 신정론을 반박하면서, 악과 고통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존 맥스웰(J.L. Mackie)**이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도 "어린아이의 고통을 통해서라도 이 세상이 신의 최선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현대 신학에서도 논쟁은 진행중이며 단일한 결론은 없지만,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몇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함께하신다.
신은 단순히 악을 허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고난을 경험하며, 이를 극복하도록 도우신다는 관점으로, 몰트만의 "고난받는 하나님"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The Crucified God)』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직접 십자가에서 고난을 경험하셨다고 강조합니다. 즉,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셨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고통 속에서 함께하시는가?'로 관점을 전환한 것입니다.
2. 세상의 악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욥기와 십자가 사건을 통해, 신학자들은 신정론의 초점이 "왜 악이 존재하는가?"에서 "악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볼 것인가?"로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 신정론은 단순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실천적 신앙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중요한 과제라는 것입니다.
현대 신학에서도 신정론에 대한 최종적 결론은 없지만, 단순히 "왜 악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신을 경험하고, 믿음을 실천할 것인가?"라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고, 이를 통해 신정론을 철학적 논쟁이 아닌 실천적 신앙의 문제로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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