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서는 야곱의 인생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역사적 중요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 인생에 주는 메시지가 더욱 크고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매우 분명하게 알게 하십니다.
- 타락한 죄성을 가진 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
- 타락한 죄성을 가진 인간이 변화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 타락한 죄성을 가진 사람도 이렇게까지 변화될 수 있는가?
1. 야곱,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
여러분, 야곱이 누구입니까? 그는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뒤꿈치를 잡은 욕심의 사람이었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샀고,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외삼촌 라반을 속여 거부가 되었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도 형의 마음을 돌리려 뇌물부터 보냈습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타락한 죄성을 가진 '나'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그가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에게로 도망갈 때 광야(벧엘)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그의 인생을 지켜주시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오던 길 얍복강가에서는 하나님과 씨름하며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변했습니까? 그는 여전히 '야곱'이었습니다. 두려움에 흔들렸습니다. 서원했던 벧엘로 가지 않고, 타협의 땅 세겜에 10년이나 머물렀습니다. 그 결과는 딸 디나의 비극과 멸문의 위기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받고도 변하지 않는 완고함. 하나님을 만나고도 세상에 머무는 미련함입니다.
2. "다시 나타나사" - 예배가 회복될 때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런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위기에 빠진 그에게 하나님은 무척 오랜만에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야곱이 마침내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벧엘에 제단을 쌓았을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창 35:9)
'다시'라는 이 한 단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세겜에 머무는 10년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야곱이 엉뚱한 곳에서 자기 힘으로 버틸 때는 만나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약속의 장소로 돌아와 예배를 회복할 때,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왜 나타나셨습니까?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에 함몰되지 마십시오. 무너진 예배부터 회복하십시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3. 벧엘에서 주신 진짜 복
하나님은 벧엘에서 세 가지 복을 약속하십니다.
첫째, '네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리라' -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네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리라" (10절) '이스라엘'은 얍복강에서 이미 주신 이름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야곱처럼 살 때는, 하나님도 그를 여전히 '야곱'이라 부르셨습니다. 그가 벧엘에서 비로소 예배자로 섰을 때, 하나님은 그의 새 이름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십니다. "너는 더 이상 속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이스라엘'이다." 진정한 예배가 우리의 정체성을 바꿉니다.
“거짓과 속임의 인생” 야곱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이스라엘로 바꾸셨습니다. 이것은 항복의 신앙 고백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이 고백을 하나님은 승리로 인정하셨습니다.
둘째, 생육하고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후손 중에 왕이 나오리라 - 전능자의 약속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1절) 하나님은 스스로를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으로 밝히시며 야곱에게 세대를 잇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복은 단지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잇는 믿음의 계보를 의미합니다. 이는 "네 힘으로 하려 하지 마라. 내가 전능하다. 내가 이루겠다"는 선포입니다.
셋째,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 유업의 약속입니다.
"이 땅을 네게 주고 네 후손에게도 주리라" (12절) 이 복은 야곱 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 연결됩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부모인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우리가 무엇을 심느냐가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자로 설 때, 그 복이 우리 후손에게 흘러갑니다.
4. 벧엘이 벧아웬이 되지 않게 하라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바로 이 '벧엘'(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서운 경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까지 있던 그 벧엘이, 훗날 이스라엘 분열 후 여로보암 왕에 의해 금송아지 우상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벧엘을 '벧아웬'이라 불렀습니다. '우상의 집', '죽음의 집', '사악한 집'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집'이 '우상의 집'이 되었습니까? 모양과 형식은 남았지만, 하나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예배가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벧엘입니까, 아니면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한 금송아지 앞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아니면 복을 받기 위한 형식적 종교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기적이 먼저가 아닙니다. 감사가 먼저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나의 삶이 '벧아웬'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더 많이 심어야 합니다. 부모 세대가 심은 감사의 예배를 자녀 세대가 거두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세상의 세겜에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갑시다. 수단과 방법을 구하던 야곱의 삶을 버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이스라엘로 살아갑시다. 날마다 감사와 예배로 지켜내는 믿음의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가정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집' 벧엘로 굳건히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가정이 벧엘이 되게 하시고, 엘벧엘의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하시되,
형식적 신앙과 예배로 벧아웬이 되지 않도록, 자손 대대로 참된 신앙과 예배를 지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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