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 주경훈 목사님 성경 본문: 여호수아 1장 10절 ~ 18절
"여러분은 요단강을 건널 준비가 되셨습니까?"
우리는 흔히 찬송가 가사처럼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며, 요단강을 '죽음'의 의미로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의 요단강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땅으로 들어가는 시작'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진짜 인생이 펼쳐지는 관문입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는 어떤 요단강이 흐르고 있습니까? 두려움의 강입니까, 아니면 기회의 강입니까?
말씀의 폭포수 아래서 두려움을 씻다
새로운 땅을 목전에 둔 여호수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기대보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떠났고, 눈앞에는 넘실거리는 강과 정복해야 할 적들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서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엄청난 수량과 굉음 앞에 서면 압도적인 대자연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가 바로 그렇습니다. 여호수아의 불안한 마음 위로, 하나님의 약속이 나이아가라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 말씀의 압도적인 능력 앞에 서자, 비로소 그의 내면에 있던 두려움이 씻겨 나가고 새로운 생각과 감정이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경험이 필요합니다. 내 대책, 내 걱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압도하는 경험이 있어야 요단강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첫째,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로 믿었는지, 아니면 듣고 흘렸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그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1. 관리들을 소집하다: 승리를 넘어 ‘삶’을 준비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의 반응을 보십시오. 본문 10절은 '이에(Then)'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마음의 순종이 몸의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난 40년, 모세의 시종으로 살았습니다. 최고의 리더십(Leadership)은 최고의 팔로워십(Followership)에서 나옵니다. 그는 순종을 통해 훈련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도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담대함은 무모한 자신감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담대함과 무모함은 다르다. 무모함은 자기 내부의 자신감이지만 담대함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두려움이 몰려올 때 담대함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가능할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곧장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여기서 ‘관리’는 히브리어로 ‘소태림(Shoterim)’, 즉 행정관들을 말합니다. 군대 장관이 아니라 행정 실무자들을 먼저 불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쟁을 앞두고 있다면 장군들을 불러 작전 회의를 해야 마땅할 텐데, 왜 행정관들을 불렀을까요?
이것은 여호수아의 확신을 보여줍니다. 그는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 땅에 들어가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100% 신뢰했기에, 정복 이후의 행정과 질서를 담당할 소태림들을 깨운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응답받은 이후의 삶을 미리 관리하고 기획하는 것입니다.
Shoterim. 이들은 모세 시대부터 백성의 두령(리더)들을 보좌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백성들의 삶 구석구석에 전달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명기 1:15 등에도 등장)
여호수아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비전을 '쇼테림(중간 리더)'들을 통해 구체적인 행정 명령으로 하달했습니다. 이는 비전이 시스템을 통해 움직여야 함을 보여줍니다.
2. 양식을 준비하라고 명령합니다: ‘엄마 카드’의 시절은 끝났다
이어서 여호수아는 관리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명령을 하달합니다. “양식을 준비하라” (수 1:11)
여러분, 지금 이들은 요단강 도하라는 거대한 군사 작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창과 칼을 갈아라”, “방패를 보수하라”라고 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라”고 말합니다. 승리에 대한 완전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이 왜 중요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40년 광야 생활 동안 한 번도 양식을 준비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눈만 뜨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왔습니다. 저장할 필요도, 준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주워서 먹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비유하자면, 광야 시대는 하나님이 다 결제해 주시는 ‘엄마 카드’를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벌지 않아도, 내가 준비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공급되는 은혜의 훈련 기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양식을 준비하라!” 이 말은 이제 ‘엄마 카드’의 시절, 즉 광야 시대가 끝났다는 선포입니다. 이제 너희가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은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너희가 직접 밟고, 싸우고, 경작해야 하는 ‘성숙의 시대’ 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알았습니다. 이제 만나는 그칠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실제로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진을 치고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그쳤습니다(수 5:12).
