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 여호수아 1:5~9 설교자 : 주경훈 담임목사님 2026년 1월 11일 주일 설교
성도 여러분, 지난주 설교를 통해서 나눈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네가 밟는 모든 땅을 네게 주겠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축복을 넘어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향해 나아가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단 한 가지를 거듭 당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수아 1:6)
-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여호수아 1:7)
-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여호수아 1:9)
왜 하나님은 이 말씀을 세 번씩이나, 점점 더 강조하며 반복하셨을까요?
그것은 사명을 받은 여호수아의 마음속에 깊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본래 사자의 심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40년 전 가나안을 정탐했을 때,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그는 당당히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민 14:9)” 그들에게 가나안은 그저 ‘식은 죽 먹기’와 같았습니다. 그런 그가 왜 지금은 두려워하고 있을까요?
사람의 마음과 감정이라는 것은 이렇게 늘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용기가 오늘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관리되지 않은 감정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과거에는 위대한 스승 모세가 앞장섰지만, 이제는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책임감은 무거워졌고,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 감정이 말씀 안에서 통제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전에는 감정대로 살아도 좋았으나, 타락 이후 우리의 감정도 타락했기에 감정대로 살면 안 됩니다. 감정을 억누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감정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인은 ‘시기’라는 감정에 휘말려 동생을 죽였고, 다윗은 ‘정욕’을 따라 움직이다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이처럼 타락한 감정은 우리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없습니다. 감정은 존중하되, 하나님 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감정은 불과 같습니다. 화로 안에 있을 때는 따뜻하고 유익하지만, 화로 밖으로 나오면 모든 것을 태우는 화재가 됩니다.

카일 아이들먼의 책 ‘그리스도인의 생각 사용법’에 나오는 비유처럼, 우리 안에는 코끼리(무의식적 감정)와 그 위에 탄 기수(의식적 생각)가 있습니다. 마구잡이 감정에 끌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우리 감정을 선택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점령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세 가지 용기가 필요합니다.
첫째, 사명을 감당할 용기입니다. (수 1:6)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사명을 감당하기 원한다면 반드시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명은 항상 현재의 나의 능력보다 큰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먼저 주시고, 그다음에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그 간극 사이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경험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할 때 한 일의 전부는 그저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곁에 서 있었던 것뿐입니다. 우리 가정, 일터, 관계, 사역 속에 두려움이 몰려올 때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두려움이 몰려올 때 우리에게는 ‘부를 이름’이 있습니다.
유격 훈련 중 11~15미터 높이의 ‘레펠’ 교장에서 사람은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고 합니다. 그때 훈련병들은 “어머니!” 이름을 부르며 뛰어내립니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위대한 이름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수 1:5).”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그 곁에 서 있는 용기가 사명을 완수하게 합니다.
둘째, 말씀에 순종할 용기입니다. (수 1:7)
하나님은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 사람의 음성을 들어라
Listen to the man who listens to God - AW 토저 -
토저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 사람의 음성을 들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말씀에 대하여” 치우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적당한 ‘중도’를 지키라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을 벗어나 죄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벗어나 외면하고 이탈하는 순간, 말씀은 우리 마음에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우리는 그것을 흡수할 수 없게 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은, 광야와 산악 지형에서 길을 벗어나면 생존이 위협받던 고대 팔레스타인의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율법만이 공동체를 살리는 유일한 ‘안전한 길’ 임을 선언하는 표현이다.
즉, 율법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말씀이다. 부족하거나 과하거나 모두를 경계한 것이다. 즉, 좌(Left) = 율법을 느슨하게 만들 위험, 우(Right) = 율법을 인간적으로 과장하거나 왜곡할 위험을 경계하였다. 이는 중용(middle way) 이 아니라 정확성(faithful adherence) 의 문제이다.
어떤 젊은이가 외딴섬 높은 바위 위의 수도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지금도 악마와 씨름하십니까?” 수도사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지금은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소. 하나님께 지기 위해서 말이오.” 성도 여러분, 말씀을 지키기 위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꺼이 패배하고 굴복하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셋째, 두려움 속에서도 나아갈 용기입니다. (수 1:8)
하나님은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주십니다.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다독), 주야로 묵상하며(암송),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걸어 다니는 말씀’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전쟁은 사실 ‘소리’의 전쟁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소리가 들려올 때 여러분은 어떤 소리에 반응하시겠습니까?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십시오.
올 한 해, 여러분의 성경책이 손때 묻어 지저분해지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이 지저분해지는 만큼 여러분의 영혼은 기경 될 것입니다. 주만나(큐티)와 암송카드를 가까이하십시오.
마태복음 13장의 길가에 떨어진 씨앗 비유를 기억하십시오. 사탄은 말씀을 탈취하려 합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영혼의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야 합니다.
루마니아의 리차드 워름브란드 목사님은 13년 동안 독방에 갇혀 있었지만, 예전에 암송했던 말씀이 그를 떠나지 않았기에 견딜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은 후에도 말씀으로 미움의 감정을 통제하며 원수들을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가까이하십시오. 그럴 때 참된 형통이 주어집니다.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여기서 형통은 히브리어로 ‘샤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성공 기준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형통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인생 최고의 성공으로 여기십시오.
오늘도 그 말씀 위에 서서, 떨리는 감정을 말씀으로 다스리며, 약속의 땅을 향해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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