여기서 쓰인 '양식'은 히브리어로 '체다(Tseda)'입니다. 이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냥해서 얻은 고기나 여행/전쟁을 위해 말린 보존 식량(Provisions)을 뜻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전쟁을 앞두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전투식량)을 마련하는 치밀함을 보여줍니다.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믿음 안에서 철저히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적과 상식의 조화: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하지만 그 강을 건너기 위해 도시락(양식)을 싸는 것은 인간의 '상식'이자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지만,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상식적인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을 열어달라면서 왜 손잡이를 잡아당기지 않는가?
많은 성도님이 “주여, 믿습니다. 새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는 뜨겁게 합니다. 그런데 정작 삶에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닫힌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문손잡이를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취업의 문을 열어주실 것을 믿는다면, 오늘 이력서를 쓰고 자격증 공부를 하는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회복시키실 것을 믿는다면, 오늘 가족에게 건넬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 응답, 그 이후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며 살아가는 태도,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믿음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인 준비’입니다.
사흘 안에 들어간다: 현실적인 준비가 믿음이다
여호수아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널 것임이라.” 72시간입니다. 막연하게 “언젠가 가겠지”가 아닙니다. D-Day가 정해졌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72시간을 멍하니 보내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믿기에, 현실적인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긴박감이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되겠지” 하며 미루는 게으름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밟아야 할 약속의 땅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고, 이제는 우리가 움직일 차례입니다. 광야의 습관을 버리고, 가나안의 양식을 준비하십시오. 믿음으로 손잡이를 돌리는 자에게, 요단강은 갈라지고 새 땅은 열릴 것입니다.
여러분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다면, 오늘 여러분은 믿음으로 어떤 양식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둘째, 은혜를 먼저 입은 자가 헌신의 선봉에 서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를 따로 부릅니다. 이들은 요단 동편에서 이미 기업을 얻은 지파들입니다. 이미 땅을 얻었고, 배가 부른 상태입니다. 전쟁에 나갈 아쉬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용맹한 전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처자와 가축은 이쪽에 머물게 하되,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수 1:14)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입니다. 먼저 꿈을 이룬 자, 먼저 은혜받은 자, 남보다 더 가진 자는 그것을 누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성취가 다른 형제들의 꿈을 이루는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라고 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우리는 얻은 것으로 생계를 꾸리지만, 주는 것으로 인생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경주 최 씨 가문에는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재산이 만석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하늘의 것이 된다"는 가훈이 있습니다. 내 재산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며, 공동체를 위한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는 정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옷에 주머니를 두 개 만들어 주신 이유는 하나는 나를 위해, 다른 하나는 남을 위해 쓰라는 뜻입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가나안의 정신이 아닙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이 말씀은 너만 복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라는 뜻입니다.
먼저 된 자들이 앞장서서 그 불편함을 기쁨으로 감당할 때, 공동체는 요단강을 건널 힘을 얻습니다.
셋째,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건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명령에 두 지파 반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수 1:16-18)
이 장면은 여호수아에게 전율과도 같은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골방에서 은밀하게 주셨던 말씀, "강하고 담대하라"는 그 음성을 지금 백성들이 똑같이 그들의 입으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백성을 격려해야 하는데, 도리어 백성이 지도자에게 "우리가 순종할 테니, 당신은 두려워 말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심장이 얼마나 뛰었을까요?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이들과 함께라면 할 수 있구나!' 확신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힘입니다. '베짜기 개미(Weaver Ant)'를 아십니까? 나뭇잎을 엮어 집을 짓는데, 개미 한 마리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서로의 몸을 잡고 사슬을 만들어 기어이 연결해 냅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을 서로 붙들어줌으로써 2.5배, 아니 그 이상의 시너지를 냅니다.
신앙생활은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지쳐 있을 때, "집사님, 힘내세요.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라고 말해주는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절반)가 따로 불려 나온 배경에는 민수기 32장에 기록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을 이해해야 여호수아 1장에서 왜 이들이 '선봉'에 서야 했는지 명확해집니다.
1. 사건의 발단: "우리는 요단을 건너지 않겠습니다" (민수기 32장)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요단강 동편(지금의 요르단 지역, 길르앗 땅)을 점령했을 때의 일입니다.
- 원인 (가축이 많음):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가축 떼가 심히 많았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요단 동편 땅(야셀과 길르앗)은 목축하기에 너무나 좋은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 요구: 그들은 모세에게 찾아가 충격적인 요구를 합니다.
-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민 32:5)
- 의미: 이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라는 민족적 사명보다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목축)을 우선시한 요구처럼 보였습니다.
2. 모세의 분노와 책망: "너희 형제는 싸우러 가는데..."
이 말을 들은 모세는 크게 분노하며 그들을 꾸짖습니다. 모세가 화를 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 이기주의에 대한 분노:
-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민 32:6) 동족은 목숨 걸고 전쟁하러 가는데, 너희만 편하게 살겠다는 것이냐는 책망이었습니다.
- 과거의 트라우마 (가데스 바네아 사건): 모세는 40년 전 정탐꾼들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여 백성을 낙심하게 만들었던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이들의 행동이 다른 지파들의 사기를 꺾어, 또다시 하나님께 징벌을 받게 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3. 극적인 타협과 맹세: "우리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모세의 책망을 들은 두 지파 반은 즉시 자신들의 진심을 설명하고 **새로운 제안(맹세)**을 합니다. 이것이 훗날 여호수아가 그들을 소환한 근거가 됩니다.
- 약속의 내용 (민 32:16-19):
- 가족과 가축을 위해 이곳에 집과 우리를 먼저 짓겠습니다.
- 하지만 우리(군사들)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보다 '앞서(선봉에)' 건너가겠습니다.
- 다른 지파가 땅을 다 차지하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 우리는 요단 동편에서 땅을 받았으니, 서편에서는 땅을 받지 않겠습니다.
모세는 이 맹세를 듣고 "너희가 만일 이같이 하여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다 건너가서 싸우면 이 땅이 너희 소유가 될 것"이라며 조건부로 허락합니다.
4. 여호수아가 그들을 따로 부른 이유 (여호수아 1장)
이제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리더가 되었습니다. 요단강 도하를 앞두고 여호수아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를 따로 불러냅니다.
1) 약속(계약)의 이행 촉구 모세와 맺었던 맹세는 유효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모세에게 맹세했던 그 약속을 기억하라"라고 상기시킵니다. 그들이 만약 "모세도 죽었으니 그냥 여기 있겠다"라고 했다면 이스라엘은 분열되었을 것입니다.
2) 군사적 필요 (강력한 전력) 이 두 지파 반은 목축을 하던 사람들이라 거칠고 용맹했습니다. (설교 본문 메모에 있는 '암사자 같다'는 표현이 여기서 나옵니다). 여호수아는 이들의 강력한 전투력이 전쟁의 최전방(선봉)에 필요했습니다.
3) 공동체의 일치 단결 (One Spirit) 가장 먼저 땅을 얻어 배부른 자들이 가장 위험한 최전방에 설 때, 나머지 지파들의 사기가 올라갑니다. "저들은 이미 땅이 있는데도 우리를 위해 싸워주는구나!"라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가는 말: 함께 건너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앞에 약속의 땅을 두셨습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 말씀이 들리신다면, 즉각적인 준비(Action)를 시작하십시오. 기도의 무릎을 꿇었다면, 삶의 현장에서는 양식을 준비하십시오.
- 이미 받은 은혜가 있다면, 헌신(Mission)의 자리에 먼저 서십시오. 나의 축복을 형제를 돕는 무기로 사용하십시오.
- 혼자 가지 말고, 함께(Community, 공동체) 가십시오. 서로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외쳐주는 믿음의 동역자가 되십시오.
두려움의 강을 넘어, 약속의 땅으로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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